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중앙장로교회)
신학대학원생 시절, 방학이 되면 낙도와 오지로 선교활동을 다녔습니다. 일 년에 두 번은 꼭 다녀온 곳이 강원도 삼척군 신기면 대이리 라는 마을입니다. 요즘은 환선굴이 개발이 되어 하루에도 많은 차량이 오고 가지만 1995년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하루에 여섯 번 다니는 버스가 전부였습니다. 누가 몇 시에 타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 사람이 기다리지 않으면 친절한 기사는 경적을 울리곤 했습니다. 대이리에는 21 가정이 살고 있고 조상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 마을에 선교를 가면 늘 머무는 집이 있습니다. 마을 중간에 개울이 흐르고 ‘덕촌’이라는 간판을 붙여 놓은 집, 김진우라는 형제가 살고있는 집입니다. 참 해맑은 미소를 담은 형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근육 무기력증을 앓기 시작해서 중학교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한참 꿈으로 자라나는 청소년 시기에 점점 약해져 가는 몸으로 결국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옆 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마치 강을 건너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비관하고, 내일을 그려볼 수 없는 아픔을 삼키며 살았던 진우에게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 라디오 방송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사랑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주님이 궁금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우 형제의 스토리를 듣고 저는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면 선교팀과 함께 그의 집에 방문해서 말씀을 나누고 온 마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진우 형제는 그렇게 신앙으로 자라갔고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시를 써서 아름다운 삶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진우 형제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지나간 편지를 정리하다가 진우 형제에게 보낸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2003년 1월17일 당시 진우 형제가 많이 힘들어 할 때 제가 유학했던 마지막 해에 보낸 글이었습니다.
“그는 친구가 참 많은 사람이다. 봄이면 파릇한 풀 향을 실어 날으는 봄바람이랑 여름이면 긴 태양의 등살에 풀 죽은 호박덩굴이 온몸을 풀고 가을날 여치와 귀뚜라미 온 밤 울고 나면 모두 떠난 자리에 여전히 창가를 두드리며 찾아오는 겨울바람, 그는 참 친구가 많은 사람이다. 난 그의 친구인 것이 참 좋다. 때로 푸른 하늘 한번 차분히 쳐다보지 못하고 지나는 날, 사방에 핀 꽃을 향해 걸음 한번 멈추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빛처럼 떠오르는 그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거나 먼 이국땅에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나설 때 문득 떠오르는 그를 그려보면 달님은 따스한 빛으로 그의 모습을 비춰준다. 사랑하는 진우 형제, 당신은 소망을 품은 한 마리 새입니다.”
오늘 긴 세월 흘러 진우 형제 소식을 알아본 후 마음 깊은 아픔의 빗줄기가 흘렀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 안긴 형제. 많은 아픔과 눈물로 걸어온 삶이지만 하늘 같은 미소로 살아간 형제, 그의 삶을 그려보면서 가장 낮은 자에게 찾아오셔서 하늘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삶이란 때론 아픔도 깊지만, 한없이 경이롭고 매 순간 고마움으로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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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