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 갑 목사 (아주사퍼시픽 대학교 교수)
여호와는 자녀를 세우시는 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이 시를 지은 솔로몬은 하나님을 집을 세우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 이 시의 저자를 생각하면 성전이라고 볼 수 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래서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성전을 세우시지 않으면 성전을 지키거나 세우는 일이 허사가 된다는 말이다. 또한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이 그 집을 가꾸고 지키는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당연하다. 아무리 집을 튼튼하게 짓고 무너지지 않게 특별한 재목으로 집을 짓는다 해도 우리는 자연재해나 폭풍우로부터 집을 안전하게 보호할 재간이 없다. 2010년 아이티 대 지진시 거의 모든 건물이 다 무너졌고 사상자만 316,000명이었고, 2004년 인도 쓰나미때에는 23만 명이 죽기도 했다. 2008년 미얀마를 강타한 태풍 싸이클로 나르기스는 14만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2008년 중국 사천성 대지진에서는 7만명이 죽고 약 25조의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집을 지은 다 해도 하나님이 보호해주지 않으시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집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시편 127편 1절에서 말하는 집은 자녀를 의미한다. 자녀는 집을 건축하게 하고 집을 세우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1절의 ‘집을 세운다’ 할 때 세운다(build)는 단어가 창세기에서 사라가 자기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들을 낳을 때 등장한다.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I can build a family through her). 즉 자녀를 통해 가정을 세운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녀는 가정을 세우는 핵심 요소임을 알았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녀를 통해 복을 주시고 가정을 세우게 하신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1장 21절을 보라.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 그 산파들(십보라와 부아)들에게 자녀들을 많이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의 가정을 세우셔서 많은 자녀들을 주시는 복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가정을 세우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가정의 건축자이시고 보호자라는 것을 솔로몬은 알았다. 여호와께서 자녀를 세우지 아니하시면 부모의 노력이 헛되며 여호와께서 자녀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부모의 노력이 허사라는 것이다.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
그러기에 시편 127편 3절에는 자녀를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기업이란 물려받은 유산 혹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거저 받은 재산이라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내용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 기업이 어디서부터 왔는가이다. 자녀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 했으니 우리의 자녀는 우리 조상이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자식이 하나님의 기업이므로 자식을 키우는 것도 돌보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부모는 지금 혼자가 아니며 하나님이 지금 우리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즉 부모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식을 대신 맡아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부모가 자녀를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행하고 알아야 할까? 시편 127편 4-5절은 이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127:4-5). 젊은 자의 자식! 이스라엘 민족은 여자가 보통 10대 후반에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기 때문에 젊은 자의 자식이라고 표현한다. 그 자식들이 화살통에 가득하였다고 하니 대가족을 의미한다. 보통 화살통에 화살이 8-10개정도 들어가니까 자식이 8명-10명 정도의 많은 식구를 의미하고 결국 이는 하나님이 큰 복을 내리셨음을 의미한다.
그런 많은 자녀들을 장사의 수중에 든 화살이라 표현한다. 군인이면 누구든지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 들어 있으면 기뻐할 것이며 또 전쟁 중에 무기가 많이 구비되어 있으면 그 전쟁은 이기는 싸움이리라. 따라서 이 구절은 전쟁의 비유를 통해 자녀들을 화살로 나타내고 있는데 자식이 많다는 것은 부모에게 축복이 되는 바, 부모가 늙어 어려움에 처할 때(원수와 성문에서 담판할 때) 자식이 부모를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방향성 있게 다듬어 보내는 존재
솔로몬은 자녀를 왜 화살로 비유했을까? 또 부모를 장사(군인)로 비유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부모의 자녀교육의 방향과 책임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즉 화살은 군인이 쏘는 대로 초점에 맞추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화살이 목표에 정확히 맞춘다는 의미는 자녀가 부모의 효과적인 교육을 통하여 자녀가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도덕적,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허락한 삶의 목표와 비전을 정확하게 달성됨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서 부모들의 책임과 역할을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화살은 장인공에 의해 다듬어져야 하듯이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잘 다듬고 훈육하는 일이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바울은 부모들에게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교훈(instruction)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아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을 말함이요, 훈련(training)이란 자녀가 잘못할 때 이를 깨우칠 수 있도록 그에 상응하는 질책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 교육은 한편으로는 인격적인 양육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책임의식과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기 위해 잘못한 일에 대한 징계도 필요하다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부모 역할이다. 세상에 부모만큼 고난이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요구되지만 현재 부모만큼 준비 없이 무계획적, 아마추어적으로 행하는 것도 없다. 또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아무런 권리가 없고 힘들다고 도중에 그만 둘 수 없으며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는 의무만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또한 부모는 자녀를 기르고 훈육하고 교육하는 것을 계속하게 되지만 그 효과는 몇십 년이 지난 후에야 보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힘들고 고달픈 것이 부모 역할이다. 그러나 그 부모의 손길에 따라서 아이들이 변화되고 성숙하고 믿음이 자라고 마침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동적인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참으로 미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이지만 부모의 손에 닿는 순간 아이의 엄청난 잠재력이 발견되고 키워지고 발전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엄청난 선인이 되든지 악인이 되든지는 전적으로 그 부모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현인들의 삶을 반추해보면 한결같은 위대한 부모들이 있었다.
