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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주인 되신 성탄절 돼야 한다!

2016 성탄절 맞아 그 유래와 의미 그리고 올바른 실천위한 제안
그리스도가 주인 되신 성탄절 돼야 한다!

[“성탄절”을 보낸다는 것은 성자(聖子) 하나님께서 인성(人性)을 취하시어 이 세상에 구속사적(救贖史的)으로 임하신 일을 기념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들은 주님께서 정확히 어느 날 이 세상에 태어나셨는지 알지 못한다. 성경이 그 정보를 우리에게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성탄절을 지키는 기간이 다르다. 로마 시대에 태양신을 기념하던 이교적 절기에 교회는 태양이 신(神)이 아니며 우리 주님만이 하나님이시고 영적인 의미로 진정한 태양이심을 증언하면서 지키기 시작한 것이 크리스마스(Christ-mas)의 기원이 됐다. 이 말은 그리스도에게 예배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이교(異敎) 나라였던 로마에 기독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생긴 절기다. 이전에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는 더 이상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성탄절인 크리스마스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예수가 빠진/없는 성탄절”을 우리는 지키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생략된 그야말로 예수님 없는 예수님 생일잔치로 세상이 시끄럽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에 예수가 없다.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은 크리스마스로 돈을 벌어 보려는 얄팍한 상술이다. 그러나 이 상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교회가 더 문제다. 예수님 없는 예수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성탄절이 될까? ]

올곧은 성탄절이란 이 날에 우리 주께서 탄생하셨다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의 사실을 생각하며 기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성육신(成肉身)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생각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했기에, 주님께서 성육신하셔서 대리속죄(代理贖罪)의 죽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정도이며, 이와 같이 심각한 죄 문제 때문에 주께서 성육신하셨다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사실을 주의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런 성육신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성탄절이라면 참으로 무의미한 날이다.

또한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알릴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날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진정한 의미 없이 이 절기를 보내는데 익숙해졌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촌에서 시리아 반군 거점인 북부 도시 알레포는 가장 잔인한 성탄절을 맞는다. 유엔은 올해 성탄절 무렵이면 알레포 내 식량과 식수를 포함한 물자들이 모두 바닥나, 알레포에 고립된 민간인 27만여 명이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휴전과 구호물자 보급을 요구해왔다. 알레포와 같은 곳에 비싼 성탄 트리나 점등 시설 설치 비용대신, 당장 먹거리와 따뜻한 담요를 전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성탄의 의미와 부합될 수 있다. 바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 위에는 화평이요, 사람들에게는 호의로다”라고 선포했다. 이와 같이 땅 위에 화평(和平)과 사람들에게 호의(好意)가 드러나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즉 죄인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했고, 그분을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다. 이 구속사역이 이 땅에 화평을 주고 사람들이 호의를 받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결국 온전한 크리스마스의 회복은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시대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첫 성탄절의 아픔처럼 지금도 예수님은 환영받지 못한다.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공간이 없다. 교회는 연말연시 다양한 행사들과 내년 사업 계획 등등으로 분주하고 복잡하다.

성탄절은 모름지기 예수님의 계절이다. 영혼의 말구유에 예수가 없는 사람은 성탄절을 충분히 누릴 수 없다. 성탄절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날이다. 예수님이 선물이시다. 이 선물을 받지 못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교회가 이 예수님을 선물로 주는 일에 관심을 갖고 생명의 알짜 복음을 제시해야 된다. 성탄의 계절에 교회는 예수님을 다시 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케 해서 예수님을 선물로 받는 성탄절이 돼야 한다. 예수님을 선물로 받고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성탄절이 돼야만 한다!

크리스마스의 왜곡은 기독교 복음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참된 크리스마스가 돼야 한다. 우리 영혼의 말구유에 아기 예수님께서 누우실 수 있기를 바란다. 온 교회와 성도가 주님의 기쁨을 구하는 참된 예수님의 생일잔치를 벌여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 즉 피흘려 죽음으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신 그분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대열에 함께 설 수 있게 돼야 한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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