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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우상화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세계적인 시선을 모은 가운데 말썽과 요란한 소음이 많았던 소치 올림픽이 폐막했다. 소치올림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편안하지만은 않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에서 기대했던 등수에 들지는 못했지만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트의 맹활약으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했다. 비록 메달권에 들지는 못해도 다음 평창 올림픽에 가능성을 보인 종목들과 선수들도 많았다. 수고를 축하하고 격려한다. 특히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 3개와 동메달 하나의 획득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기뻐하면서도 훌륭한 선수가 러시아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체육계의 내부 현실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일어났다. 한국인들과 많은 세계의 여론을 들끓게 한 것은 ‘퀸 연아’라고 불리우는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금메달급 퍼포먼스를 하고도 은메달을 받은 사건이다.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을 나타나고 재심을 요구하는 change.org에 올린 페티션이 순식간에 2백만명 이상의 사인할 정도이었다. 전세계가 들끓었지만 정작 김연아 선수는 의연했다. 비록 무대 뒤쪽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을 NBC가 보도했지만, 선수 자신은 판정도 받아들인다고 했다. 주변보다 더 침착한 그녀의 모습 속에서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선수다운 내적 성숙함도 보였다. 김연아에 대한 은메달 판정은 수많은 사람들을 자극했다. 다음 올림픽 평창에서 두고 보자! 로부터 시작해서 2002년도와 같이 김연아에게도 금메달을 수여해야 한다는 등 수 많은 제안과 복수극의 시나리오들이 나왔다. 이번의 사건은 주최국의 텃세라는 것을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옛부터 올림픽 경기의 금기사항으로 마약, 상업주의, 정치, 종교 등이 꼽힌다. 고대 올림픽 시절에 네로 황제는 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대회에 참가해 전차경기와 자신이 고안한 경기종목에서 우승을 싹쓸이해버렸다. 대회는 난장판이 됐고, 스포츠 행사가 정치에 오염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대량으로 귀화시킨 선수들로 정치적 선전을 하려고 한 스탈린에 비교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 후에도 올림픽은 강대국들의 정치적 선전장으로 전락되었다.

스포츠도 인생의 한 부분이다. 스포츠에서도 잘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억울한 판정, 잘못된 판정, 의도적인 특혜 등은 4년 동안 올림픽 한 순간을 위해서 수많은 세월을 희생하며 준비한 선수와 함께 도와 준비한 모든 사람들을 난도질 하는 사회악이다. 예상은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수를 받고, 어린 선수 김연아는 의연했다. 자기는 올림픽에 참석한 것만으로 목적을 다했고, 자기의 마지막 대회를 자신이 준비한 것처럼 실수 없이 마쳐서 감사하는 모습은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성숙함을 보였다. 스포츠에 대한 성도들의 선호도는 다 다르다. 스포츠를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중에 하나로 여기는가 하면 신앙생활에 방해하는 요소로 보기도 한다. 성경은 현대 스포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실까? 미국 남침례교 신학교 총장인 Dr. R. Albert Mohler Jr. 슈퍼볼에 즈음해서 “The New American Religion: The Rise of Sports and the Decline of the Church”라는 글을 실었다. 스포츠는 미국의 새로운 종교라는 것이다. 또한 스포츠의 부흥과 교회의 퇴락의 상관관계를 조명한 것이다.

