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세력의 종말인가? 아니면 변화인가?

우익세력의 종말인가? 아니면 변화인가?

[롬니 대세론이 지배하던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의 연승에 힘입어 경선 초반 승리를 굳힐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롬니 대세론의 기반 중 하나였던 아이오와 코커스의 재검표 결과 롬니가 아닌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의 승리로 밝혀짐에 따라 롬니 진영은 크게 흔들릴 위기에 놓였다. 만약 경선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가 샌토럼의 승리로 발표됐다면 롬니 대세론은 힘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샌토럼의 돌풍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 두 번의 이혼과 ‘개방혼’ 문제로 논란의 정점에 선 전 미 연방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 후보가 승리를 거둠으로, 공화당 예비 경선 구도는 롬니, 샌토럼 그리고 깅그리치라는 삼각 구도로, 섣불리 미트 롬니 후보가 오바마 대통령의 대항마로 ‘2012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 단언을 못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 보수 복음주의자들의 고민이 있다. 몰몬 교인인 롬니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단’이며, 가톨릭 교인인 깅그리치는 국정 운영 능력이나 인지도 측면에서 공화당을 대표할 수 있지만 사생활이 문제다. 따라서 정치 현장에서 거의 풋내기에 가까운 전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릭 샌토럼에게 지난 14일, 게리 바우어, 제임스 답슨 등과 같은 복음주의 진영 지도자 150명이 지지를 천명했다. 한마디로 기독교 우익 진영의 가치들을 지켜나갈 보수주의자로 11월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인증(?)을 해준 것이다. 미 언론은 이와 같은 보수 복음주의 진영의 행보에 대해 한마디로 미국 정치의 보수 진영의 퇴장 즉 기독교 우익 진영의 종말이다, 아니다 라고 한참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의 연승 이후, 미트 롬니가 두 자리 수의 압도적 우세를 보이던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깅그리치 후보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를 거두게 됐다. 한마디로 판세가 며칠 사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앞서 열린 공화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선두인 롬니에 대한 타 후보들의 포화가 집중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인수합병(M&A) 전문 베인 컴퍼니 설립자로 억만장자인 롬니의 ‘상위 1%’ 이미지가 부각되며 대중적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몰몬교도인 롬니의 다소 진보적인 정책들이 티파티를 비롯한 공화당내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점이다. 일례로 롬니의 낙태 지지입장은 보수 기독교 종교색채가 짙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지에서 심한 역풍을 맞고 있다.

따라서 깅그리치의 급부상은 심상치 않은 바람으로 주목받는다. 그 이유는 바로 공화당내 보수파의 결집이다. 첫 코커스였던 아이오와에서 돌풍의 핵이었으나 아직은 정치 풋내기인 샌토럼에 비해 하원의장으로 당시 막강한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와 ‘맞짱’을 떴던 깅그리치가 더 신임을 얻으며 그에게로 중심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와 관련, 보수 유권자 층이 겹치던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가 19일 경선 중도 포기의사를 밝히며 깅그리치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깅그리치 진영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하지만 깅그리치 상승세라고 속단하기도 어려운 변수들이 나타났다.

아이오와 코커스 재검 결과 1위가 롬니에서 샌토럼으로 뒤바뀐 것이 한 요인이다. 깅그리치로 향했던 보수 표심이 다시 샌토럼으로 선회할 계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깅그리치는 역대 주자들을 주저 앉혔던 ‘여자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매리언이 ‘메가톤 급’ 폭탄선언을 준비 중이다. 공화당 유권자들은 이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본선 경쟁력을 고려해 롬니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보수의 대안’인 깅그리치 또는 샌토럼을 지지하느냐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 우익 진영은 14일, 릭 샌토럼을 ‘보수의 대안’으로 천명하면서, 롬니나 깅그리치가 아닌 7 명의 자녀를 둔 샌토럼 후보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소위 미국 정치에서 ‘크리스천 우익’ 또는 ‘종교적 우파 운동’은 기독교인들 중 일부가 자유주의자에 맞서 ‘반 동성애운동’(Anti-gay)과 ‘반 임신중절운동’(Pro-life, 생명존중운동)을 주창하며 정치적으로 결집한 세력이다.

특히1980년 복음전도자인 제리 팔웰(Jerry Falwell)의 ‘도덕적 다수파’(Moral Majority)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팔웰은 임신중절을 여성의 권리라며 임신중절을 옹호하는 자유파 의원의 이름을 공포하며 이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들을 선거에 낙선시키기 위한 운동에 나섰다.

종교우파 운동은 1980년대 선거에서 여성의 임신중절을 인정하는 지방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1980년대부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크리스천 우익 진영을 무시하고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었다. 현재 크리스천 우익 진영의 상속자인 ‘티 파티 운동’측에서도 샌토럼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내부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크리스천 우익 진영의 행보에 대해 대다수 미디어들은 ‘드디어 우익 진영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논조로 해석하고 있다.

