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크리스천의 눈으로 본 세상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새해가 되면서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이다. 한국에서는 학원 폭력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다고 한다. 학원 폭력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 위기이다. 학생들이 폭력에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학교 안에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는 자기 집에 끌려가서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단다. 우리의 아이들 사이에 각양의 집단 폭행이 자행되어지고 있다. 이것이 과연 한국인가 할 정도로 충격의 연속이다. 한국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폭행을 당한 아이들이 죽어가고, 폭행을 하는 아이들도 죽어간다.

CBS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이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한 결과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에만 초중고교생 10명 중 2명이 학교 내에서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숫자는 전국 학생들이 720여만 명임을 고려하면 140여만 명이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셈이다. 엄청난 숫자이다. 그런데 전국 학교의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가 심의한 학교폭력 피해학생 수는 13,700여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학교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폭력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다. 빙산의 일각이 이렇게 심각하다면 실제 상황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학교폭력이 점차 저연령 대의 아이들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학교 전반의 주요 정보를 공개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지난 2006년 2,152명이던 고등학생 가해학생은 지난 2010년 5,113명으로 2배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중학교 가해학생은 3,937명에서 14,179명으로 5배나 증가했다. 2006년 104명이던 초등학교 가해학생도 5년 만에 657명으로 껑충 뛰었다. 이것은 각종의 자료들을 통해서 이미 확인된 추세이다.

폭력의 수준도 점점 더 심해진다. 빵을 나르는 ‘빵셔틀’, ‘와이파이 셔틀’이란 신종 명사들이 생길 정도이다. 집단 폭행, 돈 뺏기, 위협이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한다. 초등학교까지 퍼진 학교폭력은 그 양상이 점점 잔인해지고 흉악해지면서 조폭 범죄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성추행은 물론 성폭행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 여중생은 발가벗은 채 집단 폭행을 당했다. 가해학생들은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잔혹함마저 보였다. 피해학생의 친구들이 보복성 집단폭행에 나서면서 ‘집단 대 집단’의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물론 학원 폭력은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학원 폭력의 문제가 심각하다. 어느 학군이 좋은 지역에서는 우리의 2세 자녀들과 갓 이민이나 유학 온 자녀들 사이에 갈등이 심각하다고 한다. 좋은 학군이기에 한국 학생들이 몰리는데 학교에서 한인자녀들 사이에 선배 후배의 관계에 폭력과 위협이 아이들에게 심각한 두려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판 학원 폭력이 미국에 사는 우리의 자녀들 사이에 재현되고 있단다. 미국의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미국의 학원 폭력도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학교에 금속 탐지기가 설치되고, 경찰들과 형사들이 출입하는 수준이 되었다. 바로 얼마 전에 뉴욕의 스태튼아일랜드에서 왕따를 당하던 한 여학생이 달리는 버스 앞에 투신자살함으로 또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 학원 폭력을 당한 한 소년이 가해자 학생을 죽인 사건에 대한 판결이 정당방위로 나오는 바람에 또 다른 논쟁이 휘몰아치고 있다. 미국의 아이들도 죽어가고 있다.

학원 폭력은 잊어버릴 만하면 다시 돌출되는 단골 메뉴 중에 하나이다. 이제 한국의 학원 폭력은 너무도 심각해서 총리가 언급하고, 대통령도 자책감이 든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대구의 가해자 학생들은 실형을 구형받을 정도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떻게 해서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학원 폭력에 대한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문제는 관계자들이 모여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무엇이 ‘근본적인 대책’일까? 정부나 교육 기관의 대책은 지금까지 대책들을 재탕 삼탕하는 실효 없는 대책 밖에 없다는 지적도 높다.

한국도 미국처럼 학원 폭력에 경찰이 직접 개입을 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엄벌주의가 고개를 든다.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고 학원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 더 큰 문제 발생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엄벌주의도 실행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관계 당국과 정부의 대책을 내 놓아도 처벌에 대한 집행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가해자는 학교를 옮기면 그만이고, 피해당한 학생은 가해자가 상처를 주고 떠나버린 그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한국교육평화위원장인 이재영 씨는 조정 mediation, 즉 피해자가해자 화해 모임을 통해서 ‘회복적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사법시스템은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다. 어떤 잘못에 대해 그만큼의 처벌을 받으면서 상쇄해라 이게 응보적 접근이다. 그런데 조정은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 개인으로서도 다시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게 도와주려는 의도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가해자는 장난으로 했다고 하지만 피해자는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게 된다. 심심해서 장난삼아 한 행동에 대한 책임과 영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학원 폭력으로 인한 어린 학생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가 논평을 내고 인성교육 강화를 촉구했다. 한국의 학원 폭력의 급증의 원인들로는 첫째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인성교육 경시와 학업 성적 지상주의, 둘째는 학원 폭력에 대한 처리의 미흡, 셋째로 학원 폭력의 조직화에 대한 방치, 넷째로 교육 현장의 붕괴에 대한 조장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러한 학원 폭력의 사건은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가해 아이들도 죽어가는 것이고, 피해 아이들도 죽어가는 것이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문제투성이인 우리 아이들을 책망하기 전에 부모들이 그 책임을 통감하고 회개해야 한다. 아이들의 인간됨의 상실은 불신앙과 세속주의에 사로잡힌 부모들이 뿌린 씨앗을 자녀들이 거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학교교육에서 신앙교육이 제외되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명목으로 학교에서 하나님을 버렸다. 기도도 버리고, 성경의 가치관도 무시하고, 도덕과 윤리는 고리타분한 가치관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육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 물질지상주의인 맘몬이즘과 실용교육의 일방적인 강조로 ‘가치’를 가르치지 않고 기술만 강조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제외한 교육은 망가진 인생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주일학교 운동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이 시대의 학생들은 다음 세대의 주역이며, 국가의 미래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지도 않으면서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시킬 수 없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바른 인격체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교회의 주일학교가 무너지고 있음은 이미 지적된 바이다. 과거의 한국의 지도자들은 교회에서 길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흐름이 깨어졌다. 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이고, 특히 주일학교는 기하급수적인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신앙을 가진 부모들조차도 신앙보다는 학교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부모의 불신앙의 열매를 우리의 자녀들이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셋째로, 교회가 앞장서서 바른 신앙교육과 인격교육을 시켜야 하고, 각 지역의 교회들이 앞장서서 학원 폭력을 근절시키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교회의 성장보다 더 필요한 것은 자녀들의 신앙의 성장이다.

학원 폭력은 우리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의 빙산의 일각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들어난 학원 폭력 문제를 보면서 우리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성령님께서 죽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살려주시는 생명의 복음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기를 갈망한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