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온 세계가 왕따(bullying) 문제로 들끓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왕따 시키고 왕따 당하는 왕따의 세계이다. 왕따는 집단따돌림을 표현하는 한국의 신조어다. 최근의 학교의 총기사건들도 왕따 당하던 학생의 역반응으로 나타나 또 한번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다. 많은 연구들은 학교폭력의 대부분은 왕따와 관계된다고 보고한다. 왕따를 경험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자녀들에 대한 걱정들이 많다.
한국의 왕따 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사회이슈가 되었다. 한국의 왕따는 그 정도가 극심하기로 유명하다. 미국사회도 얼마나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지는 2012년도 오바마 대통령과 미쉘 영부인이 직접 ‘왕따 방지 컨퍼런스(Bullying Prevention Conference)’를 백악관에서 개최할 정도이다.
왕따는 집단 내에서 다수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해를 가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집단 따돌림은 범죄 행위이다. 한국 청소년 개발원에서는 집단따돌림bullying을 “학교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2주 이상의 기간에 걸쳐 심리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이나, 금품 갈취 등을 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의 왕따 시키는 것은 더욱 더 심각하다.
왕따에 대한 지금의 조사발표를 보면 놀라운데 사실은 조사발표 숫자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2010년 REL-NEI the Regional Educational Laboratory of Northeast and Islands 에 의하면 학교의 왕따 시키는 사건들 중에서 40퍼센트는 보고되지 않는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12년 CareerBuilders.com 조사에 의하면 직장의 왕따 50%가 보고되지 않는다. 2013년의 NBC뉴스 조사에 의하면 노인계층을 향한 집단따돌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10명중의 1명은 신체적 학대를 당한다고 한다. 미국의 십대 중의 6명 중에 1명은 자살을 고려하고, 12명 중에 1명은 자살을 시도한다. 가장 큰 이유는 왕따 때문이다.
왕따는 한 집단 내에서 그들이 만든 기준에서 벗어나는 언행을 하는 구성원을 벌주기 위한 의도적 행동, 특정인을 따돌리는 행동을 주도하는 구성원들의 압력에 동조하여 같이 괴롭히는 행동 등을 말한다. 피해자는 심리적인 압박, 육체적인 피해, 심한 경우에는 자살을 하거나 과격한 범죄를 행하기도 한다.
미국은 10대 중후반의 연령인 고등학생들 사이에도 왕따로 인한 교내 폭력의 피해 학생이 전국적으로 매월 28만2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연방 교육부는 집계하고 있다. 왕따는 최악의 경우 저 연령층의 피해 학생들의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고 있다. 왕따가 미국에서도 전국적인 문제로 부상하자 조지아 주를 비롯한 미국의 49개주에서 주법으로 왕따에 대해 학교당국이 예방과 방지 계획을 세울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학부형들에게 주기적으로 왕따 관련 교육 통지문을 발송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 가면 더 심해진다. 한국 EAP(근로자지원프로그램) 협회에 따르면 직장 왕따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히는 개인의 정서, 성격, 조직내 갈등, 직무 스트레스 문제의 상담은 2011년 전체 상담 중 60.4%를 차지했다. 2012년 1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2975명을 설문한 결과 45%는 ‘직장에 왕따가 있다’라고 답했고 58.3%는 ‘왕따 문제로 퇴사한 직원이 있다’고 답해 직장 왕따가 학교폭력보다 훨씬 더 심한 상태로 나타났다.
왕따 시킴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생기는 문제다. 가족에서도, 직장에서도, 또한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유사한 일들은 일어난다. 그렇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2011년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Study에 의하면 남자 중에서 다른 사람을 왕따 시키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자신의 여성 상대를 성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학대할 가능성이 4배가 많다고 한다. 또한 학교시절의 왕따 시키는 사람은 나이가 24세가 되기까지 그 중의 60%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집단따돌림을 하는가? 개인 심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1)정체감 확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좌절감 때문이다. 특별히 한국의 청소년들은 ‘가치 있는 타인’들인 교사나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단 하나 밖에 없다. 공부이다. 공부를 잘하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비정상적인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공부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은 20-30%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모순된 구조이다. 2)개인심리학적으로 볼 때 ‘공격자와 동일시’이다. 3)또한 불안 해소를 위한 행동가담을 통해서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집단 심리학적인 면에서 보면 1)이질적인 것을 거부하는 심리이다. 친구를 따돌리는 아이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같이 몰려다닌다. 같은 학용품을 갖고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 문제는 자기와 같으면 좋고 다르면 나쁘다는 생각이다. 2)동조 행동심리가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동조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비교이다. 심리학적 연구는 동조자가 1명일 때는 동조하지 않는다. 2-4명이면 급격히 증가하고, 7명이 되면 동조 행동이 극대화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주관이 확실할수록 다른 사람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같이하면 왕따 현상을 집단화 가속화 시킨다. 성경은 왕따를 죄라고 말한다(미6:8). 왕따는 인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반대되는 적대(hostility) 이다. 왕따는 잠언 6:16-19의 죄의 특징과 부합된다. 성경에는 왕따에 대한 교훈이 많다. 구약의 출애굽기 1장에서 무죄한 히브리 노예들을 죽이는 애굽의 바로왕, 혹은 신약에서는 세례요한 죽인 헤로디아 등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문제의 해결은 있는가? 왕따를 방지하거나, 왕따 당함을 이기기 위해서는 건강한 영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왕따 극복 이야기 중에 하나는 요셉이다. 요셉은 10명의 형들에게 의하여 집단따돌림을 당한다.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아닌 자기보다 힘세고 강한 형들이 가장 어린 동생인 요셉을 왕따를 시킨다. 심지어는 그를 구덩이에 던지고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요셉은 왕따 당함 속에서 잘 견디어 낸다. 그리고 계속되는 차별과 공격을 극복한다.
요셉을 통해서 배우는 승리의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로,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확실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요셉은 확실한 신앙을 가졌다.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다. 비록 형제들은 시기하고 미워해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간직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버리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자신과 믿음을 지켰다. 요셉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그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였다. 형통함이 보여지는 생활이었다. 요셉은 사회적인 지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온 세상이 왕따 시켜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무너지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으로 감당한 것이다.
둘째로, 자녀들이 부모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바른 자신감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았지만 부모의 사랑은 확실했다. 심리 전문가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집단따돌림 속에서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실제로 부모에게 따뜻하게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개인의 자존감이나 자기개념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중요한 대상들이,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신에 대하여 갖는 태도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은 요셉은 고난과 억울함의 세월을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의지했다.
집단 따돌림의 문제는 너무도 치명적이고 아픈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적으로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세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강력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워진다면 왕따의 문제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