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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말하고 더 듣고 배우라!”

www.jeffvanderstelt.com, 제프 밴더스텔트 목사에게 배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더 사랑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종교적 자만심이 복음을 가로막아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해심과 배려가 많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신념을 이해해주길 바라기 전에 우리가 먼저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그리고 더 유심히 사람들의 깊은 내면의 갈망이 무엇인지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토론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복음에 유창해지는 것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듣는 것은 사랑과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복음의 언어’의 저자인 제프 밴더스텔트는 대표적인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인 소마 공동체를 이끄는 목회자이다. 그는 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덜 말하고 더 듣고 배우는 습관을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Gospel Fluency: speaking the truths of jesus into the everyday stuff of life).

 

마음을 열어라

 

예수님은 듣기의 달인이셨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의 말을 더 잘 들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나누신 대화를 떠올려야 한다. 때는 햇볕이 가장 뜨거운 정오였다. 여인은 다른 사람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시간을 택해 우물가로 왔다. 땡볕에 물을 길러 나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과 관계 맺은 남자들의 부인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겸손한 자세로 그녀에게 물을 구하셨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예수님께 그녀의 영혼을 쏟아냈다. 여기서 우리는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보다 겸손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듣는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듣고 배우려는 태도를 가질수록 상대방의 마음도 열리게 된다.

우리는 늘 듣는 것에 실패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데 실패한다. 이런 우리 때문에 상대방도 자신의 심령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볼 기회를 잃어버린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자신이 믿는 것을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알게 된다.

 

덜 말하고 더 들으라

 

우리는 복음으로 인해 변화되어 가면서 자연스레 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한다. 매우 좋은 현상이다. 사실 복음에 유창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다른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들은 복음의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듣기를 거부한다면,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식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나눌 수는 있어도 복음을 타인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는 없다. 즉, 타인이 처해 있는 상황과 환경 가운데 복음이 어떻게 필요한지를 완전히 무시한 채, 좋은 소식만 전파하는 자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식이 더 이상 좋은 소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보면,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마을 사람들도 직접 예수님을 만나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들도 예수님께 나아가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우리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증거 하는 동시에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간구에 적용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그들의 개별적인 필요와 갈망을 채우실 수 있도록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잠잠하게 하고, 좋은 질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잘 들어주어야 한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누군가와 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처음 55분은 그의 마음과 생각을 어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5분 동안은 진리를 전할 것이다.”

우리는 경청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의 마음의 갈망과 영혼의 깨어짐과 공허함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하면 영혼의 생수이신 예수님을 우물가에서 만날 수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다.

 

마음을 열고, 덜 말하고 더 들으라. 성령께 구하며 그들을 배우고 사랑하라!

 

위로 귀 기울이기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면 늘 성령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성령님의 다른 이름은 ‘보혜사’이다(요 14:26). “성령님, 제가 천천히, 차분하게 대화에 임하도록 도와주세요.”, “침묵 가운데 당신이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게 도와주세요. 지금 이 사람의 이야기와 성령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떤 성경 버전은 ‘보혜사’가 ‘상담가’(counselor)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성령님께 그의 깊은 내면의 갈망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우리의 대화 가운데 성령님께서 상담가가 되어 달라고 초대해야 한다. 성령님께 본질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상대방이 처해 있는 상황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진리가 좋은 소식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구해야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사랑하라

 

사람들의 갈망을 듣는 실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그들의 전반적인 인생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심령에 복음을 유창하게 말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 틀 속에서 인생을 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며 경청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믿는 복음 이야기’가 있다. 그 복음 이야기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식이 아닐지라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복음’이다. 모든 사람이 믿는 복음 이야기에는 창조, 타락, 구원, 그리고 새 창조의 줄거리가 있다. 물론 이런 단어들로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모든 사람의 심령에는 영원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기에, 하나님에 의해 이 줄거리로 각인되는 것이다.

‘복음에 유창한 귀’는 친구들의 이야기와 문화의 이야기가 진리인 하나님의 이야기와 맞아 떨어지는지 감지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귀를 가질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네 가지 악장(창조: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또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무엇에서 발견하는가?, 타락: 그들이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누구 또는 무엇인가?, 구원: 그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로 누구, 또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새 창조: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변화는 무엇이며 그들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질문이나 갈망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 이야기를 경청할 때 그들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단지 우리는 듣고 배우고 사랑하며 복음을 나누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우물’에서 헤매고 있다. 듣는 귀를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실 예수님께로 인도한다. 이를 위해 덜 말하고 더 듣고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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