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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눈으로 본 세상

짐머맨 케이스 인종차별 논쟁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미국은 지금 짐머맨 케이스 무죄판결로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하루 평균 40명이 살해당하는 미국에서 유독 한 사건이 주목을 받으며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3일 배심원단이 비무장 상태의 17세 흑인 청소년인 트레이본 마틴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히스패닉계 자경단원인 조지 짐머맨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라고 평결했다.

지난해 2월 26일 짐머맨은 플로리다 샌포드 자기 동네를 순찰하던 중 마틴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짐머맨이 마치 경찰인 것처럼 행동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마틴에게 총격을 가했다며 2급살인 혐의로 기소했었다. 이 사건을 지켜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로슬린 브록은 “오늘 정의는 트레이본 마틴이나 그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 우리는 미 법무부가 마틴을 상대로 감행된 인권위반혐의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미국 주요도시에서 배심원단의 평결을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AP, CNN 등 주요 언론매체들은 14일 조지 짐머맨의 무죄판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오클랜드, 뉴욕, 워싱턴DC 등 주요도시에서 확산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인종차별을 불식시키기 위한 투쟁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와서 냉정을 되찾고 자제를 당부했지만 불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복합적인 논쟁의 불을 붙였다. 배심원 제도의 문제성, 인종차별, 인종간 갈등, 또한 총기사용에 의한 과잉 정당방위 등의 문제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타부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인종차별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인종 사이의 갈등을 표면화 시켰다. 미국의 소수민족의 판도는 급격히 바뀌고 있다. 2000년 이후로 흑인의 인구는 거의 변화가 없이 12.6%다. 하지만 히스패닉은 13년만에 16%를 상회하면서 전체비율에서도 3.8% 증가했다. 이제는 히스패닉과 라틴계가 흑인을 숫자적으로 능가한다.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인종간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흑인에 대한 백인히스패닉과의 인종차별의 논란이 된 것이다. 또한 배심원들의 숫자적인 구성원 6명 중에 5명은 백인, 1명은 히스패닉계라는 구성이 인종차별적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흔히 인종차별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시발점이 됐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고대사회부터 시작해서 인종에 대한 편견은 늘 있었다. 역사적 자료를 보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기록은 기원전 2천년쯤에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기록에서 주변 민족들과 이집트인을 비교하는 자료들은 당연히 ‘이집트가 최고’라는 내용이다. 그중에서 자기들을 귀찮게 하거나 전쟁을 치른 민족들은 적대적으로 적혀 있었다. 남부에 살고 있던 누비아 흑인에 대해서는 경멸과 멸시가 가득했다. 인간형태를 지닌 짐승처럼 묘사해서 처음 해독했을 때 원숭이에 대한 묘사인줄 알았을 정도였단다. 기원전 1500년전 이집트에서 투트모세 1세는 남쪽의 누비아를 정복한 뒤에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문서화해 기록한 셈이다.

한국도 인종차별에서는 세계적인 랭킹이다. 두 명의 스웨덴 경제학자들이 경제발전과 인종차별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인종차별 의식을 수치화 할 필요를 느껴 만들어진 것이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다. 연구는 경제발전과 인종차별은 큰 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인도, 요르단, 홍콩이 인종차별 지수가 가장 높았다. 설문 응답자의 40% 이상이 다른 인종과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특히 홍콩은 이 수치가 71.8%에 달했다고 한다. 동일 연구는 한국인에 대해서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이 높고, 평화로우며, 단일민족인 국가임에도 타인종에 대한 관용도가 낮다고 했다. 한국인의 1/3 이상이 다른 인종과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회학자들의 평가를 통해서 이 이유를 한국인들은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들었다. 또한 최근 동남아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한 사회문제, 일본과의 뿌리 깊은 대치관계도 원인으로 판단했다.

성경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인종차별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사실 인종차별자들은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들에게 대한 저주를 인종차별의 근거로 삼고자 한다. 또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내용들을 지적한다. 성경의 선민사상이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차별을 당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의 계보에는 아브라함 때도 모세 때도 흑인은 구원의 역사에 포함됐다. 성경을 인종차별의 근거로 삼는 것은 성경을 잘 모르거나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인종차별은 죄악된 인간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지 결단코 성경이 가르치는 사상은 아니다. 성경은 인종차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이 비성경적인 근거를 살펴보자.

1)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창1:26-27).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다른 사람을 차별할 수 있겠는가? 2)성경은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들었다 하셨다(행17:26). 인종차별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발전된 것이다. 성경대로 모든 인류가 아담과 하와에게서 나왔다고 믿으면 모두가 다 한 뿌리이다. 실제로 인간유전자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에 참가했던 과학자들도 만장일치로 “오직 인류라는 한 인종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선포했다. 현재 인종을 구분 짓는 것은 피부색이나 머리 눈 빛깔 등 대부분 외형적인 것들이다. 이런 외형적인 것들의 인종간 차이는 많아야 0.0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종족에서 임의로 선출한 두 사람간의 유전자 차이가 다른 종족 간에서 선출한 유전자 차이보다 더 많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 현대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더 진화된 인종’이란 개념은 있을 수 없다. 인종차별에 대한 생물학적 논쟁은 진화론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인종차별에 대한 긍정적 견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됐다.

3)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요3:16, 히2:9).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든 족속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파송하셨다(마28:19-20; 눅24:47). 구원의 역사는 인종을 초월한다. 4)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가족이다(말2:10; 엡4:4-6).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은 인종으로 분리하여 서로 차별 할 수 없다. 5)여호와 하나님은 용모와 신장을 보지 않으시고, 피부색깔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삼상16:7). 따라서 인종적 편견이나 우월감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다.

6)황금율은 인종차별을 금지한다(눅6:31; 마7:12).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인종차별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7)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마22:39). 바로 사랑의 대상인 이웃 속에는 우리가 차별하기 원하는 사마리아인도, 피부색이나, 인종이나, 사회적 계층이 다른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8)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10:12). 마찬가지로 인종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9장의 무지개 언약을 땅위의 온 인류에게 행하셨다. 또한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해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약속하셨다. 이사야 11:9-10에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하였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하셨다. 아기예수탄생 후 유대인 선지자 시므온을 통하여 누가복음 2:30-32에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고 선포했다.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모든 족속과 방언과 열방에 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은 열방을 위한 구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백성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출애굽 세대에도, 이스라엘 역사에도, 심지어는 예수님의 족보에도 수많은 이방인들이 들어가 있다. 우리를 선택하심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열방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도구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장벽들을 무너뜨리신다(갈3:26). 인간의 장벽이 너무 강하기에 주께서 무너뜨리지 못할 장벽은 없다. 사실 현재 우리 앞에 드리운 인종차별의 벽은 너무 커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결단코 큰 장벽이 아니다. 하지만 인종장벽의 벽은 반드시 무너져 내려야 한다.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롬2:11; 엡6:9; 벧전1:17; 약2:1). 외모는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외모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종차별이 가득한 어두운 세상에서 화목케 하는 사역을 하라고 명하신다(고후5:18-19).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어두움을 밝히기 위하여 복음의 등불을 들자! ▲이메일:revdavid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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