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김혜천 목사
말세는 고통 하는 시대이다. 지금 전 세계는 세계적인 가난의 문제로 고통 받는다. 물론 가난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풍요의 시대에 빈곤문제들이 심화되면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을 고통하게 만든다. 미국과 한국을 위시한 몇 선진국 사람들은 과도하게 음식섭취 때문에 국민비만시대를 맞고 있다. 넘치는 영양식으로 비만해져버린 어린아이들이 성인병들로 고통당하고 있다. 또한 음식이 넘쳐서 버리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머지 세계는 극한 가난의 세계이다.
Anup Shah가 2010년에 “Poverty Facts and Stats”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실 풍요로움에 익숙한 우리는 가난이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전 세계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30억 명 이상이 하루 2불50센트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전 인류의 80%가 하루 10불미만으로 생활한다. 전 인류의 수입의 격차는 날마다 더 심해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 40%의 수입을 합해도 전체 수입의 5% 밖에 안된다. 상위권에 속한 20%가 전 세계 수입의 ¾을 차지한다.
Lisa Kroll은 2007년도 포브스 잡지 3월호에 “The World Richest People”라는 글을 실었다. 빚을 지고 있는 41개국의 가난한 나라 6억에 가까운 사람들의 GDP(Gross Domestic Product) 합계가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7명을 합한 것보다 더 작다고 보도했다. 나라별로 보아도 그 불균형은 현저하다. 세계 인구를 70억으로 볼 때 1/70인 1억에 속하는 선진국이 차지하는 2006년도 GDP는 세계 GDP의 76%이었다. 세계의 억만장자들 497명은 전 세계의 인구의 0.000008%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차지하는 부는 WGDP의 7%이다. 엄청난 부의 편중이다.
가난은 사람들의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고통을 일으킨다. 가난은 배고픔과 죽음의 원인이다. 국제연합 아동기구 UNICEF에 의하면 가난 때문에 2만2천명이 매일 죽어간다. “그들은 세계의 양심과는 멀리 떨어진 지구 위에 가장 가난한 마을들에서 조용하게 죽어간다”라고 보고했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속한 28%의 아이들이 체중미달이다. 이들은 아시아 남부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아래에 살고 있다.
가난은 계층 간의 차이를 심화한다. 가난은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을 막는다. 2005년도 통계에 의하면 초등학교에 가야할 7천2백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그중에 57%는 여자들이다. 21세기를 시작할 때 UNICEF보고는 10억 명의 사람들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자기 이름도 사인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 문제는 전 세계 군사비용의 1%만 투자를 해도 모든 아이들이 다 학교에 다닐 수 있는데도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가난은 전염병과 각종 질병을 유발시킨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 2007년도 UN보고에 의하면 지금 4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AIDS를 가진 채 살고 있고, 2004년도만 해도 3백만 명이 AIDS로 죽었다. 매해 3억5천 이상 거의 5억의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렸고, 1백만명 이상이 죽는다고 한다. 전 세계에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들의 90%가 아프리카 사람들이고 죽은 사람들의 80%가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이다. 가난의 땅은 죽음의 땅으로 바뀌어간다.
가난은 물의 부족으로 고통 받게 한다. 2006년도 UN Human Development Report에 의하면 전 세계 사람들의 절반이상이 가난과 물로 인하여 고통 받는다. 11억 명이 물 공급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26억 명이 기본적인 하수도 시설도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산다. 10억이 넘는 사람들이 하수시설이 없는 곳에서 산다. 우리는 수도관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세계 인구 중에 잘사는 사람들 상위 20%권에 사는 사람들의 85%가 수도관으로 공급된 물을 마신다. 하지만 가난한 하위권은 오직 25%만이 수돗물을 마신다.
UNICEF가 2005년에 발표한 “State of the World’s Children” 보고서는 물의 부족은 인생을 더 고달프게 함을 보여준다. 전 세계의 18억의 사람들이 물을 1km 안에서 얻는다. 그리고 하루 평균 20리터의 물을 사용한다. 영국은 한 개인이 매일 150리터의 물을 쓰고 그중에 50리터의 물은 화장실물로 사용한다. 미국은 물 소비량이 세계 1위로 매일 600리터의 물을 사용한다. 옛날 로마시대의 부요의 상징 풍성한 물이 오늘도 변함없는 것 같다.
가난으로 인한 직접적이고 가장 강력한 치명상은 아이들의 몫이다. 2005년도 유엔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의 아동은 22억만 명이다. 그중에 가난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아이 2명중에 한명 꼴인 10억만 명이나 된다. 보호시설이나 안전한 물, 건강을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3명중에 1명은 거할만한 적당한 집이 없고 5명중에 1명은 마실 물이 없고 7명 중에 1명은 의료시실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학교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1억2천만명이상이나 된다. 2003년도 통계에 의하면 5살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들이 1억 명이 훨씬 넘는다. 매해 1천4백만 명의 아이들이 물이나 위생시설의 부족으로 인하여 죽는다.
가난은 죽음의 그림자와 가깝게 한다. 매해 2천2백만 명이 면역주사를 맞지 못해서 죽는다. 독일이나 영국의 어린아이의 숫자와 맞먹는 1천5백만 명의 아이들이 AIDS로 인하여 고아가 된다. 2007년에 UN에서 보고한 HDR(Human Development Report)에 의하면 하루에 1불미만으로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 4명중의 3명은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도시라고 나은 것은 없다. 도시의 빈민촌이 점차 커지기 때문이다. 2007년 Millenium Development Goal Report에 의하면 지금 세계인구의 절반가량이 도시에 산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1/3인 10억 이상이 빈민촌과 같은 조건에서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계의 소비상황은 어떻게 되는가? 2008년도의 World Bank Key Development Data and Statics는 엄청난 사실을 공개한다. 세계의 소비의 경향을 조사해보니 세계에서 잘사는 사람들 20%가 전체 소비의 76.6%를 소비한다. 중산층 60%가 소비하는 것은 21.9%이고, 충격적인 것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 20%가 소비하는 것은 불과 1.5%에 불과하다. 엄청난 불균형이다. 상위권 부유층 10%가 소비하는 것은 59%이고, 가난한 10%가 소비하는 것은 불과 0.5%에 불과하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하신 그 말씀이 현세대에 생생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고통의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결핍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영적 가난의 문제는 너무도 너무도 심각하다.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심령이 가난하여 천국을 소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세대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심령은 강퍅해지고 영적으로 교만하고 굳어져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영적 기근의 세대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약2:5) 하셨다. 주님이 오신 것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려 오셨다(사61:1).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다(고후8:9). 물론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서 오셨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물질적으로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했던 가난한 나라였을 때 복음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세계 10대 강국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영적으로 세계에 선교사를 2번째로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 가난의 현장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심령이 가난해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전 세계적 가난의 편만함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한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셔서 가난한 민족이었던 우리에게 영육의 축복을 주신 것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살리시는 역사가 세계적 가난의 현장들에 하수처럼 흐르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