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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8)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3) 이 세 분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강조한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왕상 8: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 45:21-22,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4)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 설명하기 위한 모든 예화에는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 잎 클로바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세 잎 클로바는 각 잎이 클로바의 한 부분이고, 온전한 클로바가 아니다. 삼위 하나님은 각 위가 하나님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또한 클로바의 잎은 비인격적이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은 인격체로 존재하신다.

그리고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를 비유로 든다. 그러나 이것들도 나무의 한 부분이지, 전부는 아니다. 

물의 형태, 증기, 물, 얼음을 통해 비유를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각 형태에 따라 물의 양과 질이 다르고, 세 형태에 특성이 각기 다르고, 무엇보다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3. 역사에서 나타난 이단들 

 

1) 양태론 (Modalism): 하나님이 한 분만을 강조하고, 삼위의 구별된 위격을 가진 것을 부인한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성부로 나타나셨고, 복음서에는 같은 하나님이 성자로 나타났고, 그리고 교회 시대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셨다.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 각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고 주장.

3세기 로마의 사벨리우스 (Sabellius)에 의해 주장된 사벨리우스주의 (Sabellianism)의 다른 이름은 양태론 군주주의 (Modalistic Monarchianism)이다. 사벨리우스주의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데 각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자기를 계시하셨다” 주장했다.

양태론의 문제는 성경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부인한다. 그들은 이 관계를 환상으로 보고, 실제가 아니라(simply an illusion and not real)고 주장한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를 이 세상에 속죄 제물로 보내셨고,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속을 성취하셨고, 성령께서는 이루어 놓으신 속죄 사역을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에게 적용시킨다.

양태론은 삼위의 구별된 위격으로서 각각의 역할을 부인한다.

창세 전 삼위 하나님께서 맺으신 구속의 언약 (the Covenant of Redemption)도 부인하는 양태론은 매우 잘못된 사상이다.

 

2) 아리우스파 (Arius): 아리우스는 3-4 세기의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신학자이다. 

아리우스는 “성자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지 아니하였고, 오래전에 성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창조되기 전에는 성자, 성령이 존재하지 아니하였고, 다만 성부 하나님만 존재하였다”고 주장했다. 성자 예수님이 다른 피조물이 창조되기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다른 피조물보다 매우 뛰어나지만, 그러나 본질상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아리우스파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 (요 3:16) 말에 크게 의존한다. “낳다” (beget) 라는 말은 잉태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피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리우스파는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을 근거로 한다. “먼저 나신 이” 의미는 성자가 다른 피조물보다 먼저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게 영원부터 계시는 분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성령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골 1:15) 의미는 그리스도의 특권과 권리 (the right of leadership or authority)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먼저 나신이 (πρωτοτόκια)” 이 헬라어는 히 12:16에도 사용되었는데, “처음 난 자” 즉 그 가정을 다스리는 권세와 리더쉽을 말한다. 오히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 말은 성부 하나님과 구별된 위격을 나타내기 위해서 성경이 “아들”로 묘사한 것이지 성부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325년 니케아 신조를 (Nicene Creed)를 보면, 독생자가 창조되었다는 말이 아님을 강조한다. (“only begotten” did not mean “created”). 381년 콘스탄틴노플 공의회 (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in 381)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의 본질을 소유하신 하나님 중의 하나님이시며, 빛 중의 빛이시며, 온전하신 하나님으로서 창조되지 않으시고 성부와 같은 본질을 소유하신 (being of one substance, ὁμοούσιον, the same with the Father)”

그리고 성자 예수님이 “나으심” 앞에 “만세 전에” (before all ages) 문구를 넣어서 “낳으심”이 영원하며, 예수님의 존재는 영원 전부터 계신 독생자이시며, 창조되신 분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 우리가 “낳으심, begotten”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왜냐하면 성경이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 표현이 삼위일체 제 2 위되신 예수님을 성부와 성령과 구별시키는 독특한 타이틀이라고 설명한다.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은 아리우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등한 본질”(of the same substance as the Father)을 가지신 분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우스와 논쟁에서 교회의 역사에서 매우 유명해진 2개의 단어가 있다. 1) 아버지와 동일본질 (the same nature), “호모우시오스” (ὁμοούσιος)이며, 그리고 다른 단어는, 2) 유사본질 (similar nature), “호모이우시오스” (ὁμοιούσιος) 이다.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공회에서는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하여 아리우스 이단을 물리쳤다. 현대판 아리우스 판이 여호와의 증인이다. 

3) 성자 종속설 (Subordinationism): 성자 종속설은 성자가 영원하시고, 창조되지 아니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와 속성에서 성부와 동일하지 아니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자는 성부에 비해 열등한 존재이며,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in being or attributes—the Son was inferior or “subordinate” in being to God the Father).

3세기 오리겐이 이러한 주장을 했지만 그러나 니케아 회의에서 그의 주장이 거부되었다. 

 

4) 양자론 (Adoptionism): 양자론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기 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세례 시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양자로 입양하여 그에게 초능력을 주셨다고 주장한다. 양자론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아니했다고 한다. 양자로 입양된 후에도 그 본질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신성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독특한 아들이라고 칭하여 존귀하게 되었다.

 

4.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 

 

1) 만약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구원을 위해 피조물을 의지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신앙이 된다. 

2)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가 예수님께 예배와 경배 찬양,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될 것이다.

3) 만약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 아니시라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삼신론(Tritheism) 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 계심을 강조한다. 우리 하나님은 본체에 삼위로 계시고, 이 삼위는 본질과 속성에서 각기 동등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이 삼위는 한 분이시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신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5.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질상 동등하시며, 영광과 권능과 능력도 동일하시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의 역할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것을 economy of Trinity 한다)

 

성경은 존재론적으로는 삼위가 동일하시며, 역할에서는 삼위가 차이가 있음을 가르친다.

특별히 구속 사역에서 성부 하나님은 구속을 계획 (plan)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성부께 순종하시어 구속을 성취 (accomplishment) 하셨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속 사역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적용 (application)시킨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수 없다. (고전 12:3)

성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며, 성령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이다.

삼위일체에서 각 위는 존재와 속성에서는 동일하지만, 피조물과의 관계와 구속 사역에서는 역할의 차이가 있다. 이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와 성자께서 하시는 일에 능력으로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성 삼위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는 동등하지만, 사역적(역할)으로는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

 

6.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역사상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이단 사상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단순화시켜 모든 비밀을 다 이해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유한하고 흠이 많은 우리가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절대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큰 은혜이다. 위대하시고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매우 큰 영광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고, 예배하고, 찬양할 따름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에게 신비의 세계이다. 

루이스 벌코프는 “삼위일체 교리는 신비이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의 지성의 세계를 넘어서는 신비한 교리이다 (the Trinity is a mystery far beyond our comprehension). 역사상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온전히 이해시키려고 시도한 적도 없으며, 다만 교회는 삼위일체 진리에 관하여 오류를 범하지 아니하기 위해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였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불가해한 영광을 선포한다 (It is the incomprehensible glory of the Godhead). 삼위일체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다.

KHL0206@gmail.com

10.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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