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이유는 크게 삼백 종류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선한 일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일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은 선물을 받을 때의 기쁨보다 더욱 큰 이유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통해 남을 소중히 여기게도 되지만 결국은 자신의 존재감과 성취감으로 뿌듯해지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교회 학교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루에 한 가지 착한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일 주일동안 살면서 착한 일을 하고 그것을 노트에 적어 내면 상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착한 일을 하기 위해 평소에는 등한시 했던 청소하기, 심부름하기 등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착한 일을 한 아이들을 선별하여 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세브란스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1900년 미국 클리블랜드의 부호였던 세브란스씨가 세브란스 병원의 건립기금이 될 막대한 돈을 헌금하자 에비슨씨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 때 세브란스씨가 한 답변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더 큽니다.”
자발적으로 사회를 위해 선한 일을 베푸는 행위는 그 일을 통해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겠지만 형식과 가식적인 선한 일은 허영심에서 일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IPA: /nɔblɛs ɔbliʒ/)란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와 사회 지도층은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도덕성을 요구하는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기록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어원은 이러합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하게 된 때입니다.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을 하고 맙니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되지만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라고 하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 명에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어원으로 기록됩니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습니다. 로마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것 뿐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솔선하여 병역에 참여하거나 거금을 기부하여 도로를 포장하는 일이나, 공공시설을 보수하는 일을 통해 사회적 봉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로의 이름을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미국에도 전승되어왔습니다. 미국 법령에 제안자의 이름이 들어가 “매케인-파인골드법”(McCain-Feingold Act) 같이 법률 명칭을 부른다던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멜론 대학교, 은행가 존스 홉킨스가 세운 존스 홉킨스 대학교 식으로 설립자의 이름을 붙인 대학 등이 현재 미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래 노블리스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제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두 단어를 합성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닭의 사명은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어떤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울어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마다 세상이 악하다고 합니다. 악이 득세하는 이때 마음 다해 선을 행한다면 메마른 이 시대에 슬픔을 주제인 악은 떠나고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