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김혜천 목사
지난 4월에 세톤홀 대학교수이고 신학교 강의도 하는 노팅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는 대이빗 오퍼덱(David Operdeck)의 글이 크리스처니티투데이에 실리면서 아담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이 붙었다. 많은 자유주의신학자들이나 진화론자들은 아담의 역사성을 인정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경의 무오를 믿는 사람들은 아담의 역사성이야말로 신앙의 중요한 기초로 생각한다.
이 논쟁은 아직은 한국교회에는 조용하지만 미국의 신학자들과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미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Operdeck 교수는 복음주의자로서 알려졌는데 그의 이러한 논조는 역사적 아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충격이 되었다. 물론 그는 역사적 아담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 아담을 받아들이면서 진화론과 조화시키려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 그는 성경적 아담과 하와에서 온 인류가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아담은 역사적 존재로 그들과 함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다른 형제들, 자매들, 사촌들 등등 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크리스처니티투데이의 뉴스편집장으로 있는 Richard N. Ostling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역사적 부모가 되는 아담과 이브를 직접 창조하셨다”이었다. 그런데 프랜시스 콜린스가 2006년에 쓴 베스트셀러 “하나님의언어”라는 책에서 최신의 과학적 발견을 인용한다. 그는 유전자의 다양성으로 볼 때 “현재의 인류들은 약 10만년 전에 적어도 1만명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왔다”라는 주장이다. 최근에 나온 친진화론적인 책인 “The Language of Science and Faith” 역시 콜린스와 기버슨은 “불행하게도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부모이라는 것은 (유전학적인) 증거에 맞지 않는다”라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진화론과의 타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갈릴레오 사건으로 역사적인 큰 손상을 입은 천주교는 이미 우주창조와 생물의 진화에 신적 섭리가 개입했다는 것을 전제로 진화론(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천주교도 처음에는 진화론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교황 비오12세는 ‘인간탄생’이라는 교서에서 진화론은 “몰염치하고 분별력이 없으며 자연과학계에서도 증명이 되지 않은데다 공산주의자들이 즐겁게 이를 수용하는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1996년 요한 바오로2세는 ‘계시와 진화’라는 메시지를 통해 “종교교육과 진화론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고 진화론은 가설 이상의 중요한 학설”이며 “이미 있던 존재(유인원)에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이 탄생했으며, 진화론은 지동설처럼 언젠가는 정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교회의 잘못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교황의 무오설을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또한 가톨릭뉴스는 2009년 3월 21일 인터넷판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라고 보도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종교 혹은 다른 사람들은 다 조용하고 과학의 손을 들어주는데 왜 몇몇의 보수주의자들만 떠드는 것인가? 왜 아담의 역사성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질문을 할 것이다.
문제는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창세기는 신화나 상징이나 비유의 이야기에 그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된 것도, 인간의 존엄도 무너진다. 우리들이 믿는 창세기의 세계와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가르침들이 무너진다. 또한 구체적으로 원죄, 타락,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족보, 아니 보다 더 심각하게 바울이 증거하는 구속의 역사가 무너진다(롬5:12-19; 고전15:20-23, 42-49; 행17). 첫째 아담의 타락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하심도 없어지게 된다. 아담의 역사성은 너무도 중요하다. 아담의 역사성이 중요함에 대하여 뉴욕의 리디머장로교회의 Tim Kelly 목사는 만약에 아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바울의 증거 즉 죄와 은혜의 교리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바울이 증거하기 원했던 내용은 아담과 이브가 역사적 인물이라는데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조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설명하는가? 첫째로 Young earth 창조론이 있다. 미국인의 40%가 지지한다. 둘째로 Old earth 창조론이다. 진화의 과정을 수용하는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셋째로, 지적 디자인이다. 자연 배후에 역사하는 지적인 존재를 디자인하는 힘을 주장한다. 넷째로, 유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이다. 이들은 성경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심을 믿지만 진화론적 방법을 통해서 하셨다는 생각이다. 이미 살핀 바와 같이 가톨릭이 주장한다. 2009년도의 한 인터넷 조사에 의하면 복음주의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의 46%가 인정한다. Giberson의 주장에 의하면 기독교대학의 생물학과교수들의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05년도 조사는 오직 27%가 스스로를 진화론적 창조론자로 표현했다. 이러한 운동의 핵심이 되는 ASA의 1600여명의 멤버들을 조사하니까 66%가 인류는 원숭이와 조상을 같이하고, 90%가 지구는 46억년 이상 되었다고 응답했다. 그들의 연구결과가 예측이 된다.
Venema는 사람의 유전자 맵을 만든 다음에 다른 동물들과 비교를 하니 2005년도에 만든 침팬지의 유전자지도와 95-99%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람과 다른 동물들이 조상을 공유한다고 주장을 했다. 하지만 생화학자이면서 Reason to Believe Ministry의 부회장인 Fazale Rena는 95-99%의 차이에 대하여 인터넷 논쟁을 통해서 “일반상식은 이러한 유전자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 이유는 이러한 비교가 근본적인 생물학적인 그리고 행동학적인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했다. Rena는 또한 이러한 유전자적 유사성 때문에 조상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을 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Venema가 주장하는 “population genomics”이다. 지난 10년 동안 현대인의 유전자를 통해서 당시의 인구를 계산하는 연구를 했다. 한 독립적인 연구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는 15만년 이상이 걸리고 인구도 한 쌍의 부부보다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따라서 한 쌍의 부부가 수백만 년의 세월이 없이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했다. 하지만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의 구약학 교수인 C. John Collins는 Did Adam and Eve Really Exist?라는 글에서 2006년의 캐나다와 프랑스와 일본의 연구를 예로 들면서 유전자 다양성을 통해서 인구의 사이즈를 조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만약에 아담이 존재하지 않으면 바울의 논리는 무너진다. 만약에 아담의 역사성을 믿지 않으면 바울의 가르침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문제의 기원을 정확성을 부인하면 그 해답 역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역사적 아담논쟁은 말하기 좋아하는 신학자들의 논쟁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심각한 신학적 신앙적인 파급효과를 가지고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은 극도로 중요하다. 이런 과학적인 이슈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싸움은 원숭이 논쟁 이후에도 계속되어왔다. 원숭이 논쟁 자체도 과학을 전혀 모르는 창조를 믿는 말 잘하는 웅변가와 과학적인 발견의 자료를 익히 아는 과학자 간의 논쟁이어서 그 파급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났었다. 교회는 무식하고 고집스럽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겼다. 그렇다고 무반응이 상책도 아니다.
필자는 진정한 성경과 진정한 과학은 일치한다고 믿는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성경해석이나 진정한 과학이 아닌 과학의 가설은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작업을 계속되어야 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가설을 법칙인 것처럼 무뢰한 주장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또한 과학적인 한 현상의 발견을 마치 변치 않는 진리인양 그것에 성경의 해석을 맞추려고 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우리의 고민은 과학의 분야에서는 워낙 진화론적 신앙이 팽배하기 때문에 성경을 믿고 깊이 아는 진정한 과학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 좋은 신앙을 가진 훌륭한 인재들이 과학의 각 분야에 심기워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책임질 수 있는 신앙인들 과학인들을 양성하는 것을 힘써야 한다. 물론 역사적 아담 논쟁으로 성경의 무오성이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를 나누는 또 하나의 이슈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진리 가운데서 대답할 말을 찾아서 준비하는 것이 일방적인 주장이나 오해를 막는 지혜로운 준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