조지타운대학 정치학 교수인 마이클 카진(M Kazin)은 ‘더 뉴 퍼블릭’에 기고한 글(The End of the Christian Right)에서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로 정치 현장에서의 보수 진영의 영향력 쇠퇴를 해부한다. 1)제리 팔웰이나 제임스 답슨과 같이 잘 알려진 리더들이 진두지휘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이 없었다.

2)크리스천 우익 진영을 책임질 차세대 리더들의 열정 부족 이 바로 점점 더 공적 현장에서 크리스천의 정치 참여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콜로라도주립대학 정치학 교수인 킴벌리 콩거(K Conger, The Christian Right and Republican State Politics의 저자)는 “쇠퇴나 종말이 아닌 크리스천 우익의 변화 즉 진화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라고 미디어의 집중 포화에 맞서고 있다.

콩거 교수는 “과거에도 정치 현장에서 우익 진영의 몰락은 수십 차례나 예언됐다. 우익 진영의 노선 역시 다른 사회적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분석한다.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우익 진영의 영향력 감소에 대한 미디어 중에서 그래도 가장 균형감을 가지고 보도하고 있는 곳은 워싱턴포스트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데이빗 프렌치(D French)는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에 맞설 공화당의 대항마로서는 그래도 기업가로 주지사로 경륜을 구비한 미트 롬니를 지지하고 있는 진영을 대표한다(Evangelicals for Mitt).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사설(Evangelicals leaders and the Santorum Endorsement: The old guard’s last stand)을 통해 오늘날 크리스천 우익 진영의 영향력 감소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1)릭 샌토럼 후보를 지지한 150명의 리더 중 대부분이 무명의 리더십이며 2)이들의 지지 기반이 중복되거나 없으며 3)군중 동원 능력이나 투표를 독려할 동기부여의 리더십이 부족하다.

따라서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후보자의 도덕성보다는 능력이다”는 의견이 확산돼,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을 추천하고 지지하는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 1995년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 타임지가 선정한 “1995년의 인물”로 지난 5월 대선 출사표를 던진 뒤 줄곧 형편없이 뒤져온 뉴트 깅그리치 후보가 다른 공화당 대선 후보들을 제치고 단숨에 선두 자리를 차지한 것도 이러한 보수 진영의 속내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경륜과 자금 동원 능력을 가진 롬니를 지지하는 실용주의 노선과 과거의 화려한 국정 운영을 앞세운 깅그리치 후보를 지지하는 구 보수 세력, 릭 샌토럼 의원의 청정 이미지와 도덕성을 지지하는 크리스천 우익 진영으로 아직까지 단일 후보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결론으로, ‘2012 공화당 예비 경선은 또 다시 대통령 후보의 인격과 성품이 먼저인가 아니면 국정 수행능력이 우선인가에 대한 승부처가 된다.

깅그리치가 보수주의적 견해를 워낙 조리 있게 설명하고 주창하기 때문에 보수 유권자들이 혼외정사와 같은 불미스러운 과거보다는 오히려 그의 능력과 경험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우익 조직인 ‘티파티 패트리엇’의 마크 메클러 공동의장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깅그리치가 보수주의자들의 목표와 분노를 잘 표현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의 과거사보다는 현재의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CBS뉴스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직과 세계적 위기를 감당할 수 있는 최상의 후보를 묻는 항목에서 깅그리치가 다른 후보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또 당선 가능성과 관련해 깅그리치는 43%를 차지해 20%를 얻은 롬니를 두 배가 넘는 격차로 따돌렸다. 공화당 유권자들이 깅그리치의 불미스러운 과거보다는 그의 국정 수행능력과 당선 가능성을 더 염두에 둔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월드지의 마빈 올라스키(Marvin Olasky)는 “자신의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못했던 사람이 어떻게 국정에도 충실하겠냐?”며 깅그리치 후보를 직접 반대하고 있다(Wanted: Extra-smart extroverted elephants).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깅그리치의 파괴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점이다. 오바마는 더딘 경기 회복과 9% 가까운 높은 실업률로 인해 재선 고지가 불안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깅그리치는 아직 오바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방송 여론조사를 보면 롬니가 공화당 후보로 나서서 오바마와 맞붙을 경우 45%대47%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리라 예상됐지만, 깅그리치가 나설 경우 오히려 51%대40%로 오바마가 그를 누를 것으로 예상됐다. 누가 과연 공화당의 대선 후보직을 따낼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우선은 크리스천 우익 진영이 릭 샌토럼 후보를 지지했고, 그 결과에 대해 미국의 관심이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