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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부자들의 책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한국의 이단 구원파 유병언 일가의 부의 축적이 한국과 세계의 이슈로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와 관계된 유병언은 부정적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불법을 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수퍼부자이다. 그럼에도 그는 책임을 회피하며 도망자가 되었다. 새로 국무총리 후보인 안대희 변호사도 짧은 기간에 받은 고액의 수수료 때문에 법피아가 아니냐는 비난과 함께 청문회까지 매우 시끄러울 것 같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나라가, 교계가 무너지고 있다. 선거에 돈이 투입되어 뽑히지 말아야 할 사람이 선출되고, 입시에 돈이 개입되어 교육을 뒤흔든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재정의 투명성 때문에 교회들조차 흔들리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돈을 우상으로 삼고 그 마력에 깊이 빠져 있다.

유병언이나 수억대의 수수료를 받는 사람들만이 수퍼 부자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도 수퍼부자들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사회문제 중 하나는 부의 심각한 편중현상이다. 미국의 부를 상징하는 뉴욕의 월스트릿에서 부의 불평등에 대한 항의 데모는 상위권 1%가 소유한 엄청난 부의 불균형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David Baker는 영국의 부자들의 현실을 보도했다. Phillip Inman은 영국의 부자상위권 1%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55%의 부를 소유한다고 했다. 금년의 통계에 의하면 영국의 상위 10% 사람들이 44%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 영국처럼 민주화가 된 사회에서의 통계가 이정도이니 제3세계나 다른 나라들에게는 부의 편재 비율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영국 뉴선데이타임스 리치 리스트에 의하면 영국의 부자 1천명의 부를 합산해보니 5조1천9백만 파운드가 되었다. 그것은 국가 총생산량의 1/3이 된다고 한다. 고액연봉의 영국의 아스넬 축구팀의 와그너 감독의 연봉을 326년간 모은 돈이라고 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KB경영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부자 현황 및 자산투자 행태, 소득 및 소비특성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보고했다. 부동산이나 기타 실물자산 이외에 금융자산만 10억원이 넘는 한국 부자는 2011년 14만2천명에서 2012년 16만3천명으로 14.8%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부자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7만8천명으로 전국 부자 수의 48%를 차지하고, 또 인구대비 부자 수 비율도 0.77%로 가장 높았다.

우리는 상대적 상실감 가운데 살고 있다.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나는 가난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 Gallop Poll에서 누가 부자인지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자신들이 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일년에 3만2천불을 버는 사람들은 7만 4천불을 버는 사람들이 부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년에 7만4천불을 버는 사람들은 일년에 15만불을 버는 사람들이 부자라고 말했다. 일년에 15만불을 버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부자가 아니고, 일년에 30만불을 버는 사람들이 부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얼마를 벌면 부자인가를 물어보았더니,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한 가족 당 12만 달러를 벌면 부자라고 말했다. Global Rich List라고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나의 수입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가 되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일년에 미화 3만불을 벌면 그는 전 세계의 사람들 중 가장 돈을 많이 버는 1.23%에 속한다. 미화 7만불을 벌면 세계 상위 0.13%에 속한다. 미화 12만불을 벌면 세계 상위 0.07%에 해당된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부자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세계적인 부자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일년의 수입이나 부동산을 따질 필요도 없이 미국이나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세계에서 적어도 상위 10% 안에 드는 부자들이라는 말이다. 아직도 세계의 인구의 ¼이상이 우리의 커피 한잔 값도 못되는 1.25불미만으로 하루를 산다. 우리는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지만 이들은 절대적 가난 속에서 고통을 당한다. 가난과 기근이 마지막 때의 징조이다. 이미 식량의 무기화, 곡물의 무기화는 이루어지고 있다. 부의 편중과 불균형은 더욱 더 가속될 것이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이미 그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2012년 국가조찬기도회 때에 오바마 대통령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부자증세, 공정사회, 기득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을 강조했다.

수년전 한국교회도 깨끗한 부자, 깨끗한 가난에 대한 열띤 논의를 했다. 깨끗한 부자, 청부론의 주장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돈도 많이 벌고 부자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깨끗한 부자가 아니라 깨끗한 가난, 영성적 가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깨끗한 부자라는 말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직하게 부자되는 것이 힘들다. 또한 현실적으로 볼 때 소유하면 할수록 더 많이 소유하는 것에 몰두하지 신앙적 나눔을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혹시 재물을 나눠주면 자기 것을 나눴다는 우월의식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교만에 빠지므로 영적으로 좋지 않다.

최근에 일어나는 또 다른 논쟁은 두 논리 중 어떤 논리가 더 신앙적이고 성경적 일까 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청부론이나 청빈론 둘 다 성경적이지 않다. 몇년전 한국기독교윤리학교와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의 공동 심포지엄에서 총신대 이상원 교수는 ‘청부론과 청빈론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었다. 김동호가 쓴 ‘깨끗한 부자’, ‘깨끗한 크리스천’에 나타난 청부론의 논리와, 김영봉이 쓴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사귐의 기도’에 나타난 청빈론의 논리, 모두 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성경의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반영이다. 이 교수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입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칼빈의 가르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칼빈은 가난한 자는 부자를 필요로 하며, 부자도 가난한 자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칼빈은 신명기 16:11을 해석하면서 가난한 자와 부자는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 안에서 가난한 자는 받고, 부자는 나누어 줌으로써 부자는 함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 안에서 가난한 자는 받고 부자는 나누어 줌으로써 부자는 가난한 자와 똑같이 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나눔을 가진다. 사회란 가난한 자와 부자가 공존함으로써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함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런 칼빈의 해석은 기독교사회사상의 터전에서 나온 건실한 사회해석으로서 가치가 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과의 대화(마19:23-24)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을 보여주신다. 성경은 물질의 소유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물질에 대한 태도를 주목한다. 주님의 요구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가? 어리석은 부자는 수퍼부자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다. 주님은 그를 미련하다 하셨다. 그리고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한 자임을 보이신다.

가난한 사람이 돈돈돈 하거나, 부자이면서 돈돈돈 하는 사람도 모두 돈의 유무와 관련없이 돈에 대한 관심이 많은 심령이 부유한 부자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나, 돈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고민하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따라서 성경은 돈이 많고 적은 여부의 부자와 가난함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해야 함을 보이신다.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저희의 것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성경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적인 비율이나 기준으로 볼 때 이미 수퍼 부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가난하다고 엄살을 부리며 더더더 하는 생활을 한다. 다른 사람을 보고 더 필요하다고 상대적 빈곤을 말하지만 사실은 수퍼 부자들이다. 성경에 기초한 행복한 부자학 강좌로 유명한 영남대 박정윤 교수는 질문한다. 그는 행복한 부자가 되고 싶은가? 빚 갚고 하나님 펀드에 투자하라고 했다. 예수님은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다.

말세의 고통하는 때를 사는 우리는 성경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 때의 징조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3:1-2)라고 하셨다. 돈을 사랑하기에 상대적 빈곤함을 불평하는 세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세어보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돈을 사랑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수퍼부자들인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것을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더 많이 나누는 것이 마지막 때를 사는 지혜이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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