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한국이 가진 새로운 세계 타이틀 중에 하나는 ‘성형수술의 천국’이다는 이름이다. 한국은 성형수술을 받는 비율이나 수준에서 세계의 정상이다. 작년에 미스코리아가 성형수술했다고 논란이 되었으나 왕관을 지켰다. 2013년 미스코리아에 예선을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 20여명이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눈수술 같은 것은 화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 되었단다. 미스코리아 대회도 자연미 대회가 아니라 ‘조형미 대회’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한국의 성형수술은 세계적인 관광 상품이 되어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한다. 성형과 관계된 새로운 유머들도 등장했다. 천국문에 도착하면 유난히 긴 줄이 있다고 한다. 바로 한국성도들은 천국문에서 특별히 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한단다.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성형수술을 하도 많이 해서 본인인지 아닌지 원본과 대조하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할리우드 문화시대에 살고 있다. 할리우드 영상문화는 외적인 미모를 숭배한다. 아름다움이 선이고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한다. 물론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사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고대 바벨론에서도 애굽의 클레오파트라도 독특한 화장술이 있었다. 성형 열풍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의 기준이 시대마다 달라져왔다는 사실이다. 미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중세의 미인상과 현대의 미인상은 다르다. 현대의 미인상은 바비인형과 같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유명한 미인은 중국 4대 미녀 중에 하나인 양귀비이다. 양귀비도 마른 체격이 아닌 풍만한 체격이었단다. 전통적 한국의 여성미는 서양적인 기준이 들어오면서 서구적인 여성미로 바뀌었다.
물론 성도라고해서 성형의 유혹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일반인 중에 성형을 생각해본 사람이 약 78%라고 한다. 그 중에서 남성은 3명중 2명이, 여성은 10명중 9명이 성형을 생각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수술 받는 나이도 더 높아졌다. 왜 성형을 할까? 성형을 하는 이유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라는 의견이 가장 많다. 그리고 ‘성공을 하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심지어 요즘 성형외과에는 손금성형도 한다고 한다. 생명을 연장하고, 부유한 생활을 위해서라면 손금까지 성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손금이 바뀐다고 운명이 바뀐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말인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젖어있는 현대사회에서 이제 성형은 생활의 하나가 되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외모를 고치는 수술은 두 종류로 나눈다. 미국성형외과협회에 따르면 기형과 기능을 재건하는 Reconstructive 수술과 외모나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성형 Cosmetic or Plastic 수술로 나눈다. 성형수술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관은 무엇인가? 중요한 문제는 미에 대한 생각이다. 영상시대에서는 아름다움도 상품화가 되는 시대이다. 미의 상품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형은 자신의 가치가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제는 아름다움이 물질과 연관되면서 물질주의적 개념을 가진다. 그래서 성형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사치가 아닌 필요와 전략과 투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요즈음은 성형수술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성형의 보편화 시대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외모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이다. 과거에는 유교적 전통 밑에서 부모가 주신 몸에 손대지 않는다 생각했다. 또한 외모지상주의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욱 외모를 중시하고, 예쁨과 잘생김을 높이 평가한다. 동등한 자격과 능력이 있음에도 외모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고, 취직이 결정되고,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에 성형을 받는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보험의 혜택도 받지 않는 많은 돈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수술을 통해서 외모의 가치를 높여 좀더 높은 연봉을 받고, 좀더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수술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적인 원리들을 현재에 일어나는 ‘성형 열풍’에 적용시켜 볼 필요가 있다.
신체의 부분을 바꾼다고 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수술은 항상 신체적인 심리적인 부작용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수술 전에 먼저 위험이 무엇이고 부작용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수술을 받고자 하는지 자신의 동기를 점검해 보아야한다.
우리는 외모에 대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묵상해야 한다. 사실 성경은 인간의 외모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고대 성경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성경은 요셉의 준수하고 아담함, 모세의 준수함, 사울의 준수함과 키, 다윗의 준수함, 압살롬의 외모 등을 묘사하고 있다. 리더의 덕목 중의 하나가 신체적인 조건이었다. 여성에 대해서도 사라의 아름다움, 리브가의 아름다움, 라헬의 아름다움, 에스더의 용모가 곱고 아리따움 등 외모에 대한 표현들도 나온다. 심지어는 사무엘마저도 이새의 가정에서 왕을 세울 때에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는 중심을 본다”고 하셨다.
외모에 대한 기독교의 가치관은 외적인 형상보다는 내적인 형상에 중심을 둔다. 성경은 외모보다는 마음의 아름다움에 무게를 둔다. 물론 성경은 성형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가 성형수술을 할 만큼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였다. 성형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세속적인 인식의 배후에는 사회를 혼란케 하고 영혼을 멍들게 하는 맘몬신, 탐심, 우상숭배, 사단이 존재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외면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형수술을 반대하는 입장은 ‘거짓’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자족의 문제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거짓의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외모에 대한 자족은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영역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족은 나의 외모로부터 시작한다. 자족의 영역이 무너질 때에 감사 대신 불평과 불만이 사로잡는다. 만약에 성형의 목적이 외모로 아름다워 보이고 싶고, 사람들의 시선을 나에게 집중시키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서라면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고, 우상숭배적이고, 자기 근심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자만심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
신앙의 성숙은 시선을 나에게서 떼어서 영광과 위엄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주시는 최고의 은혜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사야 52:14은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했다. 53장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시다고 했다.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30대의 예수님보고 50도 안되었다고 했다(요8). 예수님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셨을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세상이 추구하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고, 궁궐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나셨고, 왕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시고, 이 땅에 왕국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죄용서를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영원한 천국을 주셨다.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외과의사는 하나님이시다. 아담에게서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신 것이 인류 역사의 최초의 수술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수술을 약속하신다. 그 수술은 외모의 수술이 아니라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고,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영적인 수술이다(겔36:25-26). 성형수술을 받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을 정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꼭 기억할 것은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이 주시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갖는 것이다. 주님이 보시는 아름다움은 온유와 겸손이고(마11:29), 성령의 9가지 열매이고(갈5:22-23), 믿음이고, 주님을 위한 헌신이다. 이번 기회에 성령님의 수술에 몸을 맡기는 영적 성형수술을 받으면 좋겠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