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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17)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VII. 기독론 (Christology) (2)

 

C. 예수님께서 한 인격에 완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사람의 두 본성을 가지신다 (two natures in one person).

 

2.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

 

(잠 28: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신성을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이성과 인간의 마음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미련한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우리의 마음과 인간의 논리는 언제나 성령과 말씀으로 변화되어 져야 한다. 

1) 종교 개혁 이전: 

에비온 (Ebionites)파는 유대주의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고, 알로기 (Alogi)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한 로고스 (logos)는 인격이 아니며, 단순한 능력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나중에 4세기에 와서 아리우스가 나타나 로고스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보다 매우 뛰어난 피조물이라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잘못된 주장들이 니케아 공의회 (A.D. 325) 에서 성경적으로 바른 기독론이 확립되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단들이 일어나서 교회를 어지럽게 했기 때문에 교회는 바른 기독론을 정립했다.

2) 종교개혁 후:

슐라이어마허 (Schleiermacher)는 그리스도는 하나님(神)이 아니라, 신의식(Gottesbewußtsein/ Go-consciousness/神意識 )을 가진 완전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는 신의식의 능력으로 중보자(Mittler/ Mediator))가 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시에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불완전한 “인간성”(Menschheit)을 일깨우는 사역이라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속죄사역을 제외시켰다.  

리츨은 (1839-1889) 예수님의 사역이 마치 신처럼 위대한 일을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인격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칭해졌고, 그의 후계자인 리츨은 그와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을 실제로 구성하고 수립한 사람이다.

헤르만 (Wilhelm Hermann, 1846-1922)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였고, 다만 예수님의 개인 생활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 헤르만의 개인 생활이 워낙 모범을 보였기에 메이쳔 교수가 독일 마르부르그 (Marburg)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그의 스승이었던 헤르만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헤르만은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자이었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다.

폴 틸리히 (Paul Tillich, 1886-1965)는 “기독교는 예수라는 사람의 출생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리스도’ 라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이 고백이 계속되는 동안 기독교는 존속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에서 30년간 살아온 개인 예수와 그 후에 생긴 신화적인 전통과 관련된 그리스도라는 이름과의 연합니다” 주장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틸리히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에 손상을 준다”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상징”이라고한다. 그리고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존재의 그릇이 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리는 잘못이며, 신화를 입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주장했다. 틸리히의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적이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기독론을 세웠다.

많은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여도 예수님은 영원토록 완전하신 하나님과 완전하신 시람으로 존재하신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The Humanity of Jesus Christ)

 

성경은 예수님께 완전한 인간의 성품을 가지고 계심을 가르친다. 예수님의 출생 (눅 2:7), 성장하심 (눅 2:40), 시험을 겪으심 (마 4:1-11), 주리심 (마 4:2) 피곤하시고 주무심 (요 8:24), 눈물을 흘리심 (요 11:35; 19:28) 등 인간의 성품을 기지고 계심을 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도 자신의 인성을 많이 보여주셨다. 특별히 부활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잡수셨다 (눅 24:30; 41-43).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의 완전한 중보자되심을 보여준다.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죄인들 사이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다.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죽으실 수 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다. (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딤전 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중요한 포인트는 예수님께서 인성을 지니고 계시지만 죄는 없으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인성이 본질적으로 신성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다.

(고후 5:21) 예수님은 “죄를 알지 못하신 자.” (히 4:15) “예수님은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다.” (벧전 2:22), 예수님은 “죄를 범치 아니하셨다.” (요일 3:5)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없느니라” 는 (οὐκ ἔστιν/ it is not) 현재형인데,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영원히 “죄가 없으시다” 의미이다. (히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κεχωρισμένος ἀπὸ τῶν ἁμαρτωλῶν/ separated from sinners)는 “죄와 상관이 없다” 뜻이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성을 지니고 계시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4. 교회 역사에서 예수님의 인성교리에 대한 이단

 

아폴리나리스 (Apollinaris, AD 382년 사망): 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완전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님의 영혼의 자리에 하나님이 계셨고, 오직 몸 (3분설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몸과 혼)만 인성을 가지셨다”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신적 영혼(anima divina)과 인간의 육체(corpus humanum)가 결합된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완전한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vere deus vere homo) 규정함으로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했다.

네스토리우스 (Nestorius, AD 386-451):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서로 연합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며, 두 성품의 두 인격을 소유했다고 주장했다 (two natures in two person). 네스토리우스의 잘못된 이 주장은 에베소 회의 (AD 431)에서 정죄되었다. 그리고 20년 후 칼케톤 회의에서 다시 정죄되었다. 이후 네스토리우스 이단은 동방으로 향했고, 중국 당나라 시대 장안에서 포교하여 경교 (景敎, 네스토리우스파가 중국에서는 경교)가 매우 유행했다 (AD 635년). 그리고 신라에 까지 전파되었다. 1956년 경주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유물 중 석제 십자가, 동제 십자가 등이 발견되어 경교 (네스토리우스파) 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경교가 당나라를 통해서 통일 신라에까지 전래되었음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되는데,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유티케스 (Eutyches, AD 380-456): 유티케스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어 제 3의 성질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제 3의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이다. 

칼케톤 회의 (AD 451) 에서 이러한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켰고, 정통 교리를 확고히 세우면서 “주님이시요, 독생하신 자는, 양성(兩性)에 있어서 혼돈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음을 (in two natures, inconfusedly, unchangeably, indivisibly, inseparably) 확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인격으로 갈라지거나, 나누어지지 않고, 한 분이신 동일하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다는 신조를 확립했다.

칼케돈 회의에서는 한 인격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양성 (완전한 하나님/ 사람)이 매우 오묘하고, 지혜롭게 변증하면서, 부정적인 묘사를 통해 더욱 긍정적인 강조를 부각시켰다. 성경에서도 부정을 통한 긍정의 강조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새예루살렘을 묘사하면서,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계 21:4) 또한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계 22:5). 

그리스도의 양성에 대한 교리는 칼케타 공의회의 결정은 가장 성경적이고, 매우 잘 정리되어있다. 

 

D. 그리스도의 지위 (States of Christ)  

 

1.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성육신, 고난, 죽으심, 그리고 무덤에 장사됨” 을 의미한다. 

1) 예수님의 성육신 (Incarnation)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이유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눅 19:10; 요 3:16; 빌 2:5-11; 요일 3:8).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죄는 없으시다.

2) 고난당하심 

예수님께서 인성을 입었지만 그러나 근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시는가? 예수님은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아니한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을 한다. 

(빌 2:7) “자기를 비어” (ἑαυτὸν ἐκένωσεν, emptied himself), 이 말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엄위와 영광으로 행하지 아니하셨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신성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 인간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주님께는 고난이다. 또한 친 백성으로부터 박해를 당하신 것도 고난이다. 온갖 종류의 많은 시험을 당하셨다. 

3) 죽으심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을 당하셨다. 이와동시에 질적으로 지옥의 형벌을 당하셨다. 그 순간에도 신성과 인성이 폐지된 것이 아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신성이 인성으로부터 떠났다면, 강도에게 죄사함의 권세를 행사하실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다. 

4) 장사지냄: 이것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극치이다. 사도신경에서 “지옥으로 내려가사” 말은 “예수님이 지옥과 같은 고난을 당하신 것”을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칼빈). 

KHL0206@gmail.com

03.0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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