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현대인들은 심각한 소외감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 한국의 잡코리아가 국내외 기업에 재직 중인 남녀 직장인 734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사회적 박탈감 또는 소외감 체감 여부’에 관해 설문한 결과는 한국의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사회적 박탈감 또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결과, 직장인 46.2%(339명)의 응답자가 ‘사회적 박탈감 또는 소외감을 느낀다’고 답했고, 그 정도는 30대 직장인에게서 가장 높았다. 조사결과, ‘경제적 소득격차를 느낄 때’가 47.5%로 가장 많았다. 20대부터 40대 이상까지 모두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 1위로 ‘경제적 이유를 들었다.
현대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 중에 하나는 바로 소외감이다. 현대사회처럼 서로 연결되어진 시대는 없었다. 지금은 온 세계가 하나이다. 세계는 지구촌이 되었다. 글로벌Global시대이다. 다 연결되어져 있다. 그럼에도 느끼는 소외감은 수많은 사람들을 파괴하고 절망으로 이끌어 간다. IS에 참여하러 간 한국인 청년도 건강한 공동체에 속하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아프다.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회학자들은 현대인의 이동성을 말한다. 사람들은 직장을 1-2년마다 한번씩 옮기면서 신분과 급여의 상승을 추구한다. 이런 현상은 신앙생활에도 나타난다. 성도들에게 평생 섬기는 교회가 사라져간다. 평생 교회를 다니지만 평생을 걸쳐서 한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물론 직장을 따라서 집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David Pederson은 한국의 교회들의 새신자 중에 70%는 3년 내로 교회를 떠나고, 대부분 교회의 새신자는 광고를 보고 오는 사람이 3%이고, 친구의 초대로 오는 사람이 65%라고 했다. 미국의 대형교회들도, 한인교회들 마저도 비슷한 추세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한다. 왜 그러한가? 물론 사회의 유동성이 증거하면서 이동인구가 증가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도들의 이동율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볼 때에는 인구 이동률이 낮은 것이 선진국형화 되는 것이다. 지난 2010년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이동율은 16.5%로 선진국인 미국 12.1%나 일본의 4.2%에 비하면 높지만 많이 낮아지는 편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이동율은 인구의 이동률이 아닌 다른 요소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공동체 개념의 상실화이다. 옛날은 지역교회 커뮤니티Community 공동체 교회였다. 몇 대를 이어서 교회를 섬기던 시대도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헌신적인 신앙인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자기의 평생의 교회’라는 의식은 사라져간다. 오늘은 지금은 섬기지만 언제이고 떠날 준비가 그리고 떠날 각오가 되어있다. 모든 것이 즉시 되어야 한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더 힘들어지는 세대이다. 마이크로 오븐 문화, 리모콘트롤 문화의 시대이기 때문에 필요가 즉각적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떠난다. 한 백화점에서 찾지 못하면 다른 백화점에서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어떻게 한 교회에 오랜 기간 헌신과 충성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사람은 소외감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은 다른 조건이 충족되어도 소외감을 느끼면 만족하지 못한다. 소속감은 근본적인 욕구이다 (창2:18). 아담에게 하와를 주심으로 가정 공동체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속감에 대하여 두 가지 방향성을 주셨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속하게 하시고, 또한 서로에게 속하게 만드셨다. Stanley J. Grantz도 “하나님의 신적인 활동은 역사를 통해서 인간을 창조주의 계획하신 공동체로 이끄시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죄는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했다. 죄의 결과는 인간관계에서는 소외감이고, 법적으로는 정죄이고, 개인적으로는 타락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체험장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단의 전략은 효과적이다. 사단은 두 가지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시도한다. 첫째는 가정 공동체이고, 둘째는 교회 공동체이다. 사단은 이 두 가지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를 집중 공격해오고 있다. 사단은 우리가 죄를 짓도록 만들어서 돌아갈 공동체를 없애는 것이다. 반면에 사단은 우리가 악의 공동체로 들어가게 죄를 짓도록 유혹한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소외감은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한다. 교회에서 느끼는 문화적 세대적 차이는 동질감 대신에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님에도 나와 다른 것을 느낄 때에 외로움이 생긴다.
하지만 소속감은 삶의 의미를 가져다준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디에 속하지 않을 때에 그토록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와 사람들의 차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모든 나이나 인종이나 사회적 지위 등의 모든 조건과 환경에서도 소속감은 중요하다.
소속감에는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수직적 소속감과 수평적 소속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속감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은 소속감의 존재이다. 첫째, 수직적 소속감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소속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함을 보여주시는 인식론적인 문제이다.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백성이다. 내가 너를 지목하여 불렀다. 내가 너를 선택했다” 등의 수많은 강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함을 보여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평안과 힘과 위로를 준다. 하나님은 인생의 위기 속에서 나타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함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 수직적 소속감은 환난과 고난을 이기는 능력이다(행5:41). 성도의 능력은 수직적 소속감에 있다.
둘째, 수평적 소속감은 우리는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소속감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서로에게 속하도록 창조하셨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2:18)”는 우리가 어떤 존재임을 보여주신다. 우리에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수평적 관계의 클라이막스인 가정과 교회를 주셨다.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교회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다. 많은 지체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속해 있다. 가정의 머리도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부부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됨을 경험한다. 물론 다른 사회적인 조직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지만 교회와 가정에 대한 소속감은 다른 모든 소속감을 뛰어 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IS를 찾아서 달려가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자기들을 받아줄 그리고 사랑해 줄 건강한 공동체가 없어서 외치는 절규는 아닐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의 교회와 소그룹과 가정을 소외감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건강한 공동체로 세우자. 이메일:revdavid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