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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인의 정치참여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최근 천주교 박창신 원로신부가 시국미사에서 ‘연평도사건, NLL 등’의 시국에 관련된 발언으로 인해서 한국 전체가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란이 다시 휩싸였다. 그동안 몇 년 들끌었다가 밑바닥에 가라앉은 수많은 질문들이 다시 되살아나게 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지 않는가? 정치는 썩었는데 교회가 세상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인데 어떻게 정치에 무관할 수 있는가? 질문들은 끝없는 꼬리를 문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다. 과연 어떻게 교회가 정치적인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가? 장신대 김명용 총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교회는 권력 지향적이거나 정치 중립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불의를 비판하는 역할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신대 이상원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직자들은 현안 전문가 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교분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는 예배 공동체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를 바람직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의 동향은 어떠한가? 미국과 영국은 정치와 종교를 구분했다. 하지만 유럽과 남미의 백여개 나라에서는 기독교 정당들이 활발하게 정치활동을 추구한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그동안 정치참여에 소극적이었던 보수교회 지도자들 중에 일부가 지난 17대 총선 때에 소위 기독당이란 이름으로 정당정치의 정면에 출현하는 큰 실험을 했다. 기독교인들이 결집을 하면 원내 제1당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2%도 얻지 못해서 정당법에 의하여 등록이 취소되는 수모도 겪었다.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정치는 더럽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정치에는 모략과 중상이 가득하다.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뇌물과 이권이 오고 간다. 정치에는 타협이 불가피하다. 우리는 깨끗하고 정직하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오직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믿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연히 세속정치에 관심이 적다. 누가 보아도 정치는 타락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사람은 정치적인 존재이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형상 속에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부여된 정치적 능력과 본성이 포함되어있다. 또한 땅을 정복하라는 사명도 주셨다. 물론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사실 정치의 타락을 가지고 온 것은 죄로 인한 인간성의 타락이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동료인간을 지배하려는 권력에의 야욕으로 정치를 변질시켰다. 가인의 후예들은 칼로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폭력정치를 시작했다. 타락이후 정치는 인류에게 분열과 대립, 그리고 전쟁과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대체로 정치참여에 적극적이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경험하던 정치체제는 신정이었다. 신정시대는 신앙 지도자가 정치의 전면에 있었다. 왕정시대에도 선지자들이 관여했다. 예수님 시대에도 사두개파는 로마의 협력함으로 정치와 종교의 기득권을 누렸다. 바리새파는 여전히 종교 기득권에 참여 했고, 반대로 에세네파는 종교적 타락에서 도피하려 했다. 열심파는 로마의 정치 기득권에 대항하는 혁명운동을 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이런 사조에 영향을 받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열심당원이 있었다.

루터나 칼빈도 국가 지도자가 잘못할 때 기독교인들이 탄핵할 수 있다고 했다. 신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기독교국가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기독교가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리에게는 경건한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소수일지라도 하나님을 중심한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요셉,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 등은 모두 타락한 정치세계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신앙인들이었다. 우리나라는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한 견해가 분리되어 있다. 한국은 피선교국이었다. 일제시대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선교를 하면서 일제와 협약을 맺었다. 일제가 선교활동을 허용하는 대신 선교사들은 일제의 활동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선교사들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었다. 당시 구국인사들과 청년들은 일제에 대항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일제는 3.1.운동의 배후에 기독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박해했다. 교회를 불태우고 목회자와 성도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는 일이 일어났다. 신사참배도 강요되었다. 기독교가 신사참배에 반대한 것은 당연하다. 공산당의 지배 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후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진보진영에서는 정치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었다. 보수진영에서는 사회구원을 비판하며 개인영혼 구원에 힘썼다. 그러나 우리가 목소리를 내던지 내지 않던지 간에 정치에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는 정치를 통한 세상 구원을 믿지 않는다. 사회적인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사회의 변혁이 구원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크리스천들은 적극적으로 세상의 모든 영역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힘써야 한다. 여기서 참여는 가정을 다스리는 일로부터 정치를 포함한 모든 사회공동체의 참여를 의미한다.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서 어떻게 참여하는가는 다양한 접근방식이 있다. 강승삼 교수는 “한국 기독교의 정치참여 어디까지?” 글을 통해서 “크리스천의 집단적 정치참여는 그 주체와 책임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이름에 여하한 오점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고 했다. 최근의 현대사만 보아도 신앙인들이 정치참여와 비참여, 혹은 정권의 지지나 반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고 복음의 진보를 저해했던 경험이 많았다. 기억할 일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할 영역이 있다. 구약에 나타난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사무엘과 사울왕 사이에도 뚜렷이 나타난다. 삼13장을 보면 왕의 직무와 선지자의 역할은 뚜렷이 구분되었다는 힌트를 얻는다. 사울왕은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직접 제사를 드린다. 사무엘은 “왕이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고 책망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고 질책한다. 왕은 정치적 영역에서 사명이 부여되었고, 제사 드리는 일이나 영적인 영역은 왕이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가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성기문 교수는 한국개혁신학교 학술심포지엄에서 “구약성경은 한국정치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나?”라는 주제 속에서 신정 정치 내에서 왕의 사명은 정의의 실현이라고 규정했다. 구약의 신정정치도 인간대리자를 통해서 수행되었다. 왕에게 요구된 첫 번째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그 결과 사회에 정의와 공평이 이루어진다. 왕정시대 지도자들의 권력의 오용과 불법이 있을 때마다 선지자들의 비판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책망을 받아야 했다.

성경은 정치적 권위가 백성들로 부터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하신다. 바울은 롬13장에서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할 것을 말한다. F.F. Bruce의 로마서강해에서 바울은 국가권력의 기초를 자연법에서 기초를 찾지 않고, 구약의 사상처럼 하나님에게서 그 근거를 찾는다고 했다. 비록 타락한 세상일지라도 세속정부도 하나님의 정의와 질서를 수행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막12장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원론적인 지침을 주신다. 예수는 동전을 통해서 황제와 하나님의 대립이 일어날 때, 양자택일의 문제에 직면할 때에는 그 기준이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정치와 신앙의 갈등의 경우에는 하나님에 대한 책임이 국가적인 권력보다 더 우선이다.

예수님은 가장 정치적인 시대에 사셨다. 그러나 정치적인 참여를 위해서 정치적인 이슈를 말씀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데모를 주동하지도 선동하지 않으셨다. 그러한 방법들은 불법적인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행한 죄악이었다. 예수님은 현상적인 정치문제 해결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죄의 문제의 해결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이루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메시아 왕국은 인간적인 정치의 권모술수가 필요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신앙 지도자들은 정치적인 이슈를 포함한 모든 일에 대하여 성경적인 견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적인 원리에 벗어나는 정책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성경에 근거한 지적과 말씀의 가감 없는 선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이념과 갈등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발언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문제의 본질을 오해한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주장함은 득보다 실이 될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교회의 정치참여의 두 극단 사이에서 매 순간마다 이슈마다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로 우리의 할 일을 찾아 나감이 필요하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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