미국의 스포츠계는 그야말로 슈퍼 비즈니스이다. 슈퍼볼 경기를 무려 1억2천만명이 관람을 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스포츠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미식축구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드린다. 그래서 스포츠는 미국의 새로운 종교이고, 축구는 가장 중요한 성례식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캐톨릭 추기경이었던 오코너가 지난 15년 전에 탄식한 말이 생각난다. 어린이 야구인 리틀리그가 바로 어린아이들을 다 빼앗아버린다고 했다. 미국의 어린이 야구, 어린이 축구게임 그리고 수많은 스포츠 게임들이 주일날 행해진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했다. Religious Data Archive를 분석해보면 어떤 교회는 주일에 성도수가 줄어들자 주일예배를 토요예배로 대체하고 가족이 주일은 스포츠에, 토요일은 예배에 참가하게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더욱이 수많은 교회가 스포츠 활동을 제공하여 체육을 즐기는 가족들에게 호감을 사려하고 있다고 이 자료는 보고 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주일날 하는 여러 가지 운동행사들에 대해서 메건 힐은 Christianity Today에 기고했다. 그녀는 일요일 스포츠를 지지하는 교회와 부모는 해결책을 찾았는지는 모르나 계속 연기되는 주일예배는 배워야 할 영적 교훈들을 아이들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스포츠는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고 상호협력, 건전한 경쟁, 체육실력 향상에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 중심의 주일은 자녀들을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하고 가장 교훈적인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일요일 스포츠에 과단성 있게 “아니오”라고 함으로써 영원을 위한 훈련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스포츠가 미친 주일의 세속화는 분명하다. 미국의 스포츠의 성행과 신앙의 쇠퇴와의 밀접한 관계성은 분명하다. Chris Beneke와 Arthur Remillard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좋아하는 팀을 선정하고 그 팀을 따른다 했다. 미국인들의 스포츠 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어느 종교, 어느 신앙에 대한 소속감보다 더 능가한다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과 듀크대학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종교적인 선호도가 없다가 말한 사람이 1990년도 8%이었는데 2012년도에는 20%로 증가했다. 종교가 미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감소하거나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교조사 난에서 가장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자신들이 스포츠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빨리 증가한다. 2012년도에 60% 이상이다. 스포츠팬들의 증가와 동시에 교회출석율과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은 급속도로 감소했다. Beneke교수는 현대의 스포츠 경기장의 기능은 마치 대성당이 가졌던 기능에 비유를 한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에너지를 집약한다. 캐톨릭 보고에 의하면 2014년 여름에 뉴욕의 캐톨릭 교구 중에서 368개의 교구들이 문을 닫거나 합병을 하고, 26개의 캐톨릭 학교들이 폐교할 예정이다. 반면에 스포츠계는 부흥을 경험한다. 뉴욕과 뉴저지는 수천억불을 들여서 새로운 야구구장과 풋볼구장을 만든다. 이것은 캐톨릭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교단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다.

스포츠의 우상화는 스포츠가 종교를 없애고 종교가 차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상화는 교회의 세속화와 함께 온다. 세속화는 신앙생활의 참여가 둔해지고 대신 스포츠에 대한 헌신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신이 누구인지를 모르지만 자기 팀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안다.

성경에서 언급된 스포츠는 마라톤이 유일하다. 바울은 신앙생활을 마라톤에 비유하여 오로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하나님 나라의 증언을 위해 끊임없이 앞으로 달려갈 것을 말하고 있다. 1세기는 로마가 흥왕해 정치, 군사적으로 지중해 일대를 장악했다. 당시의 로마는 스포츠에 열광했다. 수많은 스타디움에서 경기에 열광을 했다. 이런 스포츠 집중현상은 역사가들이 역사의 말기현상이라고 말하는 3S(Sex, Speed, Sports) 중에 하나이다.

사도바울은 스포츠 정신을 신앙과 연결하여 교훈했다. 투쟁하여 이기고 지는 그런 승리에 집착하는 승리가 아니다. 바울은 신앙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성경은 마라톤에서 기록의 빠름과 느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 하는 선수처럼 좌우 곁눈질 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푯대를 향하여 믿음을 지켜 나가는 신앙의 일관성, 즉 신앙인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성경은 운동 자체를 금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연단에도 유익이 있다고 했으며(딤전4:8)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인의 삶을 운동경기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가지고 비유로 가르치기도 했다(고전9:24-27). 스포츠는 우리의 생활의 일부분이다. 스포츠를 죄악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스포츠의 우상화해서 우상숭배를 하거나, 또는 스포츠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도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했는가? 금메달을 땄는가? 1등을 했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을 다했는가? 라는 질문일 것이다.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감당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가? 충성했는가? 이것이 주님이 보시는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주님의 칭찬은 금메달리스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두 달란트에도, 최선을 다한 다섯 달란트에도 주어진 동일한 칭찬이시기 때문이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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