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 갑 목사 (아주사퍼시픽 대학교 교수)
교회교육의 핵심자원을 흔히 교회교육 전담 사역자들과 교사들을 꼽는다. 그러나 중요하게 간과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학부모이다. 아이를 학교나 교회에 맡겨 놓고 자녀교육에서 손을 떼려 하는 부모님들이 있는 한 자녀교육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같이 자녀교육의 책임이 바로 부모에게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대교육의 성공요인이 바로 부모의 일차적 과제가 자녀교육에 책임을 지우게 하는데 있었다.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이번 회와 다음 회 두 차례에 걸쳐 싣고자 한다.
어머니 모니카 이야기
기독교 역사상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성자 어거스틴은 주후 354년 11월 13일에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교도였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인 어거스틴이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 것을 위해 기도했지만 어머니 기도와는 달리 어거스틴은 이미 소년시절부터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수많은 여자와 동거를 하고, 18살 때는 아들을 낳았으며, 젊을 때 마니교라는 이교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어머니 모니카는 날마다 교회에 와서 울며 기도하는데, 그때 고향 타가스테교회의 감독이 모니카를 위로하며 격려한 말은 그녀의 삶을 온전히 바꾸어 놓았다.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좌절하지 마십시오. 계속 기도하십시오’라는 말은 평생 그녀의 좌우명이 된다. 결국은 하나님은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에 응답하신다. 386년 그러니까 어거스틴의 나이 32세가 되던 해, 그는 로마서 13장 13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를 읽고 긴 방황의 종지부를 찍는다. 이후 어거스틴은 거듭나서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성자요, 신학자요, 목회자가 되게 된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탕자였던 자기를 새롭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 모니카가 보여준 그대로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자녀 이야기
자녀의 성공은 부모의 성취, 업적, 지식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 밑에서 망나니 같은 자녀가 있는 것을 많이 보아왔고, 또 반대의 경우도 많이 경험하고 있다. 성경에도 그런 예는 무수히 많다. 부모는 성공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 말이다. 예를 들면 히스기야왕은 무너져가는 유대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이방신상을 혁파한 성군이었다. 그가 병에 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고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15년간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 바로 이때 그의 아들 므낫세가 태어났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유다를 우상숭배의 길로 인도하였다(왕하21:1-9). 더구나 그는 예루살렘에서 무죄하고 경건한 자들을 많이 죽여서 성경은 유다의 멸망이 그의 탓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왕하21:10-15, 렘15:4).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불신앙으로 점철된 경우이다.
모세의 형인 아론은 어떤가? 그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의 시조이며 종교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식농사에서는 실패자였다. 그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함으로 불이 여호아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 죽이고 말았다(레10:1-2). 아마도 그들은 술에 취한 채로 분향을 드려서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을 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일 후에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회막에 들어갈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레10:9)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또 어떤가? 그는 한나의 눈물어린 기도의 응답으로 태어난 아들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정설립의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역시 아들을 올바로 교육하지 못했다. 그의 아들들은 백성들의 송사를 처리할 때 뇌물을 받고 처리하여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매우 근심케 했다(삼상8:3). 결국 장로들이 이를 빌미로 왕을 세울 것을 사무엘에게 요구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왕정의 일정부분의 책임은 사무엘이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던 것에서도 기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일컬음을 받은 다윗은 어떤가? 그 역시 자식 교육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첫째 아들 암논은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였고 이 사건은 그녀의 친 오빠이자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는 암논을 죽이고 아버지를 반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대낮에 아버지의 처첩과 동침하는 죄까지 저지르게 된다. 그의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알았으면서도 스스로 왕이 되려고 시도했고 이후 아버지 시녀 아비삭을 아내로 삼으려다 결국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부모가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한다고 해서 자녀가 저절로 잘 되고 잘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부모가 성공하는 것과 아이들이 잘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부모가 성공의 신념을 가지고 하루 종일 밖에 있을 때에 아이들은 혼자 고립된 영역에서 버려져 있거나 잘못된 환경에 유혹을 받기에 가장 쉬울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명심하자! 잘못된 쪽은 아이가 아니고 부모에게 있다는 사실을. 왜 그런가? 자녀는 부모님을 보고 배운 대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부모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모세의 부모를 보자.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출2:1)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아이의 잠재력을 보았다.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즉 하나님의 가치가 그 아이에게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모는 세상의 왕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아이를 세달 동안 숨기고 마침내 갈대상자 안에 아이를 넣어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그녀는 아이 사무엘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의 비전을 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2:1). 디모데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의 믿음을 보고 자라났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녀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
