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D. 성경의 필요성 (The Necessity of Scripture)
복음을 알고, 영적 생활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항에, “본성의 빛과 창조 및 섭리의 사역에 하나님의 선하심, 지혜, 그리고 권능이 잘 나타나 있어서 아무도 핑계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교회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뜻을 선언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며, 또 육신의 부패와 사단과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세우고 더욱 위로하기 위해서 동일한 진리 전체를 기록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며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법들은 오늘날 중지되었다.”
본성 (자연)의 빛 (the light of nature 롬 2:14)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적인 돌보심 (롬 1:20)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일반계시가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명제적으로 (propositionally) 계시하셨다.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이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구원의 길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진리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서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법들은 이제 중지되었다”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의하면 성경의 필요성은 1) 일반계시가 하나님의 구원과 생활의 진리를 전달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며; 2) 과거와 같은 특별계시가 중단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과 신앙생활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오직 성경밖에 없기 때문에 성경의 필요성의 교리가 생겼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 (sola scriptura)를 주장했다.
로마 캐톨릭은 교회가 성경보다 상위에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The Church takes precedence over Scripture).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교회는 교회의 전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성경이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는 아니하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시는 방법이 책 (성경)이 아니라, 교회를 세운 사도들에게 맡기셨다.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교황과 주교들이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눅 10:16), 제자들 (사도들)의 말을 듣는 자는 곧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는 구절을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로마 캐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가 성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 (로마교회)를 필요로 한다. 성경은 2 차적으로 중요하다 (1차적인 것은 교회이다).
그리고 초대교회 몬타누스 그리고 종교개혁 당시의 재세례파와 같은 신비주의자들도 성경의 필요성을 부인한다. 그들은 성경보다 성령께서 직접 그들의 마음에 계시 (Direct revelation) 하는 내적인 빛 (inner light)을 더욱 중요시했다.
또한 바르트주의자를 비롯한 실존주의 신학자들은 명제적 (propositional) 진리보다는 “만남” (encounter)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성경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오늘날 영성 (spirituality)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성경의 절대적인 필요성보다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헨리 나우엔의 <상처입은 치료자>에서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신다는 개념보다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관계성 속에서 깊은 영성을 가지시고, 온갖 고난을 이겨내시어 우리의 모범이 되셨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예수님의 이러한 영성이 중요한 것이지, 성경의 명제적인 말씀 그 자체가 중요하다 사실은 별로 강조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른 말로하면 명제적인 진리 (propositional truth)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수님과의 만남의 사건은 항상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인격과 속성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의 명제적인 교리를 전제로 한다.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바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 항상 먼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앙에서는 인지적인 (cognitive) 요인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이루시면서 언제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기록하여 언약의 문서로서 보존하시어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언약의 말씀을 믿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언약의 문서인 성경을 잘 보존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기록된 말씀이 없으면 구원의 진리도 알 수 없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구원의 확신도 성경의 약속을 굳게 믿는 것이며, 천국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 것도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도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위해 성경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 성경의 충족성 (The sufficiency of Scripture)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에서 성경의 충족성에 대해 분명히 가르친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 인간의 구원, 신앙, 생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거나, 또는 선하고 필연적인 결론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새로운 계시로든지 혹은 인간의 전통에 의해서든지 아무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성경에 추가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씀 안에 계시된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내적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활동과 생활 양식에 공통된 하나님의 예배, 교회의 정치에 관하여서는 항상 준수되어야 하는 말씀의 일반적인 규범들에 따라 본성의 빛, 기독교적 분별력에 의해 규정될만한 여러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로마 캐톨릭은 자신들의 교회의 전통을 성경보다 더 중요시하고, 종교개혁 당시 재세례파의 신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성령의 직접 계시를 더욱 중요시하면서 성경의 충족성을 믿지 아니한다.
구원의 길?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진리는 무엇일까?
☞ 그것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대요리 문답 3문에는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칙”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교회의 전통이 모두 잘못되었고, 교회의 전통을 전부 거절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강조점은 교회의 전통을 성경의 권위와 동일하게 놓거나, 교회의 전통을 성경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 개혁주의 전통 가운데 성경적으로 좋은 전통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보존해야한다.
성경의 충족성은 성경만이 우리의 구원과 생활에 관한 문제에 충분한 대답을 준다는 것을 말한다.
그루뎀 (Wayne Grudem)은 그의 책 <조직신학>에서 성경의 충족성을 믿게 되면 우리에게 몇 가지 큰 유익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1)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문제를 직면했을때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 문제에 대한 원리를 충분히 주셨다는 확신을 갖는다. 2) 성경의 충족성은 우리가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으며, 어떤 문서라도 성경과 동일한 위치에 두어서는 안됨을 가르쳐준다. 3) 성경의 충족성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없는 진리를 우리에게 믿도록 강요하지 아니하신다. 4) 성경의 충족성은 성경에 분명하게 혹은 암시적으로 (either explicitly or by implication) 금지하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심을 가르쳐준다. 5) 성경의 충족성은 교리와 윤리의 문제에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에 만족해야한다.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많은 궁금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가르쳐주시지 아니한 문제들을 상상하거나 꾸며내지 말아야 하고, 우리의 지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명백하게 가르쳐주시지 아니한 하나님의 뜻에 만족해야한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삶에 충분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 말이 우리가 다른 것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많은 상식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 은총은 언제나 성경을 통해 점검이 되어져야한다. 왜냐하면 일반 은총을 이해하는 우리의 기능이 죄로 말미암아 부패했기 때문이다 (noetic effect of sin).
성경을 더욱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한국어 문법과 한자, 그리고 성경의 원어인 헬라어, 히브리어, 아람어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언어와 문법과 구문론들을 알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지식을 참고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논리학, 문학, 역사학, 등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들은 모두 성경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참된 지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의 충족성의 교리를 근거로 말씀을 실제 생활 속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문화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 이 시대에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시장구조를 알아야 하고, 우리의 가정과 결혼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동성애와 성전환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철저하게 점검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알아야한다. 언제나 문화의 기초는 사상적인 배경이 있다. 성경으로 이 시대의 사상을 비판하고 바른 성격적인 세상 체계를 세워야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SNS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효과적인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SNS가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본주의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세계관들의 잘못을 알아야 이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그들의 사상체계에 도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지식과 지혜가 됨을 전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신론, 神論, The Doctrine of God이 시작됩니다)
08.27.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