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이 있는 감동
최근에 마음의 큰 울림을 주는 일이 있었다. 코로나로 우울한 시즌에 전해진 좋은 소식이었다. 한국영화 110년에 처음, 아시아 사람으로는 두 번째,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상을 받은 것이다. 미국사람들이 ‘K-Pop’을 말하듯이 ‘K-Halmuni’ 라고 부르는 74세 할머니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이분의 특별한 시상식 소감은 두고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아들들아 고맙다. 나를 밖에 나가서 일하게 해주어 이 상을 받게 되었구나.’ 유머가 담긴 시상 소감이었는데, 국적을 초월하여 많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큰 웃음을 주었다. 먹고 살아야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주 힘들었던 삶의 이야기를 감동 있는 유머로 승화한 그녀에게 모두가 호응을 한 것이었다.
잘 알려졌듯이, 그는 조씨 성을 가진 남자로 인해 인생의 어려움을 크게 당한 적이 있다. 그는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며 목회자의 길을 가야했던 사람임에도, 자신의 죄의 결과로 가정의 파탄을 불러왔고, 그럼에도 아주 특이한 기인 같은 생활을 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려왔던 것이다. 이후 그의 생활은 계속 이상하기가 그지없었다. 한때, 찬송가 테이프를 들으며 큰 은혜를 끼치기도 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그 좋은 재능을 가지고서 아주 최근 불교의 찬불가 음반을 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별 수 없는 죄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혼란스러웠을 한 여인의 삶은 무척이나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이들 때문에 일하러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오히려 자신의 예술혼의 에너지가 되었다는 조크에 온 세계 사람들이 공감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 뭔가 일을 이루어낸 사람들을 보면 공통의 선로가 있음을 보게 된다. 소설책 몇 권을 썼을 만큼의 삶의 고통과 어려움들이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포기하고 낙심하며, 자신의 인생의 어려움을 핑계할 구실로 삼았을 그런 일들도, 큰 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인생의 맛과 향을 내는 좋은 재료요 양약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들이 당한 고난들이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강하고 새롭게 담금질해서 더욱 멋지고 정교한 작품 인생을 만들어 내더라는 것이다.
공통의 감정선
미나리 영화를 보면 출연자들의 대사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흔히 생각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같은 그런 대작의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어떻게 저런 장면을 연출했을까? 돈은 얼마나 들었을까?’하는 그런 류의 계산이 흘러가는 영화와는 전혀 결이 다른 영화였다. 어찌 보면 평범하고 담담하게 몇 부작 아침 드라마를 찍듯이 그렇게 스크린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74세된 그 K-할머니, 한국 할머니의 연기에 세계가 열광하였을까?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인종과 피부색과 국적과 상황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지으신 인생에게 흐르는 동일한 감정선이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미나리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 꼬마가 현재 정이삭 감독의 분신이고, 그 부친은 현재도 알칸사 북서쪽에서 영화에 나오는 채소 아닌 배나무를 키우면서 살고 있는 실존 인물이다. 그 손자는 훗날 아이비리그 명문학교를 나온 감독 그 자신인데, 그의 인생을 통해 할머니에 대한 소중한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의 고단한 이민사에 대한 것이 주류이지만 필자는 유독 그 할머니에게 관심과 초점이 모아졌다.
미나리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 이곳 알칸사이어서 현재 주도인 리틀락과는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외진 곳에서 약초와 배나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곳까지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 감독의 부친은 착실하게 공부하면서 잘 장성한 두 자녀로 인해 한인교회 성도들에게도 모범이 되며, 교회가 교육 강연을 요청하면 와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전해 주었다고 한다. 정 감독의 누이도 같은 학교를 진학하여 지금은 의사로서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더 귀하게 들었던 것은, 한국 아들의 이름을 성경의 이름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신앙도 아주 좋았다며 이곳에서 오래 사셨던 분들이 전언하는 여러 내용들이었다.
아마도 영화에서, 세상의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보지 않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영화 곳곳에 나타나는 것이 그런 신앙적인 배경 탓은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면, 물가에서 뱀을 본 손자가 두려워하자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낫다.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법이야’ 라고 타이르는 할머니의 모습 속에서 언뜻 기독교의 영적세계에 대한 암시를 주는 것처럼 들려지기 때문이다. 미리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잘 물리치고, 정말 두려워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도 생각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잠언
영화에서 이렇게 소년은 할머니와의 교감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잠언과 지혜를 배우게 된다. 그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할머니는 심장질환의 병으로 인해 허약한 손자를 향해 늘 ‘스트롱 보이, 스트롱 보이’ 하면서 격려와 응원을 한다. 또한 이 손자에게 미나리를 통해 교훈을 남긴다. 그의 기억에는 ‘미나리 원더풀 미나리 원더풀’하는 할머니의 음성이 있다.
