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지난 주간에는 제28회 세계한인목회자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생명의 말씀을 자녀들에게”라는 주제로 모였다. 세미나 시간마다 귀한 말씀을 통해서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진단을 하고, 성경적인 원리들을 살피고, 처방들을 제안했다. 우리의 디아스포라의 현장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의 씨를 뿌리고 다음 세대 신앙교육을 위한 헌신을 다짐하고 헤어졌다.
계속된 성지순례도 감동의 연속이었다. 예수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는 ‘디아 돌로로사’ 여정이 가장 감격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이사랴 원형극장의 예배를 통해서 큰 은혜를 주셨다. 주님이 거니셨던 갈릴리에서의 순례를 통해서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잊을 수 없었던 것이 야드바셈 박물관이다. 유대인이 자기들이 당한 고난을 기념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 세운 것이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이다. ‘야드바셈’이라는 말은 이사야 56장 5절에서 나온 말로 ‘기념물과 이름’ 이라는 뜻이다. 박물관 안에서 유일하게 촬영이 허락된 Hall of Names 일명 ‘기억의 방’에는 홀로코스트로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들로 가득차 있다. 유대인 학살로 죽은 150만명의 어린아이들을 상징하는 150만개의 촛불을 켜놓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게이트웨이기념관에서는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특별히 박물관과 연결된 독일을 생각하면서, 같은 전범국가인 일본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하게 되었다.
물론 유대인 학살은 나치 독일만의 죄는 아니었다. 독일이 유대인을 박해하기 이전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메시아닉교회의 Samuel Smadja 장로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4가지 장애 중에서 첫 번째 이유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가장 많은 핍박을 받은 역사적 사실 때문”이라 했다. 우리가 그렇게도 예수를 믿게 하고 싶은 그 유대인들의 가장 큰 거침돌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라는 역사 속의 역설이다. 유럽인들이 유대인 박해를 정당화시켰던 이유 중에 하나가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유대인 속에 우리 자신도 포함이 된다. 모든 인류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모든 죄인이,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다.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야드바셈 박물관에서 충격적인 것은 잔악한 범죄 앞에 침묵했던 당시 세계와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독일교회도 나치의 독재와 만행에 반대의 목소리를 외치던 교회와 히틀러를 묵인하고 침묵한 교회로 나누어졌다. 로마캐톨릭이 침묵하고 나치와 파시즘의 잔악한 행동을 묵인했다. 모종의 타협설이 끈질기게 나돈다. 미국과 영국도 미국에 살던 유대인들이 강력하게 요청했음에도 수용소 폭격을 하지 않았다. 특히 나치시대에 지식인들이 나치독재정권을 위해 충성을 하며, 자기들의 지식을 독재정권을 위해 사용하는, 참으로 기가 막힌 사악한 역사적 현장을 증언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독일인들의 죄상은 결국은 독일인의 악함이 아니라 인간의 악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회학자들의 임상실험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든지 적당한 명분을 주고, 그 악한 행동의 책임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고 설득시키면 90% 이상의 사람들이 악한 일들을 행한다는 결과이다. 결국 세계는 독일인들의 만행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옛날에 홀라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기억에 남았던 글귀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이었다. 놀라운 것은 여기에 전시되는 많은 자료들이 독일인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스라엘 정부의 요구도 있었지만 독일은 전쟁후 자기의 잘못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뉘우치는 태도를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는 물론이지만 독일 정부가 앞장서서 나치전범을 찾아서 법정에 세운다. 독일정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나치 통치하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를 했다.
흥미있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독일과 같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일본을 대하는 태도이다. 2005년도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개관식에 40여개국 지도자들을 초청했으나 일본인은 단 한명도 초청하지 않았다. 일본이 초청받지 못한 배경에 대해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로노트’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려 일본이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실 독일에 못지않은 전범국가가 일본이다. 한국과 중국과 아시아 전역에서 행한 일본의 만행은 엄청나다. 그런데 그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일본도 분명히 보도자료로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그 자료들을 역사 속에서 파묻고 은폐했다.
일본도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마루따 인체실험을 했었다. 일본은 아시아 가는 곳마다 성노예인 위안부를 강제 징발하고 여성들을 성학대하고 죽였다. 필리핀에도, 중국에도, 대만에도, 한국에도 여성들이 당한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역사적인 가해자이고 전범국가인 일본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부각함으로써 마치 자신들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양 국제사회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하는 그 얼마나 간교한 행태인가?
반면에 독일은 수상이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 여러 차례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1970년 12월 초겨울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근교에 있는 악명 높은 유태인 학살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위령비 앞에선 당시 서독 수상이었던 브란트가 돌연 빗물 젖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지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어찌 하오리까. 용서, 용서, 용서 하소서”라고 울먹이며 기도했다.
그리고 독일 정부는 유태인 학살은 반인류적 범죄로 단정했다. 그 관련자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없애고 끝까지 추적, 체포, 재판에 회부해왔다. 지금도 홀로코스트를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벌금형을 구형한다.
지난 2002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50여년 만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이, 2005년에는 퀼러 대통령이, 2006년에는 메르켈 총리가 야드바셈에서 사과하며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09년 2월 독일의 퀼러 대통령이 이스라엘 의회를 방문하여 연설하게 되었다.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연설대에 선다. 그는 명확한 히브리어로 첫 문장을 말한 후에 독일어로 연설을 했다.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과거사 사죄이었다. 연설하면서 그의 눈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쏟아졌다. 참석한 모든 국회의원들은 물론 모든 국민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다음날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은 그의 ‘굵은 눈물’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행사장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모든 귀빈들을 위해서 독일제 벤츠를 사용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은 독일제품 반대 운동을 벌여왔었다.
독일은 또한 이스라엘을 위한 경제적인 보상에도 아끼지 않았다. 여러 차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이스라엘과 전쟁 당사자들에게 배상을 했다.
일본은 배상은커녕 역사적인 잘못에 대한 인정도 거부하고 있다. 한일합방이 한국을 위한 것이라든지,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자원한 것이라든지, 독도가 자기 땅이라든지, 심지어는 지금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2차 세계대전의 전쟁 범죄자들의 묘지에 참배하면서 전쟁을 정당화한다.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한 일본의 수준은 어느 경제학자의 이야기처럼 선진국으로서의 진정한 자질을 갖지 못했다. 이렇게 일본이 역사왜곡을 계속한다면 다음세대가 어떻게 될 것인가? 진실로 염려가 된다.
이런 수준의 차이가 어디서 날까? 그래도 독일의 수준이 일본의 수준과 다른 것은 기독교적 가치관 때문이다. 그런 만행을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는 분명한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준다. 독일의 기독교가 세속화가 되었다고 해도 그래도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남아 있기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일 것이다. 독일의 수준과 일본의 수준을 비교하면서 진정한 선진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