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침례대학교 교수)
기독교교육이란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처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에베소서 4:13의 말씀을 빌어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알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성숙하게 하는 것이 곧 기독교교육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교육의 기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알아 성경적인 세계관을 갖게 하는 것이고, 그 기초는 성경공부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누누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가 신명기 6장에 기록되어 있는 “쉐마”입니다. 쉐마는 ‘듣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샤마아’의 명령형으로서 ‘들으라’라는 말입니다. 신명기 6:4-9이 “쉐마 이스라엘(즉,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되기 때문에 이 문단의 제목이 쉐마입니다.
쉐마에 기독교교육의 원리 세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전(全)인격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인격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전인격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 지식적인, 감정적인, 또는 의지적인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정의를 모두 동원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말씀을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만이 기독교교육의 지속성을 보장합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동기로 기독교교육에 임한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동기로 기독교교육에 임하면 싫증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사역에 대한 의무감으로 기독교교육에 뛰어들면 탈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 이외의 동기로 기독교교육에 동참하면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포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가 기독교교육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힘을 공급합니다.
쉐마에 포함되어 있는 기독교교의 원리 두번째는 말씀을 숙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듣고,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함으로써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습니다.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여섯번이나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면서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계셨음을 보여주였습니다. 먼저 배우고, 계속 배우고, 평생 배우는 것이 기독교교육의 원리입니다.
쉐마에 포함되어 있는 기독교교육의 원리 세번째는 창의적인 가르침입니다. 7-9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갈 때든지, 누워 있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기독교교육에는 장소나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원과 환경을 활용하여 어디서나 언제든지 교육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쉐마가 가르쳐주는 기독교교육의 원리 세가지입니다. 이 원리들을 기독교교육에 적용하면 학습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뿌리 깊게 심어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쉐마에서 기독교교육의 원리를 찾는다는 말이 “쉐마교육”을 지지하거나 장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모세의 가르침을 받들어 부모가 자녀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쉐마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쉐마교육의 주체는 부모였고 목적은 율법전수였습니다.
지금도 부모가 신앙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는 신앙생활에 관한 교육과 훈련을 충부하게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은사가 없기 때문에, 바빠서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고되게 일하느라고 남은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교회학교에 전적으로 맡겨놓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두 시간 만나는 교사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핑계로도 부모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쉐마교육의 율법전수 부분은 크리스천들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첫째,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것이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율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죄를 지으며 살아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크리스천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기를 기대하시고, 고차원의 법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행위를 다루지만 예수님의 법은 행위와 함께 동기까지도 다루기 때문에 고차원적입니다. 예를 들어,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의 법은 노(怒)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분노는 살인의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크리스천은 율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에서 율법전수를 목적으로 하는 쉐마교육을 실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쉐마에는 기독교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원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교과내용 숙지, 그리고 창의적인 교수방법입니다. 그 원리들을 활용하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심어주는 것이 크리스천들의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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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