자녀교육에서 100%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색다른 이론으로 자녀교육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녀교육의 핵심은 자녀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데 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노엽게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부모가 자녀를 배려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함으로 자녀가 불안해하는 상태를 말한다. 부모의 비 일관적이고 잘못된 행동은 결국 자녀의 용기를 잃게 만들고 낮은 자긍심, 자존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역할 모델이 되는 데에서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일전에 만났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내 아이가 자기 친구들에게 나는 내 아버지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던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자녀에게 물어보자.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 열 명을 꼽아보라고. 그리고 그중에 부모가 들어가는지 아닌지를 보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대화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이상의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녀교육의 고전이 되는 책, ‘부모와 아이 사이’라는 책을 저술한 하임 기네트 박사(1965)는 이 책에서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아이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라고 권면한다. 즉 아이를 존중하지 않고 아이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이는 자존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이를 나와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아이를 항상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아이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기네트 박사는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자녀는 우리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각과 기대, 목표의식을 불어넣기보다는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의 목표의식을 불어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건강한 자녀교육의 몇 가지 방법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첫째, 자녀를 위해 기도하자. 늘 기도하자. 눈물로 기도하자. 자녀가 일어날 때, 밥 먹을 때, 학교에 갈 때, 학교에 있을 동안에, 집에 올 때,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잠을 잘 때 쉬지 말고 기도하자. 어떤 어려움이 올 때에라도 가정과 자녀가 당신이 돌보야 할 우선순위임을 잊지 말자. 둘째, 함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너무도 바쁜 시간 속에 살고 있기에 늘 다른 것에 집중하다 살면 정작 자녀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러기에 자녀들과 함께 있을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이를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자. 예를 들면 토요일 오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자녀와 함께 있겠다는 다짐을 하고 이를 지키도록 하자. 그리고 늘 대화하자. 자녀와 대화하는 통로를 항상 열어 놓자. 하루에 얼마나 자녀와 대화하는가? 30분 이상 대화하는 부모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는가? 셋째, 언행일치의 모습을 자녀에게 늘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신은 지키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늘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행위를 요구한다. 그것을 위선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가? 저들은 자신들은 하지 않으면서 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부모는 성경말씀을 입으로 가르치기보다는 행동으로 가르칠 때에 자녀들은 변화하게 된다.
성공하는 자녀로 키울 것인가 행복한 자녀로 키울 것인가?
과연 성공이란 무엇인가? 돈을 많이 벌고, 일정한 지위에 오르고 남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성공인가? 성공의 기준을 외부에서 찾기보다는 가정 내부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부모의 행동기준을 이렇게 세워보자. 지금 여기에 내 아이들이 나와 함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나의 평소의 행동과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의 행동과 다르다면 나는 올바른 자녀교육을 하고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행복을 가정 안에서 자녀와 함께 하는데서 찾기를 기도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 기억할 일이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였다. “대통령으로서 딸의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해 지는 장면을 감상하며 딸이 탄 그네를 밀어주는 것입니다”(동아일보 2016년 12월 31일자 기사). 한국의 석학이라고 불리시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그분의 딸 고 이민아 목사를 기억하면서 쓴 책, “딸에게 보내는 마지막 키스”(열림원)를 읽는 중에 그만 필자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딸에게 굿나잇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 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프다며 이렇게 고백한다.
“만일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면 딱 한번만이라도 좋아요.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딸은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겠지요.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하고 외치면 나는 글쓰던 펜을 내던지고 읽다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펴 딸의 가슴을 안을 겁니다. 딸의 키가 천장에 다다를 만큼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딸의 눈, 상기된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할 겁니다.” hlee04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