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중앙장로교회)
이전에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차분하게 보이는 눈빛과 정갈한 말씨가 특별한 분이 있어 물었더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필리핀에서 방문한 여행객이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경의 야고보의 유해가 9세기에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많은 순례객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800킬로미터나 되는 순례길을 걸으며 예수님을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한 아름다운 영혼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주어진 휴가를 순례길을 걷는데 사용한다는 말에 순례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지상에서 한번 태어나면 자연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한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을 때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조용히 나오는데 “혹시 목사님이세요”라는 질문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님은 유학생들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한 중형교회에서 담임목사 초청을 받았는데 사모님과 기도한 후에 선교사의 부름에 응답하여 온 분이었습니다. 모든 친구들이 만류하는데 대부분 유학생 밖에 없는 미지의 땅으로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의 삶을 주님을 위해 드리는 마음으로 부부는 기꺼이 순례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렌트비도 내기 어려운 교회를 이끌고 있지만 그들의 헌신은 다함이 없었고 그들의 기쁨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소박한 순례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았고, 지켜보시는 주님의 환한 미소를 보는 듯 했습니다.
나그네란 말은 슬프게 들리지만 순례자란 말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순례자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기억에 남아있는 참 아름다운 순례자들이 있습니다. 지상의 삶을 마치면서 한 집사님이 남긴 인사입니다. “목사님, 천국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목사님 오실 때 가장 먼저 마중 나가겠습니다.” 저는 집사님을 향해 약속했습니다. “집사님, 지상에서는 목사와 집사로 만났지만 천국에서 만나는 그날 형님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가냘픈 호흡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목사에게 한 여집사님은 미소지으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목사님, 슬퍼하지 마세요. 신자의 죽음은 굿바이가 아니라 굿나잇입니다.” 이보다 순례자의 삶을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루 밤 잠을 자고 상쾌한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삶, 그것이 지상의 삶을 마감하는 순례자의 모습입니다.
하늘을 품는 순례자, 하늘 영광의 광채를 본 순례자는 땅 위의 화려한 것에 물들지 않습니다. 매순간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라 해도 순례자의 걸음은 가벼움과 기대감 그리고 고마움으로 가득합니다. 땅에서 취할 것이 없으니 가볍고 가야 할 목적지가 있기에 기대가 되고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고맙습니다. 주님, 저희 눈을 열어 하늘의 찬란한 빛을 보게 하소서.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고결한 순례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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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