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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12)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VI. 인간론 (2)

 

B.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타락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학자마다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어거스틴을 비롯한 정통 신학자들은 인간의 내적인 특질 (the image of God as an inner quality)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한다. 인간의 정신적인 구조, 이성, 영적인 성질, 인격, 도덕적 인식 (moral awareness) 등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다. 칼 바르트 및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 (the image of God as a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umanity)에서 찾는다.

레오날드 벌두인 (Leonard Verduin)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각하며 (창 1:27-28), 벌카우어 (Berkourwer)와 같은 학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 (representation of God)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맥도날드 (H. D. McDonald)는 아들됨 (sonship)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았다.

벌코프는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참된 지식 (true knowledge), 의 (righteousness) 그리고 거룩 (holiness)”으로 보았고, 넓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위에 열거된 요인들로 생각한다 (인간의 내면적인 성질, 정신적 구조, 창조성, 도덕성, 관계성, 종교성, 피조물을 다스림, 등). 

좁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전적으로 잃게 되었고,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은 매우 왜곡되고, 파괴되어졌지만 그러나 인간의 타락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타락후에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는가? 인간의 타락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파괴되었는가? 홍수 후에,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창 9:6)이 말씀에 의하면 타락 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에게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형상에서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사람을 저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 후에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타락 이전과는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다르다. 타락 후에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언어적으로, 관계성에서도 많이 파괴되어졌다. 타락 후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많이 왜곡되어지고, 파괴되었지만 그러나 완전히 잃지는 아니했다. 죄가 우리를 타락시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에서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졌고, 비뚤어졌고, 잘못되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은 현재의 타락되었고 부패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창 1:31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타락 전의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서 찾아야 한다.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점차적으로 회복되어지고 있으며 (성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혹은 우리가 천국에 갈 때에 완전히 회복되어진다 (영화). 

 

C. 남자와 여자의 창조

 

오늘날 미국과 서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성 (gender)을 해체(deconstruction) 시키는 일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남자와 여자를 인간이 원하는 데로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다 (transgender). 남자와 여자라는 성 (gender)을 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2년 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 대통령 행정명령 (President’s executive order)은 “성을 결정하는 주체는 당신 자신이다” (It is you who determines gender). 부모, 국가, 사회, 등 누구도 당신의 성 (남성, 혹은 여성)을 결정할 수 없다. 바로 당신 자신만이 자신의 성을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즉 내가 나를 남자로 규정하면 남자이며, 여자로 규정하면 여자가 된다는 것이다. 현재 이것 때문에 미국에서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창조의 규례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항하는 일이다. 인류의 가정을 근본적으로 허물고 있고 궁극적으로 파괴시키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1:27). 창 5:1-2에서도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나님께서 단순히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규례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없다.

1)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Men and women are made equally in God’s image) (창 1:27; 5:1-2).

2) 그러나 남여의 역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Differences in Roles)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체에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신성과 영광과 능력에서는 동등하지만 (equality), 그러나 삼위의 역할에서는 차이가 있다. 구속 사역에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구속주로 보내셨고,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부께서 계획하신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고(redemption accomplished),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 사역을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적용시키신다(redemption applied). 성 삼위 하나님께서 존재론적으로는 동등하시지만, 그러나 역할과 사역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와같이 남자와 여자도 존재론적으로는 동등하지만, 그러나 역할과 사역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원리는 가정과 교회에서 잘 적용되어져야 한다. 

 

D. 인간의 구성적인 본질 (The Constitutional Nature of Man)

 

인간의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비물질적인 부분(immaterial part)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동의한다. 그러나 비물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1) 삼분설(trichotomy)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구성 요소는 육체 (body)와 혼 (soul)과 영 (spirit)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혼은 지성, 감성, 그리고 의지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영은 기도와 예배를 포함한 하나님과의 관계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2) 이분설(dichotomy)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과 혼을 구분하지 아니하며, 영과 혼은 인간의 비물질적인 부분을 지칭하는 동일한 의미인 호환적인 용어이며, 인간에게는 몸과 영혼(혼 혹은 영), 두 부분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분설을 지지한다. 성경은 영과 혼의 단어를 호환(interchangeable)해서 사용한다. 

예수님께서 영 (spirit)과 혼 (soul)을 호환해서 사용하셨다.

요 12:27, “지금 내 마음 (soul)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요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 (spirit)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눅 1:46-47의 마리아의 찬양에도 이와 같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 (soul)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 (spirit)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리고 죽어서 천국 혹은 지옥에 간 사람들을 “영들”이라고 했고 (히 12:23; 벧전 3:19), 그리고 동시에 “혼들”이라고 이라고 칭했다 (계 6:9; 20:4). 

성경에는 사람의 죽음의 순간에 “혼” (soul)이 떠나다, 혹은 “영”이 떠나다 라고 혼용하여 사용 한다. 라헬이 죽을때에 “그 혼 (soul)이 떠나려 한다” (창 35:18) 했고, 시 31:5, “나의 영 (spirit)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 (soul)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스데반의 죽음에서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 (spirit)을 받으시옵소서.”

성경은 사람을 “몸과 혼” (Body and Soul) 혹은 “몸과 영” (Body and Spirit)이라고 칭한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 (soul)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 (soul)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고전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 (spirit)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성경은 혼이 하는 일을 영도 한다고 가르친다.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과 혼의 차이를 말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차별을 두지 아니한다. 

생각하고, 연구하는 지적인 기능과, 그리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기능은 영과 혼이 모두 동일하게 한다 (행 17:16; 잠 17:22; 막 2:8). 그러므로 사람의 비물질적인 측면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영”과 “혼,” 이 두 용어의 차이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영 (spirit)은 예배와 기도와 찬양 등 하나님과 관계에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성경에는 우리의 혼 (soul)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한 영이 예배함을 가르친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 (soul)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시 25:1) “나의 영혼 (soul)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시 62:1) “내 영혼 (soul) 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 103:1) “할렐루야 내 영혼(soul)아여호와를 찬양하라.”(시 146:1)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soul)이 주를 찬양하며”(눅 1:46) “여호와 앞에 내 심정 (soul)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 1:15)

성경에는 영과 혼을 구분하지 아니한다. 영이 하는 것을 혼이 하고, 혼이 하는 것을 영이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신 (물질적인 부분)과 영혼 (혼 혹은 영,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구성된다.

(다음 시간에는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KHL0206@gmail.com

12.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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