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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칼럼

하나님의 카이로스 타임은 신뢰만으로 열리는 관계의 시간

이희녕 사모(뉴저지복음장로교회)

하나님께 쓰는 편지로 시작하여 큐티하는 것을 김준곤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이어서 생명의 삶을 길동무 삼아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 만남의 관계를 다져오며 큐티 전도사로 올인 한 세월이 어느덧 4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무신론자가 몰려오는 깊은 허무가운데 자살직전에 하나님을 믿겠다고 손들고 구원을 받았다 해서 사고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순식간에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젖어있는 허무주의와 인본중심의 사고들이 큐티를 하며 체험해 알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 속에서 더욱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깊은 회의와 혼동의 늪에서 허우적댈 때도 많았습니다.

은혜 받는 말씀 그대로 살아보려 철저히 복종하는 삶을 선택할수록 현실에서 부딪치는 고통스런 갈등이 심화되어 하나님을 떠남이 당연한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혼자는 도무지 감당 못할 한계가운데 하나님의 여러 성품들을 몸으로 체험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놀라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내 인생이 이제는 정말 끝이다”라는 극한의 두려움에서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푸라기로 죽을 힘을 다해 잡고 예수님께로 엎드려졌을 때마다 설명할 수없는 평안이 마음에 스며드는 위기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위기들이 구원자 하나님,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평안의 하나님, 함께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주께만 돌아서면 만져주시고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울고 또 울고… 감격으로 찬양 드리고 점점 하나님의 됨됨이에 빠져들며 서서히 불신자의 사고방식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이해하고 사고구조가 변화되고 하나님과 24시간 동행을 누리는 영광의 삶으로 달라졌습니다.

큐티 전도사를 하며 늘 안타까운 점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문제의 해결에 눈이 고정돼 있어 자신이 듣기 좋도록 적용하는 경향이 있어 열심히 큐티를 하긴 해도 말씀과 많이 빗나가 삶의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자기의만 쌓여가는 형식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말씀사랑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며 은혜에 목마른 천국 동창생들과 간절히 나누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의 인간의 사고구조는 엄습해오는 생존의 불안에 자구책으로 인본주의는 제한된 인간의 크로노스 시간가운데 행위구원을 시스템으로 끊임없이 굴러가기 때문에 쉼이 없습니다. 행위이냐? 은혜이냐?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행위구원의 종지부를 찍고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모든 이가 구원을 얻도록 다리를 놓아주심은 다만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그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오직 그 분이 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역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큰 대문을 열어 놓으셨거든요.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때를 카이로스타임이라 부릅니다. 사람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은 너무도 다릅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타임은 곧 관계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신뢰할 때만이 하나님의 나를 향한 마음을 알게 되고 그 분과 가까워집니다. 그 분의 성품을 신뢰하고 믿는 것만큼 그 분의 나를 향한 사랑을 만납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아들을 원수 편에 서있는 자 위해 생명을 내어주겠습니까? 오직 그 분이 사랑임을 받아들이고 믿을 때 하나님과의 만남의 대문이 열립니다.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십자가가 죄인과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열어주는 대문이 되셨습니다. 신뢰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열 수 있는 카이로스타임으로 들어가는 키입니다. 누구든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주로 신뢰하고 나아오는 자에게 우리 주님의 마음의 쉼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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