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주님이 탄생하심을 축하하는 성탄의 계절이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집과 거리를 메우고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마음껏 축하하는 감사의 계절이다. 모든 절기 중에 절기요, 모든 절기의 시작이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요, 하나님이시면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구더기보다 못한 인생인 죄인인 나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헌신의 증거이다.
첫번째 성탄절과 오늘의 성탄절의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기에 성탄절을 지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성탄절에 예수님을 빼놓고 상업적인 축제로 생각하는 경향의 문제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성탄절의 날짜와 기원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성탄절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버려야할 성탄절에 대한 자세이다.
성탄절은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는 절기이다. 성탄절 모든 것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듬뿍 담겨있다. 먼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을 보자. 오늘로 계산해보면 약 100마일 정도이다. 오늘의 교통수단으로는 매우 가까운 거리이지만 2천년전에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먼저 걸어야만 했다. 또한 가파른 골짜기와 산이 어려움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해산할 날이 임박한 임산부와의 동행이다. 의사가 동행하지도 않는 이 여행은 의사가 결단코 권하지 않을 매우 위험한 여행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유다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올라가는 길이다. 황제 아구스도(Augustus)가 호적하라 명했기 때문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황제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 탄생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움직이신 사건이다! 이 여정이 6일 정도 걸렸을 것이라고 계산한다(눅2:1-5). 다른 지방에 온 여행자들인 요셉과 마리아는 묵을 방을 찾지 못하고 동물들과 함께 구유에 머무르게 된다. 긴 여정의 피곤함 속에서 병원도 아닌, 의사도 없는 가운데 냄새나는 구유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다! 그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신 만왕의 왕의 여정이신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온 세계의 팡파레와 불꽃놀이가 없었다. 그 어느 날과 같은 매우 조용한 밤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탄생을 알리는 전화도,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CNN 긴급뉴스도, 세계 최대의 사건현장을 보도하기 위한 신문이나 방송기자들도 없었다. 마리아가 처녀로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탄생때문에 다른 친족들에게 많이 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마1:19). 외로운 탄생이셨다.
땅에서는 아기 예수님을 환영하는 축제가 없었지만 하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천사 가브리엘이 바쁘게 움직였다. 세례요한(눅1:19)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선포(눅1:26)를 했다. 이 가브리엘은 다니엘의 70이레(70weeks) 예언에서 나온다(단9:20-27). 그리고 그 예언은 그리고 수많은 구약의 예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 가운데 정확하게 성취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군천사들의 찬양이 하늘을 뒤덮었다. 오직 들에서 양을 치던 소외되고 가난한 힘없는 목자들만 체험한 감격의 사건이었다.
예수님께 대한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한 통계학자가 계산을 해보았다. 모든 예언은 그만두고 오직 다섯 개의 예언이 한 사람에 성취될 수 있는 확률은 텍사스의 전역에 25센트 동전을 1m의 높이로 깔고, 그 중에 하나의 동전을 취하여 표시를 한다. 그리고 텍사스 전역에 1m의 높이로 깔린 동전들을 다 뒤집어서 놓은 후에 원래의 동전을 찾아내는 확률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수님을 향해 300여 가지가 넘은 예언된 수많은 예언들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확률은 1/1099보다도 낮다.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이 확률은 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중에서 전자 electron 하나를 골라내는 확률보다 더 낮은 것이라고 한다. 절대로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것은 신적인 개입이 없이는 절대로 성취가 불가능한 역사적인 사건이요 예언의 성취이다!
그렇다면 논란이 되는 성탄절의 정확한 날자는 언제일까? 성탄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서방교회는 12월에 동방교회는 1월에 성탄절을 지켰다고 정확하지 않은 날짜라고 성탄절을 거부한다. 성탄절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것도 사실이다. 사실 첫번째 성탄절은 봄이나 여름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계절적으로 볼 때에 목자들이 들에서 양을 치는 때는 12월이 아니다. 늦어도 10월 이후에는 양들은 들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지금의 성탄절의 기원은 다양한 추측을 하게 한다. 먼저 고대 이방의 풍습 중에서 Saturnalia는 12월 19일에 시작한다. 이 절기에는 축제를 하고 선물을 주고 음악을 연주하고 촛불을 켜고 푸른 나무를 장식하고 야단법석의 축제를 한다. 기독교가 확장되면서 이런 축제들에 기독교적인 요소를 가미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태양신의 축제와 관계 짓는 사람들도 있다.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의 출생일이다. 미트라의 출생일을 12월 25일로 지켰다고 한다. 로마의 군인들은 미트라를 태양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믿었다. 군인황제인 루키우스 아우렐리아누스는 주후 274년에 태양신 미트라의 축제를 선포했다. 그리고 콘스탄틴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뒤인 주후 366년 태양신의 축일을 예수 탄생일로 확정했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12월 25일이 태양의 탄생(Natalis Invicti)을 기념하는 겨울축제일이었다. 태양이 이날을 기점으로 다시 커지는 것을 축하하여 대규모 파티를 열었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4세기경부터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키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태양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해주는 아주 훌륭한 상징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시고(요1장), 세상의 빛(눅2:32), 공의의 태양(말4:2)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태양 축제일은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현재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가 주후 221년 그의 연대기에서 처음으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기록했다. 이 주장은 다른 날짜들에 비해 그리 우세한 입장은 아니었으나 최초의 종교회의인 325년 니케아회의 이후 점차적으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중요한 예수님의 생일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을까? 초대교회는 생일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예수님이 빨리 재림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초대교부 이레니우스나 터툴리안은 교회의 주요 절기들을 소개하며 성탄절을 언급하지 않았다. 3세기 교부 오리겐은 “바로(창40:20)나 헤롯(막6:21)과 같은 죄인들만 생일을 지키지, 훌륭한 신자들은 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에 성도들의 순교일에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일은 교회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성탄일이 역사기록에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할 이유로 그 날짜가 원래 이방축제에 해당하는 날이라는 것이라고 성탄절을 부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탄절이 실제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라는 가능성이 있어도 계속 성탄절을 지켜야 할까? 설사 오늘의 성탄절의 날짜가 첫번째 성탄절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성탄절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절기이다. 우리가 성탄절을 지킬 때 중요한 것은 날짜가 아니라 성탄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이지 ‘날짜’ 그 자체가 아니다. 성탄절의 의미와 축복은 우리가 매일 매일 기념해야 마땅하다.
누가 뭐라 해도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절기이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성육신의 감동이요,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 예수가 오신 감격이요, 또한 더럽고 연약한 인생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게 한 축복이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때에는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로 임하신다.
이 초림하신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기념하며 다시 오실 재림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탄절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은혜와 감동을 주신 두고두고 기억할 복된 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