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V. 신론 (6)
4) 창세기 1:1과 1:2 사이의 공백설 (Gap theory)
뉴 스코필드 스터디 바이블 (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 1967년)은 창 1:1과 1:2 사이에는 수백만년의 공백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코필드 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써클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지구를 창조하셨는데, 지구에는 하나님께 대한 마귀의 반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반역한 첫번째 지구를 심판하셨고, 그 결과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가득찼다고” 한다. 그리고 창 1:3-2:3의 내용은 24시간의 주기의 하나님의 두번째 창조라고한다.
발견되어진 수백만년에서 혹은 수억년이 된 화석은 창 1:1의 처음 창조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창 1:2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without form and void), 흑암(darkness)이 깊음 위에 있고” 묘사에서, “혼돈, 공허, 흑암”이라는 묘사는 당시 지구는 하나님의 심판하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잘못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먼저 지구를 만드시고 (1절), 그 다음에 빛을 지으셨다면 (3절), 2절에는 어두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2절의 표현들은 현재 창조가 진행중에 있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이것은 악이 지구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는 말은 창조 기간동안 어두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5,8,13,18-19) 그곳에 악이나 혹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존재했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혼돈하고 공허했다”는 말은 단순히 아직 지구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아니하다는 말이며, 하나님의 창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창 1:31에서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친후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실때까지 이 땅에는 악, 혹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5) 창조의 6일은 24 시간인가? 아니면 긴 시간인가?
노지구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창세기의 6일이 24시간이 아니라, 수백만년도 될 수 있는 긴세월이라고 한다. 이 문제는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도 많은 논쟁이 있다. 창조의 6일이 24 시간이 아니라, 긴 세월이라고 보는 견해의 주장은 히브리 단어의 “날(욤)”이 성경에 긴 세월로 묘사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한다.
예를들면, 창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기에서 욤이라는 말은 6일간 창조 사역 기간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날 (욤) 이라는 말이 어느 일정한 기간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시 20:1, “환란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또한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그리고 또한 구약에서 “날”이라는 말을 축복이나 심판의 때를 의미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창 1장의 날을 24 시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1) 창 1장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날이 24시간임을 암시한다. 2) 태양이 4일째 창조되는데 3일째 창조된 식물들은 빛이 없이 오래 살 수 없다. 물론 첫째 날 창조된 빛이 수백년 혹은 수천년간 식물들로 살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3) 십계명에 나오는 안식의 날은 분명히 24 시간을 의미한다. 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4) 막 10:6, 예수님께서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말씀하셨을때에, 아담과 하와가 창조로부터 수백만년 후에 창조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창조시에 (창조의 첫 주간)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날 (욥)의 길이는 24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하나님의 창조 교리의 결론: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주권자가 되시며, 창조주가 되신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
4. 하나님의 섭리 (The Providence of God):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들을 계속적으로 존재하도록 붙잡고 계시며, 보호하시며, 주권적으로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1) 보존 (Preservation): 하나님께서는 만드신 모든 것들을 원래의 본질대로 존재하고 유지하도록 보존하신다. 히 1:3,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여기에서 “만물을 붙들다” (he upholds the universe by the word of his power) 에서 “붙들다” (φέρω)는 “지탱하다” 의미이다. 주님께서 계속적으로 (현재분사형) 능력의 말씀으로 우주의 만물을 그 본래의 특성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관여하신다. 골 1:17,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그리스도께서 우주 만물의 창조물을 붙잡고 (유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붙잡고 계시지 아니하시면 존재할 수 없다.
지으신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은 그것을 만드실때 주셨던 특성을 본질적으로 그대로 유지하게 하신다. 물과 나무와 꽃들이 그들의 특징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붙잡고 (유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물의 특성이 그대로 있고, 나무와 꽃의 특성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는 섭리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존재하는 피조물의 새로운 분자와 원자를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드신것들을 보존하신다.
2) 협력 (Concurrence):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서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 135:6-7,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하나님께서 불, 우박, 눈, 안개, 들풀, 바람, 식물, 동물, 등, 모든 피조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존재한다. 인간이 볼 때, 우연의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발생한다.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3).
우리는 과학적으로 태양, 습도, 온도, 계절의 변화, 흙의 양분등이 풀과 나무가 자라며, 비가 오고 눈이 오는 이유들을 습도와 온도 및 기압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풀과 나무들을 자라게 하신다고 한다. 이 모든 자연적인 사건의 원인 (cause)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한다. 모든 피조 세계가 만들어진 그 본질 그대로 유지 될 수 있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인 (cause)이 되시기 때문이다.
인간사의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 (욥 12:23).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시 22:28).
우리의 삶의 모든 면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존재한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도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다. 모든 능력과 재능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통치자들의 결정에도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한다.
3) 통치 (Government):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고,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단 4: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고전 15: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의 주권자가 되시며, 발생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이루어진다.
VI. 인간론 (1)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신론 (The doctrine of God) 후에는 자연스럽게 인간론 (The doctrine of man)이 나온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처음에 나오는 말이, “자신을 모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신을 알지 못한다” (Without knowledge of self, there is no knowledge of God; Without knowledge of God there is no knowledge of self)는 말이 나온다. 신론과 인간론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에서도 신론을 공부하고 난후에는 인간론을 공부 하는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 1: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존재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장 귀한 피조물이다. 인간이 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A. 하나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러면 “형상” 혹은 “모양” 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형상과 모양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호환 될 수 있는 같은 의미의 말이다.
형상 (image, 히브리어 tselem)은 무엇을 대표 (represent) 하거나, 혹은 무엇과 비슷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모양 (likeness, 히브리어 demut) 은 유사성을 의미한다. 동일하지는 아니하지만 유사한 것을 말한다 (not identical, but similar).
많은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다양하게 설명한다. 필자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벌코프는 하나님의 형상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누어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한다. 물론 벌코프는 17세기 화란 개혁 신학자 헨리치 디스트 (Henrici a Diest) 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 (narrow sense of God’s image) 은 의와 참된 지식과 거룩 (엡 4:23)이며, 인간의 타락으로 전적으로 잃게 되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의 (broad sense of God’s image)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지적 능력, 감성, 도덕성, 창조성, 관계성, 등인데, 이것은 타락 후에 많이 왜곡되고 타락, 변질되어졌지만 그러나 완전히 상실하지는 아니했다.
다음호에는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인간의 구성 본질 등에 대해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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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