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김혜천 목사
한국이 또 한 번 자살이야기로 떠들썩하다. 한류의 인기 탤런트이면서 가수인 박용하가 자살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진실에 이어서 그의 동생 최진영이 자살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들은 자살소식은 연예인들 가운데서 연달아 일어나는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이번 주간에는 중국 유명배우 자훙성이 우울증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아파트 14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이것이 어찌 배우들만의 문제이겠는가?
한국의 2006년 통계에 의하면 일년 사망자 중에서 14%가 자살자라고 한다. 사망원인 중 7위로 10년 전보다 2단계가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자살율 증가율이 1위이다. 특별히 2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통계에 의하면 960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그중에 30명이 죽는다. 한국에서 평균 매 48분마다 한명씩 죽는다. 그런데 그 자살의 원인 중에 60%가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증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세계도 우울증은 전염병처럼 퍼졌다.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각종의 질병과 심장장애의 두 번째 원인이 된다. 10년 후면 1번째로 증가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미국인들 중에 지금 10%가 우울증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인구의 25%는 우울증을 앓게 된다는 통계이다. 또한 미국인 성인의 15%가 우울증 치료약을 복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신앙인이라고 차이가 거의 없다. 우울증을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다. 성도들이 우울증에 걸리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죄책감을 갖게 돼 더욱 그 고통이 크다.
왜 우울증을 겪게 되는가? 조시 맥도웰(Josh McDowell_은 그의 저서 “Handbook on Counselling Youth”라는 책에서 8가지의 주요한 우울증의 원인들을 제시한다. (1)생물학적인 요인들 (2)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느낌(갇혀 있으며,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생각) (3)부모의 반대 (4)학대 (5)부정적인 생각 (6)생활의 스트레스 (7)분노 (8)죄의식 등이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증상이 있지만 다음 2가지는 꼭 있어야 한다고 한다. 먼저,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들고 또한 삶에 대한 흥미 감소된다. 그 외에 다른 증상들을 보면 체중감소나 증가가 있고 불면증이나 과도한 수면증세가 있고 정신적으로 초조해지고 피로감이 들고 무가치감 또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사고와 주의 집중력 감퇴되고 또한 자살시도 혹은 자살계획 또는 반복적 자살사고를 시도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것도 잘 믿는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우울증에 걸릴 수 있겠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도 우울증에 걸려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여서 마음이 불안하고 신음하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닌다”고 고백을 했다(시38편).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우울증의 증세를 보였다(왕상19장). 성경적 상담가들은 성경의 인물들 모세, 요나, 하박국, 바울 등도 역시 우울증의 증세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칼빈, 루터,웨슬레 같은 신앙의 인물들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유신론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상당히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신앙의 정치인으로 성실한 삶을 산 아브라함 링컨이나 영국의 처칠 수상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소망은 우울증이 세계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대책에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우울증에 대한 수많은 극복의 케이스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생긴 부산물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죄로 인한 고통과 죄의 결과로 인한 인간의 갈등을 다 우울증 증세로 심리학적인 용어로 표현해서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우울증이 사단의 역사요 개인적인 죄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우울증이 확산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이 더 바빠지고 더 혼돈스럽고 더 요구되어지고 더 힘들어졌다. 21세기의 과학이 발달했고 문명의 이기는 많아졌지만 인생살이는 더 힘들다. 우울증은 이러한 피곤한 영혼들이 세상과 외부의 요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자신만의 세계로 격리시켜가는 고치를 짓는 현상이다. 사실 우리는 옛날보다 더 건강하고 더 잘 살고 더 부유하고 더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은 더 불안해 졌다. 직장이 안정되지 않고, 전문화와 특수성 때문에 직장을 옮기기도 쉽지 않다. 오랜 시간 일한다. 항상 뒤에 쳐지는 것 같은 느낌에 쫓긴다. 일과 일이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직장동료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비교 당한다. 우리는 조직 속에서 작고 하찮고 하룻밤에 없어질 소모품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회적인 비인간화 현상이 지배한다.
사람들은 이런 심적인 부담을 약물로 달래려고 한다. 미국인의 15%는 알코올중독으로 허덕거린다. 천만명이상이 약물중독으로 고통당한다. 약물을 하는 사람들의 절반은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다. 우울증은 더 많은 약물사용으로, 약물사용은 더 심한 우울증의 사이클을 반복한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심하게 탄다. 사회학자 로버트 풋맨(Robert Putman)이 쓴 “Bowling Alone”이라는 책에서 그는 현대인들의 사회적인 네트웍이 급속히 감소하고 사람들은 더욱 더 혼자의 세계로 빠져든다고 지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고 헌혈도 안하고 함께 게임도 적게 하고 친구를 적게 사귀고 이웃과 식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HD TV를 통해서 축구를 보던지 아니면 페이스북(facebook)에 몰입한다.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더 멀리 격리돼 간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희망의 상실이다. 희망은 미국의 힘이었다. 그런데 재난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테러의 재난, 경제적 붕괴의 재난, 생태계의 재난,… 재난의 소식이 온 세계를 우리의 세대를 뒤덮는다. 희망의 상실은 사람을 더 무너지게 한다.
이러한 세계적인 전염병 우울증의 창궐함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반면 이런 어려움은 교회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불확실, 하찮음, 무기력함, 파괴, 외로움, 고독, 두려움, 신뢰하지 못함, 소망의 상실 이런 것들은 21세기의 감정들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지혜롭게 사용을 하면 복음증거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교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시대는 영적인 문제를 심리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도 우울증이 영적인 것인가? 아니면 질병의 문제인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사실 어디까지가 신체적이고 심리적이고 영적인지에 대한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그 영역은 중복이 된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선을 긋는 것은 무리가 될 것이다.
우울증을 경험했던 마르틴 루터는 우울증 극복을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혼자 있지 말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깊이 의지하라, 성령의 임재하심을 확신하고 휴식을 취하라.” 현대에도 귀담아 들어야 할 극복케이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위로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상처나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깊은 곳까지 통달하시고 치유해주신다. 성령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신다. 우울증의 그림자 속에서 두려워말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아프고 힘든 사연들을 낱낱이 아뢰면서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자. 십자가 밑에서 주시는 치유하심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