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조리 주의 퍼거슨 시에 Darren Wilson의 불기소 판결 이후에 미국은 다시 인종문제로 인한 논쟁에 휩싸였다. 이 사건의 발단은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관인 데릴 윌슨이 흑인을 총으로 170여 개가 넘는 도시에서 재판의 결과에 항의하는 데모가 일어나면서 온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데모와 함께 방화와 약탈까지 일어나서 퍼거스 시의 한인업소들도 10여 군데가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LA폭동의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평화적으로 데모를 하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진정한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CNN 등의 언론들은 오리건 주 포틀랜드 시 시위에서 촬영된 한 장의 사진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일제히 소개했었다. 사진은 11월 25일 백인 경찰 브렛 바넘이 울고 있는 흑인 소년 데본트 하트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작가 Jonny Nguyen이 촬영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것으로, 미국 네티즌과 언론의 뜨거운 반응으로 15만회 이상 공유되었다. 백인 경찰과 흑인 소년의 눈물의 포옹은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상한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소망을 주는 상징이 되었다. 미국의 인종갈등은 100년이 넘는 아픔이다. 흑백의 갈등이 아니라고 해도 이민자인 우리도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느낀다. 우리가 차별을 느낄 때에 분노할 수 있다. 지금 일어나는 폭동과 약탈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분노의 표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약탈과 폭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분노가 무엇인가? 분노는 사실상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다. 신체적인 위험이나 고통에 대하여 반응하는 적절한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이나, 자아나, 자존심이 상하게 되었을 때에 일어나는 분노는 부적절한 것이다. 분노는 상처를 입었을 때에 나타난다. 사람들은 성경이 어떤 경우는 분노를 정당화하는 것 같고, 어떤 곳에서는 분노를 금지하는 것 같아서 혼동된다고 한다. 하지만, 말씀을 자세히 살피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모든 분노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분노가 다 좋은 것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분노는 다 같은 분노가 아니다.
분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의로운 분노가 있고 또한 의롭지 못한 분노가 있다. 첫째, 의로운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언제나 정의이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죄를 묵과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지만 감정적이지 않으시다.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이지도 않다. 내편이니까 무조건 봐주는 눈 감고 지나가는 것도 아닌, 사랑을 근거로 하시는 의로우신 분노이다. 사람의 분노 가운데서도 정당한 분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분노 역시 반드시 주의를 해야 한다. 사회 사람들도 정당한 분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 사람들이 불의를 보고 분을 내는 것은 정당하다. 거짓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 분노를 표출한다. 부정과 부패에 대한 의분이 있다. 그러나 소위 세상사람들의 정의는 눈에 보일 때에는 정당한 것 같아도 그 안에는 음모와 자기주장과 자기 이권과 자기 권세를 위한 잘못된 동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분노는 정당하게는 보이나 사실은 잘못된 분노들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당화 될 수 있는 분노는 오직 하나님을 위한 분노이다. 죄에 대한 분노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정당한 분노이다(출32:19-20). 사탄의 역사를 볼 때, 불의가 성행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일들이 행하여지고 있을 때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분노들도 역시 에베소서4장의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 둘째,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분노는 정당하지 않는 분노이다. 매우 파괴적인 분노이다. 잘못된 원인으로 분노하는 것이다. 물론, 분노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외부적인 원인, 혹은 내부적인 원인에 의하여 일어난다. 우리는 어떤 개인이나, 어떤 사건이나, 혹은 현재나 장래의 일에 대한 염려들을 통하여서 분노하게 된다. 과거의 어떤 아픈 상처들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한 기억들이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분노는 두 번째 감정이라고 불린다. 분노는 우리가 처음으로, 일차적으로, 맨 처음에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다른 감정이 먼저 느껴지고 그 처음 느끼는 감정이 우리에게 불편해지면 마침내 화를 내게 된다.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는 감정들을 보고 분노를 앞서는 감정들이라고 부른다. 분노를 일으키는 것들은 보통 두려움이나 실망되었을 때, 창피를 당하였을 때, 죄책감을 가질 때, 질투심, 자기가 부적당함을 느낄 때, 아픔이 있을 때, 때로는 피곤하거나 배고픔이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내가 연약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내가 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인정하는 것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분노를 표출함으로 내가 강하다고 하는 것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있으면 강하면 여유가 생긴다. 내가 화를 계속하여 낸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약함이나 아픔이 있다는 말이 된다. 분노의 단계는 가인의 살인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신다. 분노는 통제되지 않으면 점점 악화된다. 분노는 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더 정도가 지나치면 분개에서 격노로 바뀐다. 밖으로 표현된다. 말로서 나온다. 점점 더 노가 격하게 되어서 격분을 한다. 격분은 폭력이 되고, 감정적인 통제력이 상실된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려 하게 되고, 폭력이 나온다. 더 나아가면, 광분의 단계로 나간다. 광분하게 되면 파괴적인 행동들이 지나쳐서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가인과 같은 자기의 동생을 죽이는 살인행위로 나간다.
왜 분노가 발전되는가? 분노는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분노는 자동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분노는 축적이 되고 나중에는 형태나 모양을 바꾸어서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게 된다. 육체적인 건강을 해치고, 정신적인 건강도 상하게 된다. 분노는 영적인 문제이고 심지어는 살인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분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4:26-27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하셨다. 첫째, 분노는 하나님께서 주신 감정이다. 사실 분노는 자연적인 사람의 감정이다. ‘분을 내어도’ 라는 말씀은 분노가 허락되었음을 말한다. 분노는 하나의 신호와도 같은데 무엇인가 잘못 되어지는 것 같은 것에 대한 반응이다. 또한, 분노 그 자체가 반드시 죄악은 아니다. 예수님도 분노하셨지만 죄를 짓지는 않으셨다. 예수님의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이고, 의로운 것이었다. 우리가 분노를 하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분노를 잘 통제하지 못한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품으면 죄이다.
분노에는 한계와 제한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절제되어야 한다. 성경은 두 가지 한계를 말씀하신다. 첫째, 분노에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시간적으로는 분노를 해가 지도록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지속적으로 분노를 품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도 계속 가지고 있는 분노는 합당하지 않다. 둘째, 분노에는 정도의 한계가 있다. 분노를 품되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할 정도만 품으라는 것이다. 분노는 용서로 사랑으로 이해로 바꾸어져야 한다. 분노를 다스리지 않으면 우리가 약해진다. 마귀가 우리를 통하여 역사할 틈을 주게 된다. 분노에 이끌리고 마음으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 죄를 옮기고, 결국은 망하게 된다. 성경은 잘못된 분노를 극복하려면 첫째, 분노의 원인을 고치라 하셨다. 우리는 분노 그 자체에, 화를 내는 그 자체에 집중하여서 사실을 화를 내게 하는 그 원래의 원인을 무시하는 수가 있다. 둘째, 잘못된 분노를 극복하려면 분노의 대상을 바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의 대상은 사탄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죄에 대한 것이다. 분노의 대상이 아닌 것은 내가 상대하는 사람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죄와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역사를 미워해도, 죄를 짓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도록 주의함이 필요하다. 셋째, 분노의 계절을 극복하려면, 분노의 순간에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성령님께 순종해야 한다.
분노의 계절은 분노 속에서 사는 것이다. 분노의 계절은 하나님과의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의 부재에서 온다. 분노에 젖어서 밤낮을 사는 것은 죄이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무력하게 하고 비극을 가져오는 구멍이다. 온 세상에 소용돌이치는 분노의 계절에서 나의 영적인 상태는 과연 어떠한가? 이메일:revdavid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