윈스턴 처칠은 과거에 그를 가르쳤던 많은 교사들 명단을 보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나의 가장 위대한 교사인 나의 어머니를 잊어버리고 있군요.” 그래서 부모는 겸비한 마음과 떨리는 심정으로 자녀를 사랑과 훈육으로 가르쳐야 한다. 좋은 화살이 되기 위해서는 다듬어져야 하고 날카롭게 촉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자녀는 그들이 부모를 떠날 때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 양육되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화살은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좋은 화살은 훈련받은 장수에 의해 쏘아질 때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를 하나님의 가치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세상적 가치로 자라게 할 것인가? 성공한 자녀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행복한 자녀로 자라나게 항 것인가? 자녀를 부모의 꿈, 희망,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양육할 것인가 아니면 자녀 고유의 가치와 은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양육할 것인가? 선택은 부모 각자가 결정할 것이지만 그러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솔로몬은 잠언 22장 6절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쪽으로 양육되면 늙어서도, 즉 나이가 들어도, 아이가 자라고 성숙되면 그런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자라난다는 말이다. 부모들이 모범을 보이고, 하나님을 경외함을 자녀에게 보이면 자녀들이 그렇게 배운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살은 놓아져야 한다. 화살은 시위를 떠나야 한다. 자녀는 자라면 반드시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한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녀가 때가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서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자녀의 소유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므로 때가 되면 자녀를 하나님 품안으로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한나가 서원한 대로 사무엘을 성소에 데려간 것처럼,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처럼 말이다.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 시127:1)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자녀는 하나님 소유이고 잠시 부모에게 맡겨 놓으신 것임을 명심하자. 그러기에 하나님 품이 가장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임을 늘 명심하자. 자녀가 내 소유임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내 자녀를 보내드리면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가장 합당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녀를 사용하실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세우신 기관으로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디어이시다. 그래서 가정은 신성하며 희생을 치를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이다. 절대 부모역할을 과소시키지 말라! 부모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요 사랑의 헌신이다. 몇 해전 필자가 진행하는 기독교 부모 세미나에 참석한 한 어머니가 보내준 글인데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여기에 싣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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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드리는 어느 어머니의 고백과 기도
나의 자녀 어릴 때 간절히 바라는 관심의 눈망울을 마주쳐 주지 못하고 그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음을 용서하소서…. 주님을 사랑하여 처음 받은 장학금 백불에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을 때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여겼습니다… 나의 자녀가 마음으로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 내민 손이 거절당했을 때에도 난 그것을 감지하지도 못하고 위로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나의 자녀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믿음의 그 축복의 순간들을 감사하며 함께 누리지 못하고 교만했습니다…
어느 날 나의 아이가 진화론에 시달리며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고 깊은 어둠에 치달아 내게 고함치듯 질문할 때까지 난 그저 아이의 믿음에 대해 안일한 마음을 가진 미련한 부모였습니다… 자녀의 고통의 순간순간을 살얼음을 딛듯 걸어가면서야 미련한 전 이때까지 아이의 믿음을 붙들고 있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밝은 마음으로 주일을 준비하던 자녀가 꿈지럭대기 시작하고 옆에 책을 끼고 교회에 가겠다고 느지막히 나오기 전까지 난 나의 자녀의 기쁜 예배를 향한 발걸음에 감사한 적이 없이 당연히 여기는 안일한 부모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인 나의 수고와 고통을 최소화하고 나의 자녀는 잘 키울 수 있을까 궁리해왔던 난, 참 어리숙하고 미련한 부모였습니다… 지금은 장성하여 떠나 매일 아침, 저녁 얼굴도 볼 수 없는 곳에 있는 자녀를 위해 아직도 내 눈에서 흐르는 간절한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자녀를 뒤늦게나마 깨달은 무지한 부모의 단 한 가지 소망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미련한 눈의 꺼풀을 벗겨 주사 자녀를 통하여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사, 그 주신 짧디 짧은 은혜의 순간순간에 우리의 눈을 자녀의 눈과 마주치며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되어 주소서…. 아멘! hlee04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