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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스의 축복

윤임상 목사

월드미션대학교대학원 음악과장, 학생처장

종교 철학자 정재현 교수께서 쓴 ‘인생의 마지막 질문’이란 책에서 중세 로마제국 시대에 벌어졌던 전쟁 영웅들을 위한 개선식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교훈으로 가슴에 담게 합니다. 

당시 로마제국 시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을 위한 개선식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환호하는 시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개선 행진은 장군이 로마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영광이요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선식 하루만큼은 장군이 에트루리아 (BC00-100년까지 이탈리아 중북부지역에 있던 고대국가, 당시 지중해 국가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는 국가로 평가됨) 관습에 따라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는 ‘살아있는 신’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으로 숭배받는 장군의 영광스러운 전차에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노예 한 명을 같이 탑승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노예는 개선식이 진행되는 내내 끊임없이 “모멘토 모티스(Memento Mortis)”라는 말을 그 장군에게 속삭여 줍니다. 이 상황에서 장군이 우쭐대지 말라고 경고하는 말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반복한 것입니다. 죽음에는 신분도 계급도 없다는 상징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말이 비록 장군에게 엄청난 찬물을 쏟아붓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진정한 축복의 원리를 알게 하기 위한 역설의 진리라는 사실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게 합니다. 즉 비움의 역설을 통한 축복을 말입니다. 그 비천한 노예의 외침은 그 순간만큼은 최고라고 하는 그 장군에게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듯이 기분을 잡치게 하는 말이라 생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장군을 향한 가장 큰 축복의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그 장군에게 겸손의 빈 공간을 만들라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흙이나, 놋으로 빚어져서 만든 그릇이 쓸모있게 하는 것은 그릇 속의 빈 곳을 만들어 유용하게 사용되듯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그의 첫 번째 설교로 유명한 이 산상수훈에서 축복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 나타나는 여덟가지 축복(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 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축복의 원리와는 사뭇 다른 표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생애 시작부터 끝까지 이 축복의 원리만 강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진정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축복의 원리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비움을 통한 채움의 축복을 이야기하는 역설의 진리를 이야기 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안템 에반스(H. R. Evans)의 “축복”에서 이 메시지를 음악으로 담았습니다. 이 곡은 한국교회에 알려진 성가곡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 성가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개 교회들에서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찬양대에 의해 꼭 불려지는 곡입니다. 이 곡은 1937년에 에반스에 의해 작곡되어진 성가곡으로 이 곡에 대해 더 이상의 구체적 정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담긴 축복에 대한 깊은 의미를 음악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훌륭한 안템으로 평가됩니다.

서주에 예수님의 축복의 원리를 암시하듯 베일에 찬듯한 하모니로 축복을 선포합니다. 이어서 3가지 형태 (화답송, Responsorial Style 무반주, A Capella Style 대위법, Counterpoint Style)의 음악적 변화를 통해 예수님이 이야기하시는 축복의 신비를 드라마로 만들어 갑니다. 첫 번째 바리톤 솔로와 합창이 화답송 형태로 8가지 축복의 원리를 펼칩니다. 솔리스트가 예수님의 역설의 축복 원리를 제시하면 합창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합니다. 이어서 마 5장 11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를 바탕으로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 자의 축복을 또 다른 역설로 말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번에는 무반주 아카펠라로 표현하며 고요함 가운데 내면의 혁명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어 마지막으로 12절을 바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진정한 축복의 클라이맥스를 대위법적인 작곡기법을 동원하여 같은 메시지를 계속 반복하며 축복의 팡파르를 울립니다. 마지막 다시 화성적인 선율로 돌아와 하늘의 축복의 상을 외치며 대단원의 마무리를 합니다.

진정한 축복은 모든 조건 속에서 절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그 진리를 놓치지 않고 비움을 통해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팔을 뻗을 수 있는 영적 성숙에서 비롯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친밀감이 있다면 우리가 더 이상 아픔과 고생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환상입니다. 바로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비참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에 나타나신 아름다운 예수님을 보았다면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무참하게 쓰러져 가며 외로이 골고다로 향하시는 예수님, 그 무능의 극치를 보이는 예수님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때에 우리가 비로소 모든 조건과 환경에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에 진정성이 있다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비로소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팔복을 소유할 자격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iyoon@wmu.edu

02.1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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