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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유월절 Christ and Passover(레위기 23:4-5)

신동기 목사 (뉴욕심포니교회)

이스라엘의 많은 절기 중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일곱 개의 절기를 이스라엘 7대 절기라고 부릅니다. 그 7대 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와 모형이고 신약이 실체와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일곱 개의 절기가 신약에서 실체와 원형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곱 개의 절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곱 개의 절기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즉 이 일곱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완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절기 중에 가장 처음 시작되는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절기 중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절기입니다. 유대 달력으로 1월은 ‘아빕월’이라고 하는데, 이 ‘아빕월’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태양력으로 3-4월에 해당합니다. 이 유대 달력은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이후부터 사용된 달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 시키신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정하시고, 그달 14일에 유월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은, 인간들이 세상 마귀의 노예, 즉 세상의 종으로 살고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 마귀로 상징되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실 때, 어린 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집의 장자들은 다 죽이십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들의 집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의 모든 장자와 짐승의 처음 난 것들은 다 죽었습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백성의 집도,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지지 않았다면 그 집의 장자들은 다 죽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라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있으면 누구든지 다 살아날 수 있고, 어린 양의 피가 없으면 누구든지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살을 모두 먹었습니다. 이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러니까 문설주에 피를 바르고 그 어린 양의 살을 먹은 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먹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이라도 예수의 피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유대인이 아니라도 예수의 피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유월절의 의미입니다.

유월절은 ‘죽음이 넘어가다’라는 뜻입니다. 죽음이 넘어가는 이유는 어린양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죽음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를 바르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를 바르지 않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특별히 잘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는 자도 하나님 앞에 특별히 잘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택함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택함 받은 사람은 택함 받은 사람답게 하늘의 소망과 부활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에 대한 소망이 없이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택함 받은 사람은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택함 받은 사람답게 바뀌어 가게 됩니다. 삶의 방향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 갑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권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잘 안 될 때가 훨씬 더 많겠지만 그래도 하려고 노력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건지려고 하시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출2:24)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5) 하나님이 잊어버리셨다가 그때 기억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400년이 지나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약속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어린 양으로 죽으셔야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때가 차매’, ‘때가 이르매’,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라는 표현에서, 그 ‘때’는 바로 예수님이 죽으시는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때는 어린 양이 죽어야 하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어린 양이시니까 예수님이 바로 그때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그때는 유월절입니다. 그때는 아빕월 14일, 그러니까 유대 달력으로 1월 14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전에도, 이미 죽을 고비를 넘기신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자기 고향에 가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고향 사람들에 의해 죽을 뻔했습니다. 초막절 때도 사람들과 논쟁을 하시다가 사람들이 그때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때도 “때가 이르지 않아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의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때는 유월절로, 아빕월, 즉 1월 14일이었습니다. 

빌라도도 예수님을 살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19:11)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는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일 권세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스스로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에 의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며, 스스로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떠나가셨다”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요19:30) 이것은 예수님 스스로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아빕월 1월 14일, 유월절 저녁에 죽으셨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그 날, 그 시에 죽으신 것입니다. 

유월절을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유월절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우리의 믿음과 삶에 깊이 연결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주셨습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날을 새로운 시간의 출발점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며,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선언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고백과 선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새로운 한 해를 주셨습니다. 한 해의 시작은 단순히 달력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결단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통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 한 해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이 되도록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롭게 창조된 자로서 살아가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 예수님을 본받는 삶,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한 해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dongkshin@gmail.com

 

02.0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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