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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어른인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대한민국은 통곡한다. 세계가 통곡한다. 온 국민과 온 세계인의 가슴을 찢는 또하나의 참사가 일어났다. 인천과 제주를 왕복하는 한국 최대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사건이다. 사망자와 실종자의 숫자도 문제이지만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사망자와 실종자의 대부분이 바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의 수학여행에 참여한 어린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이 참사의 시작부터 진행을 보면서 어른인 것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조사가 계속되어질 것이지만 한국에서 2번째로 물살이 빠르다는 유명한 맹골수도 를 지나면서 일어난 이 사건은 아무리 보아도 인재이다. 어떻게 잘못되어도 이렇게 철저하게 잘못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잘못된 참사이다. 이 사건을 맞아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럽다. 배에 대한 모든 것과 탑승한 승객들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승객들을 내팽겨 치고 제일 먼저 하선을 하고 첫 번째 구출보트에 승선을 한 사실부터 점차 들어나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보면서 온 국민과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할 말을 잊는다. 수많은 아이들과 승객들이 뒤에 남겨진 채 배를 책임져야 할 선원직원들이 100% 제일먼저 탈출하면서 이 사고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사건에서 대형 참사로 바뀌어졌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사명을 다한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의 생명을 희생한 사람들도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남아서 구조작업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사무직원들은 더 많은 실종자와 사상자를 냈다. 사무장 양대웅씨는 아내에게 전화하여 “아이들을 구하러가야 한다”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실종되었다. 박지영이라는 여승무원은 자기의 구명조끼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구조시키면서 “선원은 마지막까지 남아야 해” 하고 남았다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단원고등학교의 한 학생은 검도3단의 유단자로 검도사범을 꿈꾸던 아이였다. 자신의 구명정을 친구에게 내어주고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하고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배가 기울어지는 절대위기의 순간에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20여명을 구조하고 마지막에 탈출한 용감한 시민들이 있다. 이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사명을 다한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긴 위대한 실천이다.

하지만 선장이면서 어느 사이 제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자신을 일반인이라고 말하고 병원으로 가서 다른 사람 행세하는 모습에 온 세계가 분노한다. 책임을 맡은 사명자들이 자신들은 탈출하면서 어린 학생들은 방에 그대로 남아 있으라 했다는 사실은 어른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게 한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참사를 당했다는 말이 아닌가? 어린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른임이 더욱 부끄럽다. 이번 참사는 바로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수많은 제도적인 문제, 불법적인 관행의 문제,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황금만능의 경영의 문제 등 수 많은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를 표출시켰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전반의 부패한 모습들을 한군데 모아서 단체사진을 찍은 사진과 같은 사건이다.

자기 사명에 대한 미숙함, 안전에 대한 불감증, 사명을 무시하고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는 모습들이 이번 사건과 관계된 어른들의 모습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선장이지만 타이타닉호의 선장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승객들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배의 침몰과 함께 했다. 1850년 영국의 군함 시드니 써든호의 함장은 침수하는 배에서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탈출시키고 나머지 모든 장교들과 병사들이 기립자세에서 수장했다. 이것이 과거 200여년동안의 Seaman들이 가졌던 장렬한 직업의식이고 사명의식이었고 자부심이었다. 이 사건을 보는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선원으로서 전혀 훈련이 되지 않는 모습, 자신들은 1층에서부터 선상까지 150미터의 통로를 뚫고 올라오면서 도중에 수많은 학생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구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온 세계가 통탄하며 울분을 토한다. 탑승원의 숫자부터 적재 컨테이너의 숫자, 적재차량의 숫자 등 속과 겉이 전혀 다른 기업의 운영체제를 보여준다.

더구나 청해진 해운이라는 회사는 한국을 뒤흔들었던 말썽 많았던 부도기업인 한강 세모유람선과 관련이 된다고 한다. 이 기업의 회장인 유병언은 이단인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목사로 1987년 종말론을 내세우며 신도들이 집단 자살했던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았던 장본인이다. 이단이면서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그들이 유람선사업을 하다가 파산하고 국민들의 세비를 2천억 이상의 손상을 입혔다. 그 회사의 주동 7인방이 지금도 계열회사들을 통해서 불법적으로 유령회사들을 만들고 각종 비리를 행하고 있다. 권력유착과 각종의 탈법을 통해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고 전국과 세계에 수많은 토지와 부동산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이들이 불법적 방법으로 기업을 운영해서 이번의 참사를 초래했다고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철저히 일명 구원파와 관계된 불법적 기업운영이 밝혀지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정서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이 참사는 훈련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위급사항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처하는 방식이 너무도 달랐다. 구조메뉴얼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구조메뉴얼은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문제는 구조메뉴얼에 기록된 그대로 지키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그 순간에 구조메뉴얼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훈련이 전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말 할 것이 있는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필요할 때에 불순종함으로 인생의 침몰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지금은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한 마음으로 생명을 구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최대의 희생자들인 아이들에게 너무도 부끄럽다. 어른들이 어른답지 못해서 너무도 미안하다. 어른들의 이기주의, 어른들의 적당주의, 어른들의 부정부패의 모습을 그대로 들어낸 사건을 통해서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참사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사명을 맡은 사람이 자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명을 잘 감당할 때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때 일어나는 엄청난 참사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이번의 참사가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런 모습들이 남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서 세월호 선장의 반사회적인 모습이나 선원들의 무책임성을 질타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교회의 리더로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과 세상의 소금인 교회의 지도자로서 과연 나는 충성스러운 모습인가? 책임을 지지 못하는 어른들이 꼭 세월호에서만 있었나? 아니다. 세월호의 일부 어른들의 모습은 바로 한국 사회와 세상의 어른들의 대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식구들과 특별히 단체수학여행을 보냈다가 이런 대형참사를 당한 부모님들과 식구들이 풍월도 앞으로 달려와서 침수해가는 배를 바라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통곡하는 모습은 진실로 전 대한민국 국민들의 아픔이고 전 세계인의 안타까움이다. 바로 앞에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함과 무기력함이 절실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무슨 말을 하여서 어려움을 당한 수많은 사망자들과 실종자 가족을 위로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엎드려 구할 뿐이다. 실종자들이 하루 빨리 구조되기를 전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한국은 새로워져야 한다. 소위 관피야의 말도 되지 않는 부조리와 관행이 끊어지고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또한 이 사건은 한국교회와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도 분명히 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이 사건은 인간의 철저한 무능과 인간의 전적인 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어른인 것이 너무도 너무도 부끄러운 이 참사 앞에서 먼저 지도자 된 사람으로서 회개의 베옷을 입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이런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전 민족적인 회개와 하나님의 말씀에의 순종의 결단이 일어나는 부흥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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