할머니가 말하는 미나리는 어떤 것인가? ‘어디서도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건강하게 해주는 것,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미나리’ 그것을 사랑하는 손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마치 거친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민자들과 힘든 2세들의 삶에 미나리처럼 잘 자라기를 소망하는 기대가 담긴 것이다. 이렇게 미나리는 할머니와 손자세대를 이어주며, 할머니의 간절한 기대가 전달되는 매개체가 된다. 그렇게 할머니의 미나리를 듣고 보고 먹고 자랐을 감독은 이 미나리를 통해 척박한 이민의 땅을 살아가는 부모 세대의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할머니가 가르쳐준 그 미나리 정신(?)을 가지고서 최대의 경의를 영화라는 형태로 드러낸 것이라 여겨진다.
가능한 세대간(間) 소통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최고의 감동은 한 세대를 건너뛰는 세대 간 소통의 가능성이었다. K-할머니, 그는 완전 한국의 시골 할머니 같은 1세 그 자체의 모습이다. 정말 순도 100%의 시골 할머니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완전한 2세의 어린 손자이다. 그 손자에게 한국의 할머니가 배움과 가르침을 전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음을 본다. 오히려 더 극적으로 할머니의 음성을 기억하는 것을 본다.
여기서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기술적인 전달의 문제를 말함이 아니다. 할머니 세대의 정서적 온기가 그대로 완전 아메리칸 2세 손자에게 그 생각과 정신이 그대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이토록 완벽하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을까? K-할머니들이 가지는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랑과 헌신’이 결국 문화와 언어와 배경이 다름에도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완벽하게 녹아 흘러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랑과 헌신은 무엇일까? 아무리 세상이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나중에는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의 불간섭이 세련된 부모의 조건처럼 여겨지는 때가 되어도, 사랑하기에 생명도 내어주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불길 속에도 뛰어들며,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기에도 전혀 주저함이 없을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과 희생으로 할머니는 손자에게 최고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실제 감독의 외할머니 이명순 여사는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외동딸을 키웠다. 얼마나 그 세월의 시간들이 고되었을까? 그런데 그런 고단한 시간을 지나면서 할머니는 더 강건해졌던 것 같다. 혼자 지켜내어야 했을 외동딸에 대한 그 사랑의 마음과 그렇게 사랑하는 딸의 병약한 아들, 그 손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모든 소통의 불가능을 뛰어넘어 버리게 했던 것이다. 그 강력한 사랑의 힘이 손자인 정 감독에게 전달이 되었던 것이다. 모든 K-할머니의 사랑과 희생의 교육법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육이 무엇인가? 학교에서의 지식과 기술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고 유익하다. 그러나 진짜 그 인생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정감의 교류를 통한 마음과 영혼에 남는 기억들이다. 그런 기억은 오직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과 헌신의 희생 외에는 없다. 이것이 바로 K-Halmuni의 위대한 사랑의 교육법이다.
망각과 본성의 회복
그런데 실제로 이 사랑은 한국 할머니만 하는 사랑법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인 이상은 부모로서 당연히 이러한 사랑과 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세계가 한국 할머니에 대해 이토록 열광하는 것도 저들 속에 그런 영적 DNA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 DNA를 둔감하게 만든다. 잊어버리게 한다. 조부모와 손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와 자녀 간에도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자기 인생은 각자 알아서 사는 것이라며 마치 남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장차 여자가 여자로, 남자가 남자로 부끄러운 짓을 하며 이제는 공식적으로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시대마저 되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어떤 일본인 여성은 미혼모로서 아버지가 분명하지 않는 아이를 인공수정하여 낳고는, 마치 정상적 가정의 자녀처럼 매체에 홍보하며 방송에 등장한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점차 이러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회전체가 도덕과 영적 감각을 상실해가기 때문이다. 그저 각자의 Life Style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며, 각자 자기 인생사는 것이라고 쉽게 설명한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을 인격과 수준 높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아주 많이 잘못된 현상이다. 이것은 배려를 핑계하는 사랑의 결핍이며, 영적인 타락이며, 사랑의 수고를 게으름으로 돌려막는 인생의 악한 모습일 따름이다. 이러한 악한 일이 가족 간에 나타난다면 이것조차 고상한 말로 회피하고 말 것인가? 영화 속 K-할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K-할머니, 미나리
5월은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만드는 복된 달이다. 미나리 영화를 보면서, 완전한 2세 어메리컨 손자와의 소통의 문제도, 상상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사랑과 희생으로 날려버리는 한국 할머니(K-Halmuni)의 당당함과 훌륭함에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모든 이민자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수고와 사랑과 헌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저들이 있었기에 마치 꼰대(?) 같고 어른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이제는 외로운 노인 아파트의 한켠을 차지하는 정도로 왜소해졌다 하여도, 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다음 세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마땅히 공경을 받아야 할 분들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윤여정 배우, 당신이 연기한 그 한국 할머니가 바로 스트롱, 원더풀, 바로 그 미나리였습니다. 당신과 우리 한국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강건하기를 기도합니다.”
davidnjeon@yahoo.com
05.0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