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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이판사판

엄규서 목사 (윌셔크리스천교회담임)

우리가 잘 쓰는 용어 중에 결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두고 ‘이판사판’ 싸운다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광경을 묘사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불교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승려들 중에 일부는 ‘이판 승’(소승불교)이라 하여 산에서 불도를 닦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금식을 하며 도를 닦았으며 물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부류는 ‘사판 승‘(대승불교)이라 하여 결혼도 하고 부를 축척하였으며 타종교와 같이 대중 속에서 포교활동을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날 산에서 도를 닦던 이판승이 내려와 호화롭게 처자식을 거느리고 사는 모습을 보니 속이 뒤집혀 사판승에게 “나는 날마다 도를 닦고 불교의 발전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너는 이렇게 나태하고 호화롭게 지내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자 사판승이 하는 말이 “나는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 시주를 받아 절을 관리하고 그들에게 설법을 하느라 고생을 하고 있고 어쩌다 산에 가서 보면 너는 잠만 자고 있던데 무슨 말이냐!”라고 하며 싸움이 붙었다고 합니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이판사판” 싸운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언젠가 꽃꽂이를 유심히 본적이 있었습니다. 정결하고 아름다운 꽃꽂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긴 잎은 뒤에서 안정감 있게 서 있고 크기가 작은 순서대로 꽃을 꽂으면 조화로운 꽃 장식이 됩니다. 만약 큰 잎이 달린 장식을 앞에 새우고 작은 꽃을 뒤로 한다면 꽃 장식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찾아볼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사는 이 미국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타협을 하는 사회풍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전 TV를 통해 한 방글라데시인의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오래전 한국인 부인과 결혼을 하여 슬하에 자녀를 두고 직원이 100명이 넘는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생활이 괜찮아지자 한국에서 가장 비싼 차를 샀습니다. 그러나 그 차를 주차할 때마다 바퀴를 펑크를 내거나, 차에 흠집을 내는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그는 울면서 자신의 여권을 보여주며 자신도 대한민국의 시민임을 호소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여러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일부는 함께 슬퍼하며 한국의 이민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울분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 네티즌 사이에는 ‘억울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악플로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이민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만약 미국에 사는 우리 이민자들이 이 같은 일을 겪으며 살고 있다면 이곳에 사는 우리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한국에 살고 있는 분들까지 인종차별을 들먹이며 항의를 하였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 음악목사님의 조카가 대학을 지원하고 입학인터뷰를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교수가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그중 한 교수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학생은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을 수 있겠나?” 이 질문에 조카는 교수님 그 질문은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며 그것을 생각하는 시간에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할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만약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그 비생산적인 질문을 한 교수의 강의는 신청하지 않겠다고 하였답니다. 이 질문을 한 교수는 담당교수였습니다. 그 담당교수는 그 조카에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학생이지만 합격을 시키면 공부는 잘할 것으로 믿고 합격을 시킬 것입니다. 또한 학업을 잘할 수 있도록 개인장학금을 주도록 할 것이다”라고 약속해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우리생각과 차이가 나면 편당을 만들고 다툼을 합니다. 흑백논리가 분명하여 서로 양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많은 단체와 기관들은 물론 조그마한 소그룹도 편당을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나와는 다르지만 받아들이는 넉넉함이 필요합니다. 이판사판으로 싸우는 사회가 아닌 협력하여 의를 이루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새해 마음을 합하여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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