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VI. 인간론 (3)
E.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경구절들
1.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여기에서 인간의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혼과 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 사람 (비물질적인 것)을 혼과 영이라는 다른 용어들을 사용한다. 영과 혼은 서로 혼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인간의 속 사람을 혼 혹은 영으로 말하면서 우리의 속 사람이 흠없이 거룩하게 보전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마 22:37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여기서도 마음과 목숨과 뜻이 인간의 내면적인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각기 다르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속사람을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만약 살전 5:23을 통해서 인간의 요소를 영, 혼, 육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사람의 구성요소를 다섯, 여섯, 혹은 그 이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영과 혼이 다른 요소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 사람이 (비물질적인 부분) 그리스도의 날까지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고 있다.
2.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 (인간의 내면적 세계, 혹은 인간의 비물질적인 부분) 깊숙이 감찰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내면적인 세계를 “혼, 영, 관절, 골수, 마음, 생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각각 다른 요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을 의미한다. 영과 혼의 다른 요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적인 존재의 다른 표현들이다.
3. 고린도전서 14:14-15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 (πνεῦμά)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 (νοῦς) 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이 성경 구절이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은 영의 기능이며, 우리가 생각하고 의식하고 깨닫는 기능은 마음 (혼)의 기능이라는 뜻이 아니다. 바울은 영으로도 기도와 찬송을 하고, 마음 (혼)도 기도와 찬송을 한다고 했다. 이 본문은 바울이 기도할 때에 속 사람 (영혼)이 기도하는 내용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 인간의 내면적인 존재, 속 사람이 영과 마음이 나누어져 있어, 영의 기능만이 기도와 찬양의 기능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F. 불신자에게 영이 있는가? 불신자들의 영은 중생 때에 살아나는가?
인간의 영이 (spirit)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아니할 때는 죽어 있었는데, 예수를 믿으면 살아나는가? 아니다. 성경은 인간의 영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들을 지적한다.
단 5:20, “그가 마음 (heart) 이 높아지며 뜻이 (spirit)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But when his heart was lifted up and his spirit was hardened so that he dealt proudly, he was brought down from his kingly throne, and his glory was taken from him).
악한 느브갓네살의 영이 완악하여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폐위시켰다. 분명히 불신자에게도 영이 존재한다. 이 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이다.
신 2:30,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 (spirit)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But Sihon the king of Heshbon would not let us pass by him, for the Lord your God hardened his spirit and made his heart obstinate, that he might give him into your hand, as he is this day). 악한 헤스본 왕 시혼의 영이 완악하게 되었다. 불신자에게도 영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완악한 영이다.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이것은 우리의 영혼 (영)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다는 의미에서 죽었다고 표현한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았다는 말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지만, 중생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었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살리셨다 (엡 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 말은 우리 속에 있는 영 (spirit)이라는 요소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한 인격체로 하나님과 단절된 교제가 회복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G. 삼분설의 위험
벌코프의 조직신학의 인간론을 의하면 영과 혼 그리고 육신이 우리의 속 사람의 요소로서 존재한다는 삼분설은 헬라 철학에서 유래했다. “물질적인 우주와 절대자 하나님과 관계를 연결해 주는 제3 매개체인 중간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by means of a third substance or an intermediate being). 이것은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혼(soul)”이 영과 육신을 연결 시켜준다 (by means of a third or intermediate element, namely, the soul).
헬라 철학적인 개념에서 영의 세계만 중요하며, 육신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육신을 포함한 전 인간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혼과 육신을 포함한 인간 전체가 귀중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셨고, 복을 주셨다.
그리고 삼분설은 반지성적 경향 (anti-intellectual tendency)이 있다. 만일 우리의 영만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의 역할을 하고, 영은 우리의 지, 정, 의의 영역과 상관이 없다고 하면, 세상에서 학업과 연구를 비롯한 모든 지적 활동은 신령한 일로 여기지 아니하게 된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반지성적인 기독교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하라” (고후 10:5)의 말씀과는 모순이 된다. 영의 세계와 지성의 세계를 분리하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삶 전체의 영역이 모두 신령한 일이며, 성령의 은혜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어 져야 한다.
우리의 교회 생활, 예배, 기도, 찬송, 전도, 선교, 교회를 섬기는 일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가정생활 등 삶 전체가 신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셨고, 인간은 물질적인 요소 (육체)와 비물질적인 요소 (속사람, 혹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혼과 육신 모두 귀중하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은 영혼뿐만 아니라, 나중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육신이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된 몸으로 변화되어,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온전한 구원의 모습이다.
H. 우리의 영혼의 기원
우리의 영혼은 어디서 왔는가?
헬라 철학자인 플라톤은 우리의 영혼이 영혼선재설(Pre-existence)을 주장했다. 이것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가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해 있었다는 주장이며, 육체의 발생 초기 혹은 초기의 어떤 시점에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말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했다.
필로 역시 영혼이 인간의 몸속에 갇혀 있다고 말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이교도들의 사상 속에 존재한다 (불교 및 힌두교 등)
일반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경적인 이론이 2가지이다. 1) 창조설 (creationism)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혼을 만들어 태어나게 하신다는 이론이다. 2) 유전설 (traducianism)은 출생시에 부모로부터 영혼이 유전된다는 주장이다. 칼빈은 창조설을 선호하고, 루터는 유전설을 선호한다. 18세기 칼빈주의자인 조나단 에드워드도 유전설을 선호한다. 그러나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창조설을 지지한다.
유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멜기세덱을 만난 아브라함에 관해 그의 후손이 아브라함의 몸에 존재했다고 믿는다. 히 7:10, “레위는 아직도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유전설은 인간의 원죄가 하나님께서 죄의 성향을 가진 영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모로부터 직접 유전되어 전가 된다는 설명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창조설이 더욱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창조설은 많은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시 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 모두 하나님의 선물임을 보여준다.
시 139: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다윗의 육신과 영혼은 모태에서 하나님의 지으심의 선물임을 말한다.
스가랴 12:1,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사람의 심령 (영혼)은 하나님의 창조임을 증거한다.
I. 죄 (Sin)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죄가 무엇인가?
그루뎀의 의하면, “죄는 행동과 태도와 본성에 있어서 (in act, attitude, or nature) 하나님의 도덕적인 법에 일치하지 못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4, “죄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어기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덕적인 법과의 관계에서(in relation to God and his moral Law) 정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죄는 행동만 (거짓말, 도둑질,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의 마음의 태도나 생각을 비롯해서, 죄에 대한 경향성 (inclination) 까지 포함된다. 십계명에서도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 20:17). 음욕 (마 5:28), 질투, 분노, 이기심, 그리고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는 육체의 소욕(the desires) 까지 말한다 (갈 5:16-21).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죄를 짓도록 하는 경향성 혹은 죄에 대한 욕망까지도 죄가된다.
(다음 시간에는 아담의 죄와 나와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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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