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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경건생활 (The Piety of John Calvin)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제일교회)

칼빈의 경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에 관한 글들

 

II. 칼빈의 영적인 순례

 

8. 다시 제네바에 돌아온 칼빈

 

3) 잘못된 비난과 소문들

 

어떤 사람들은 칼빈의 재산에 관해 조소 섞인 소문을 퍼뜨리고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칼빈이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라고 떠들고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칼빈이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고 악평했다. 베자(Beza)는 칼빈이 부를 축재했다는 비난을 일축하면서 그가 오히려 빈핍했던 것을 말하고 있다. 베자는 칼빈을 중상모략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비난들을 다시 한 번 열거하면서 일부 비평가들이 “칼빈 자신도 새로운 교황권을 열망하고 있다고 비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칼빈이 지향했던 삶의 양태, 공화국 또는 교회는 이른바 ‘가난의 공화국’인 것이다”라고 언명했다.

그들이 그토록 시기하던 권력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칼빈은 언제라도 기꺼이 그 권력의 일부일지라도 그들에게 넘겨줄 용의가 있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칼빈을 늘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일거리들을 마치 하나의 ‘왕국’처럼 오해하고 있었다. 칼빈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가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입증해주지 못한다면, 칼빈은 자신이 죽은 뒤에는 틀림없이 입증될 것이라고 했다. 칼빈은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이상은 추구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이야기들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그 허구적인 이야기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중들이란 자신들의 악한 행위들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흑과 백을 혼합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불순함과 방종을 가장 훌륭하게 중단시킬 수 있는 길이란 그리스도의 종들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 외에도 쾌락만을 추구하는 부류들도 있었다. 칼빈은 이 부류에 관해서는 다윗마저도 불만을 토로한 일이 있다고 한다. 칼빈이 말하는 쾌락주의자들이란 다만 식탁의 식도락가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보고서들을 가지고 윗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 

4) 루터파들의 공격

 

칼빈은 그 같은 공격을 참아내는 일에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 소리를 듣는 일에 무감각해졌다. 그러나 그 같은 사람들의 모욕이 점점 커져 가면 갈수록 칼빈은 쓰라린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그의 이웃 사람들로부터 이와 같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 이외에 문제는 또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견실하게 사랑하는 자들로서 교회 내부에 있는 적군들이었다. 그리스도의 몸 그 자체를 먹는다는 그들의 조약하고 허황된 이야기를 칼빈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공공연한 적들보다 더 맹렬히 칼빈을 공격해왔다.

여기서 칼빈은 다윗이 고백했던 불만을 이들을 향해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 120:7). 그러나 이 사람들이 얼마나 야만적인 존재들인가 하는 것은 그들이 앞뒤에서 공격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면 곧 드러난다. 그들의 공격대상은 그들과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마땅히 도움을 제공해야 할 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들이 한 움큼이라도 인간성이 있는 자들이라면 칼빈 자신을 향해 그토록 강렬하게 도전해오는 교황주의자들의 열화와도 같은 공격이 어느 정도는 약화되었을 것이다.

다윗이 처했던 상황도 비슷했던 것처럼 다윗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다윗은 자신이 빼앗지 않은 것에 대해서 물어주었다고 토로한다. 칼빈은 나를 보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증오를 받아야 했을 때 내가 당한 어려움을 다윗도 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칼빈은 빈번하게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증거를 말하다가 시편으로 돌아가 다윗의 말을 인용한다. 이것이 이른바 칼빈의 다윗을 본받음(imitatio Davidis)이다. 바로 이와 같은 지식과 경험이 칼빈이 시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시편은 낯선 땅을 방황하는 칼빈을 붙들어 주었다. 사실상 칼빈은 다윗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내면적인 경험을 이야기할 때, 마치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칼빈의 주석들이 비 논쟁적이고 매우 목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칼빈은 자신의 책, 『칼빈의 경건』이 이후에 그가 원하던 바를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글을 솔직하고 정당하게 판단함으로 후대에 우리가 그의 책에서 유익을 얻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 글을 쓴 목적도 기쁨과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칼빈은 매우 단순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 노력했으며 모든 허식을 다 배제하였다. 특별히 다른 사람들을 논박하는 것도 삼갔다. 그는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로부터 갈채를 받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칼빈은 자신이 침묵하였고 독자들이 크게 의심할 위험이 있을 때에만 반대의견을 다루었다고 쓰고 있다.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교회를 건실하게 세우는 것이었다. 칼빈은 이 일을 할 마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상당한 결과까지도 주시기를 원한다고 기도한다. 

younsuklee@hotmail.com

 

01.1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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