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우리는 해답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산다. 세계의 경제도 그렇고,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상황도 마찬가지다. 2009년 칼빈의 출생 500주년을 지나면서 칼빈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솟아나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상이 신칼빈주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절제와 금욕으로 세상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Mark Oppenheimer가 2014년 1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복음주의는 칼빈주의적 부흥 한가운데 있다”는 글이 계속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David Van Biema는 ‘The New Calvinism’이라는 글에서 ‘지금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10가지 사상’ 중에서 신칼빈주의를 들었다. 신칼빈주의 보급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 중에 하나인 Christianity Today의 편집장 Ted Olsen은 신칼빈주의의 영향을 ‘오늘 복음 세계의 에너지’라고 했다.
미국에서 영향을 미치는 활동하는 신칼빈주의자들로 알려진 사람들은 미네아폴리스의 John Piper 목사, 시애틀의 Mark Driscoll, 남침례신학교의 Albert Mohler 목사, David Tripp, 뉴욕의 PCA Redeemer Church 목사이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저자인 Tim Keller, 그리고 Justin Taylor 등을 든다. 또한 현대에 최고로 인기 있는 영어성경은 ESV 성경이다. ESV는 신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칼빈주의 흐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Colin Hansen은 그의 저서 ‘Young, Restless, Reformed: A Journalist’s Journey with the New Calvinists’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상처와, 이혼과, 마약과, 성적 유혹의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평가했다. Albert Mohler는 “…이들에게 필요한 분은 하나님이시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정의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칼빈주의자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라고 했다.
물론 신칼빈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은 영향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정의에 대한 것들이다. 서부 웨스터민스터신학교의 교회사 교수인 R. Scott Clark은 Mark Driscoll 같은 사람을 칼빈주의자로 불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비록 그들이 튤립 (TULIP)은 믿지만, 삼분설, 유아세례, 언약신학, 성령의 은사 등의 견해가 개혁교회 전통과 다르다는 것이다. Bob Robinson 역시 그의 글 ‘So What’s Wrong with Neo-Calvinism?’ 에서 언약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을 neo-calvinism이 아니라 noe-puritanism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Neo-puritanism이라는 말은 존 오웬, 리차드 박스터, 조나단 에드워wm 같은 사람의 생각을 이어받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신칼빈주의란 무엇인가? 신칼빈주의를 말하기 전에 먼저 칼빈주의를 알아야 한다. 칼빈주의는 칼빈의 개인적인 모든 사상을 추종하는 신학이 아니다. 즉, 칼빈의 신학사상과 칼빈주의의 신학사상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칼빈주의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칼빈 개인의 신학사상이 곧 칼빈주의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칼빈주의자는 성경 무오설을 믿지만 칼빈의 사상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건전한 비평을 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더욱 가까이 알아가고자 애쓰는 것을 말한다. 칼빈주의 신학의 특징은 하나님 중심사상,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중심 주제인 다섯 가지 solas – 즉,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 등을 중요시 한다. 칼빈주의는 언약을 중시한다. 칼빈주의 신앙의 기본 생활원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으로 집약될 수 있다. 또한 진정한 교회에서는 올바른 말씀 선포, 참된 성례의 시행, 온당한 권징의 이행을 교회의 중요한 표지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칼빈주의가 무엇인가? New Calvinism 또는 Neo-Calvinism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유명한 화란의 수상이면서 신학자이었던 Abraham Kuyper의 사상으로 대표된다. 카이퍼는 인생의 모든 존재의 영역 속에서 그리스도의 것이 아닌 것은 단 1평방인치도 없다고 했다. 모든 것들이 다 그리스도의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한다. 신칼빈주의는 칼빈주의 원리를 교리와 신학의 한계를 넘어서 생활의 전 영역으로 확대 적용하자는 운동이다. 특별히 창1:26-28 문화명령을 중시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전 우주적, 전 피조물의 세계로 확대하는 것이다.
존 파이퍼가 주장하는 ‘신칼빈주의의 12가지 내용’은 그 첫 번째를 성경의 무오설과 함께 알미니언주의와 차이를 나타내는 튤립(TULIP)을 말한다. Joe Carter는 미국의 신칼빈주의 Neo-Calvinism은 지역 교회와의 전통적인 칼빈주의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카이퍼는 문화명령과 하나님의 주권의 실현에 초점을 맞춘다고 정의했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을 우주적 보편교회와 시대적 지역교회로부터 국가를 비롯한 세속적 일반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교회뿐 아니라 피조세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는 세계관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했다.
오늘 새삼스럽게 칼빈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가? 신칼빈주의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해답이 없는 미국과 세계를 다시 살리는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이것은 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릴리저스뉴스서비스의 Greg Horton은 2013년 미국 남침례교 총회의 이슈들을 이야 하면서 칼빈주의가 남침례교회를 나누는 이슈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라이프웨이리서치의 통계를 빌어서 남침례교의 목회자 중 적어도 30% 이상이 칼빈주의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플로리다 목회자이면서 친 칼빈주의 모임의 대표이기도 한 Tom Ascol 목사는 그보다 더 많은 60% 정도의 목회자들이 칼빈주의의 영향력을 받고 또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들이 전통적인 침례교 지도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불편한 이유는 칼빈주의의 예정교리는 소위 복음주의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19세기 개신교는 인간이 스스로의 구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비칼빈주의(Non-Calvinist) 신념으로 돌아섰다. 이것은 미국인들의 매우 본질적인 신념이 되었다. 복음주의가 꽃을 피웠었다. 칼빈주의와 복음주의의 차이는 복음주의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인간의 노력을 중시하는 것에 반해서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강조하는데 있다.
주목할 것은 신칼빈주의는 신학적 지향점이지 교단이나 단체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흐름을 “16세기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의 관점을 가르치는 전도자와 신학교 교수들의 수가 늘고 있다. 칼빈의 영향을 받은 교회의 예배 출석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별히 20-30대 예배자들 사이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물론 칼빈주의자들이 침례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단과 전통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칼빈주의적 가르침을 따른다고 고백한다. 순복음에서도, 성결교회, 감리교회, 독립교회들에서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캐톨릭을 떠나서 개혁주의적 신앙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Reformed Catholics라고 부른다. 미국정신을 대표하는 청교도들 역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초기 침례교인들 중 상당수 역시 칼빈주의자였다. 침례교 목사이면서 신칼빈주의자 이기도 한 Mark Dever는 가르침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죄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죄에 대한 이 같은 초점은 더타임스의 지적처럼 최근까지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는 믿음을 통해 부유해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번영복음 설교자들과는 대조적이다.
세계를 새롭게 하는 사상으로서의 신칼빈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면서 기억할 일이 있다. 우리는 새롭게 관심을 받기 시작하는 신칼빈주의나 아니면 전통적인 칼빈주의적 방법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이 세상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처럼 완전히 망가졌다. 망가진 금융시스템이나 총체적인 부실화된 나라를 새로 살리는 길은 어떤 신학자의 주장이나 방법이 아니다. 16세기의 칼빈의 방법도 아니고 아니면 새로운 방법도 아니다.
이 세상의 소망도 그리고 오는 세상의 소망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그리고 칼빈이 재발견한 그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궁극적으로 만물을 회복하시는 분은 창조주이신 그리고 마지막 회복자이시고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