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빛과 소금으로...

성탄 축하 공연

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어린 시절 성탄축하공연을 위해 성극과 찬양, 율동 등을 준비하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처럼 성극 대본이나 행사를 위한 가이드 책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서 주일학교교사들이 손수 대본을 만들곤 했습니다. 성극을 위한 도구들도 색지나 박스 등을 이용해서 밤샘작업을 하며 만들었고, 의상을 만들기 위해 동대문시장에서 천을 사서 동방박사, 천사, 목동의 옷을 만들었습니다. 마리아 역할을 하는 아이는 엄마의 한복을 줄여서 입었고 요셉은 아버지 양복윗도리를 입고 성극을 했었습니다. 기억해보면 정말 신나고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성탄축하공연을 보면서 웃기도 했고 감동 받아 눈시울을 적시던 모습은 모두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순수했던 모습들 이었습니다.

성탄성극은 동서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감동을 줍니다.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 월리라는 9세 소년이 있었습니다. 4학년에 해당되었지만 지적능력이 다소 떨어져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서도 해마다 성탄절이면 성극을 하게 되는데 그해에는 월리라는 아이가 여관집 주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예배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연극이 시작되었고 극중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해야 할 때였습니다. 주인의 역할은 나와서 방이 찼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처 그 대사를 하기도 전에 요셉과 마리아의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간절히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우리는 너무 먼 길을 왔습니다. 아내가 금방 출산을 할 것 같습니다.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여관주인으로 분장한 월리는 말을 잊은 채 마리아를 오래도록 쳐다보았습니다.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주던 선생님은 윌리가 대사를 까먹은 줄 알고 자꾸 읽어주었습니다. 한동안 서 있던 월리는 선생님이 크게 읽어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습니다. “안돼요! 방이 없다니까요. 가세요!” 결국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얼굴로 돌아서려고 할 때였습니다. 대본대로 이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야 할 월리가 돌아가는 요셉의 가족을 걱정스러운 듯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요셉, 마리아!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들어와요!”라고 각본에도 없는 대사를 했습니다. “내 안방을 쓰세요. 내 방에 들어가세요!” 연극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민 초창기에 가족과 함께 수정교회 성탄공연을 보러간 적이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큰 규모의 공연에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천장에서는 천사가 날아다니고, 양, 염소가 등장하고 동방박사들은 낙타를 타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극장에서 쇼를 관람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의 성탄축하공연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장면들이었습니다. 그 공연을 소개해준 후배에 의하면 공연을 위한 연습은 일년전부터 배역을 정하고 소품들을 준비하며 그해 공연이 끝나면 곧이어 다음해 공연을 준비하다고 하니 더욱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물론 공연의 규모에서도 놀랐지만 공연준비를 위해 일년내내 준비한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고작해야 몇 주 정도를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고작이니 말입니다. 이제 이런 성탄축하공연이 계속적으로 이어져 후세들에게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 입니다.

얼마 전 저희 교단 세미나 참석했을 때 한 강사의 강의내용은 우리의 마음을 쓸쓸하게 합니다. 미국교단의 연간통계자료에 의하면 건물유지를 못하여 많은 시골교회들이 폐쇄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교회구조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통계입니다. 청년, 학생은 물론 주일학교가 없으니 교회의 존재가 불투명 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통계입니다. 성탄이 되어도 성탄축하공연은 꿈도 꾸지 못하고 노인들 몇몇이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성탄축하행사의 전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탄을 준비하던 분주한 손길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아이들을 주려고 굽던 쿠키냄새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근래 고국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우려의 말씀들을 합니다. 한국 교인들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고 젊은 층들이 대거 타 종교로 이동하고 있어 교회가 고령화되어간다는 걱정들을 하십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공연을 준비했던 열정과 순수함이 그리고 월리처럼 맑고 깨끗한 모습들이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후세에 이어지는 성탄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