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1박 2일 동안 사모세미나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다. 가정사역을 하는 제자가 ‘사모힐링캠프’라는 이름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목회자 아내를 위한 쉼의 자리를 마련했다. 규모가 작은 모임이지만 나름대로 알차게 목회자 아내들을 섬기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목회자의 아내들이 강의와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며 위로받고 회복되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다. 시작하던 첫해에 ‘목회자 아내의 정체성’이라는 강의로 동참했는데 올해 다시 함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동병상련이라고 비록 목회자 아내 십년 차에 도중하차 했지만 나는 목회자와 아내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안스러움을 동반한 동지의식을 느낀다. 은퇴한 상황이어서 준비할 시간도 넉넉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룹을 섬길 기회여서 흔쾌히 강의 수락을 했다. 어떤 주제가 좋을지 생각하면서 책 몇 권을 싸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많은 생각 끝에 목회자의 아내라는 위치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정서를 잘 돌보지 못하거나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모’를 주제로 정했다. 피터 스카지로의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 출판 이후로 크리스천의 정서적 건강에 대한 중요성은 많이 인식이 되고 있는 듯하다. 누구나 정서적으로 건강해야 하지만 만만치 않은 이민목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의 곁에 있는 아내에게는 더욱 정서적인 건강이 중요하다. 사모이기 때문에 ‘No’를 할 수 없어서 이 일 저 일을 다 감당하다 보면 어느새 주님을 위한 일이라는 명목 아래 소진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퍼우먼, 원더우먼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들은 사모는 교인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불합리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또한 목회자 아내는 화가 나도 화를 낼 수 없고 짜증이 나도 짜증을 낼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에 익숙해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언젠가 항상 미소를 띠고 있는 사모님을 보며 좋다는 생각보다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있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사모는 이래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늘 미소를 띠고 있다면 그 미소는 벗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기쁠 때 기뻐하고 짜증이 날 때 짜증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한 것이다. 사람들이 쏘아대는 화살에 다치기 싫어서 감정을 보호하는 두꺼운 갑옷을 입으면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상처를 피할 수는 있겠지만 그 튼튼한 갑옷 속에서 아름다운 정서까지도 질식해버릴까 염려스럽다. 목회자의 아내는 온전해야 한다는 잘못된 기대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들어져 가고 있는 사모가 얼마나 많을지,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하고 있는 사모는 또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첫 강의는 열심히 준비한 대로 마쳤다. 두 번째 강의 전날 밤에 그분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내용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하나님께 여쭈어보았다. 강의노트에 없는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자꾸 흘러나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들려주시고 싶은 것들이 덤으로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번째 강의는 이미 계획된 내용에 묶이지 않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나누었다. 참가한 분들은 강의 내용에 대한 본인들의 경험과 삶을 나누기도 하고 캘리그래프를 배워서 간단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날 나눔의 시간에는 오래전 남편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나누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있었다. 스물다섯 명 참가자 중에는 목회 중에 느낀 단상과 시를 모은 책을 출판한 분도 있었고 이번에 새로 시집을 출판한 젊은 사모도 있었다. 다 함께 글을 모아 책을 펴내자는 좋은 의견도 나왔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저녁 늦게 집으로 향하는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 것 같아서 뿌듯한 보람과 작은 기쁨으로 감사했다. 사모님들 힘내세요!
linda.pyun@itsla.edu
12.0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