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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18)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VII. 기독론 (Christology) (3)

 

D. 그리스도의 지위 (States of Christ)  

 

2.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Christ’s Exaltation)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빌 2:9-11의 말씀에 근거로 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리고 신약의 여러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에 대해 언급한다 (막 16:19; 눅 24:26; 행 2:33; 5:31; 롬 8:17, 34; 엡 1:20; 4:10; 딤전 3:16; 히 1:3; 2:9; 10:12). 이것은 또한 성도들이 미래에 주어질 축복을 표시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승리가 없었을 것이고, 여전히 우리는 죄아래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땅에 교회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복음의 출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다. 사도들의 메시지의 중심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다.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메시야 (행 2:31-32; 3:13-15; 5:30-32; 10:39-43)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시이며 (행 13:33; 롬 1:4), 부활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로서 중보 사역의 완성이며 (행 4:11-12; 5:31), 성도들의 사죄와 칭의의 보장이며 (행 5:31; 롬 4;25), 우리의 부활의 표시이며, 기독교 복음의 기초가 된다 (고전 15:12-19).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몸의 부활을 보장한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열매라는 말은 모든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진리를 대표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여기에 “함께 일으키사” (συνήγειρεν)는 과거 시제로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미 성도들은 부활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을 확증한다. 

 

2) 승천하심 

그리스도의 승천은 행 1:9-11에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앞으로 주님처럼 모든 성도들도 승천할 것을 가르쳐주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교회와 온 우주를 다스리심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능을 의미하며, 그리고 성령을 이 세상으로 보내신다는 예표가 된다 (요 14:26; 16:7-15).

 

3)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의 재림은 높아지심의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많은 곳에서 증거한다. 재림하시는 주님은 심판하시는 주님이시다.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E.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 (The Three Offices of Christ)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외적으로 보여준다. 구약 이스라엘에 주어진 직분은 제사장, 선지자, 왕이었다. 진정한 왕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종류의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었다. 구약의 3 직분은 모두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다. 

 

1. 선지자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 히브리어로 “나단 (נָבִיא)”이며, 신약의 헬라어로는 “프로페테스” (προφήτης) 이다. 구역 히브리 및 신약의 헬라어 단어의 선지자는 “대언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리 (forthtelling, 오늘날 설교와 같음)이며, 그리고 미래에 발생할 예언 (foretelling)이다.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성육신 이전)에 구약에서 종종 “하나님의 사자”로 나타나셨다 (창 16:7; 22:11-12, 15; 삿 13:3-20). 물론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말하지만,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창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기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하갈에게 친히 하갈의 후손을 번성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물론 일반 은총으로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내가” 1인칭으로 사용하셨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에 “여호와의 사자”는 그 제물을 가리켜 자기 자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말씀하셨다. 물론 성육신 이전의 성자 예수님께 제물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가리킨다.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자는 “너희가 구하는 주” 곧 “언약의 사자”이다. 이 명칭들은 모두 장차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육신 이후 신약, 행 3:22-23에서는 신명기 18:15의 예언대로 오신 그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사도들은 구약에 예언된 그 선지자를 전했고, 이분이 복음의 기초가 되신다.

(행 3:22-23)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2. 제사장 

제사장은 히브리로 “코헨 (כֹּהֲנִ)” 이며 헬라어는 “히에루스 (ἱερεύς)” 이다. 제사장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직분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나 제물은 신약의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의 죽으시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친 것을 예표로한다 (히 9:9-14). (히 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여기에서 “이 장막”은 6-8절의 기록된 것들, 즉 구약의 제사제도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또한 “현재까지의 비유”라는 말은 (παραβολὴ εἰς τὸν καιρὸν τὸν ἐνεστηκότα) “현시대, 즉 신약 시대까지 비유”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혁의 시기”는 신약 시대를 말한다.

구약의 제물은 신약의 실체에 대한 예표 (type)이다. 신약의 실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신 주님의 속죄 제사이다. 

메시야는 반드시 고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인류가 범죄하고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저주를 받은 자를 구원하는 방법은 그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수님이 대속죄물로 자기의 몸을 영원한 제사로 드린 것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라, 구약에서 희생제물로 예표된 예수님의 대속죄물에 대한 예언의 성취이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된 대속적인 죽음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셨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적인 죽음임을 많이 증거한다. 

제사장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사역을 하며,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이다. (히 5: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벌코프는 예수님께서 제사장직을 수행하시기 위해 율법 아래 오셔서 율법을 온전하게 순종하셨으며 이것을 능동적 순종(active obedience), 또한 그가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시고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신 것이 수동적인 순종 (passive obedience) 이라고 한다. 그리고 벌코프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이 되고, 또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수난) 때문에 우리가 사죄함을 받는다. 

그러나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2가지로 나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하나로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이 순종하신 일이다. 능동적, 수동적으로 나누어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바빙크에 의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을 “하나의 의 (ἑνὸς δικαιώματος), 하나의 순종 (τῆς ὑπακοῆς τοῦ ἑνὸς)”으로 말한다고 주장한다. 

(롬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바빙크는 성도들이 죄용서함과 칭의의 은혜는 예수님의 사역 전체에 기초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능동적 순종)이 칭의가 될 수 없고, 예수님의 죽으심만 (수동적 순종) 사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사역 전체가 (성육신, 고난, 죽으심, 부활, 율법을 완성하심, 등) 칭의와 사죄의 기초가 된다는 주장이다.

개신교에서는 만인 제사장 (Priesthood of all believers) 교리를 주장한다. 이것은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너희는”은 평신도들을 가리킨다. 신약에 사용된 “제사장”이라는 말은 특별한 계급에게 주어진 직분이 아니다. “제사장” (히에루스; ἱερεύς)이라는 말은 신약에서 교회의 특별한 직분자들에게 사용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성경은 제사장의 사역, 곧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사역이 목회자에게만 있다고 하지 아니하며,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딤전 2:5)이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는 목회자, 평신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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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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