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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현실 신앙

- 교회, 은혜의 강수(江水), 거룩의 능력

붙들리고 매이는 은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나는 당일 저녁부터 칠일간 무교절을 지나게 된다. 무교절을 지킴으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저들에게 허락된 구원의 신앙을 현실의 삶 속에서 구현하게 된다. 왜 하필 칠일동안 그렇게 하도록 하셨을까? 유월절 신앙의 의미를 현실화시키는 일에 완전수를 사용함으로, 일평생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생활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절기를 통해 저들 평생의 삶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 살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허락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 붙들리고 매이는 것이 어떤 자유보다 위대한 축복이며 은혜이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에 붙들려 사는 복은 현실 세상에서 성도가 받는 최고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지금 트로트라는 장르의 음악열풍이 불고 있다. 어린 시절 생각해보면 그런 풍의 노래는 연세 드신 어른들이나 혹은 동네 아저씨들이 아주 저렴(?)하게 부르는 노래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갓난아이부터 노년까지 가사와 조합되기 어려운 연령대까지 열심히 있음을 본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기독교방송 간증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가수도 그런 분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본다. 그중에 한분이 눈에 띄었는데 겉보기에도 느끼한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훤하게 잘생긴 분이 나와서 간증을 했다. 내가 느끼는 느끼함을 말했더니 옆에서 열등감(?)의 일종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잘생긴 외모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젊은 시절 엄청난 방황, 술과 담배를 하면서 밤새워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그렇게 밤새워 놀고서도 주일은 꼬박꼬박 지켰다는 것이다. 워낙 어릴 때부터 주일은 당연히 교회가는 날이고, 교회안가면 인생종말인 것처럼 배웠던 탓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몸으로 배운 것이, 훗날 청년시기의 극한 방황 중에도 마침내 길을 찾는 이정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신이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주일이 당신을 지켰습니다.’

 

현실교회의 소중함

 

모든 신앙의 간증거리가 있는 분들의 공통점을 보면 그 속에 현실 교회가 아주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방황하던 중에 주님을 만났고, 그분의 말씀이 들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교회를 향해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신앙을 설명할 수 있는 교회생활이 곧 신앙생활이 되더라는 것이다. 교회를 떠나 방황하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감으로 회복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를 빼놓고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생활의 회복에서부터 의미 있는 인생의 달력이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인생의 좋은 것을 맛보기 시작한 샘의 원천이 교회였다고 고백한다. 

실제 성도의 삶은 교회와 함께하는 삶이다. 교회에서 유아세례 받고, 훗날 주일학교부터 청년부, 결혼식을 하고 장년부와 실버회를 지나고, 마침내 그 주의 전에서 천국환송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곧 천국의 분점이요. 그곳이 천국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할수 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평생 교회에 매여 삶을 산다는 것만큼 무미건조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참 복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이다. 최고의 인생을 경영하고 세상을 이기는 영혼의 힘을 분출하는 샘의 원천(原泉)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복된 삶의 방향과 교회

 

영혼의 저수지요, 구원의 샘터가 교회이다. 이러한 감격들은 과연 방황하는 분들에게만 나타나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방황하다가 주님과의 만남으로 결국은 다시 교회에 돌아가게 되는 것처럼, 기존의 교회에 나아오는 이들에게 예비하신 축복도 삶의 방향은 항상 교회이다. 삶의 방향을 더욱 교회로 가까이 밀착시키며, 꿈을 꾼 듯이 교회를 사모하며, 세상의 천날보다 주의 전에서 하루가 더 나음과 같은 복된 감격 속에 살아가는 자, 그는 어떤 인생의 방황도 없을 것이며 세상 앞에서 담대히 승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 항상 교회중심으로 삶을 살아왔고 그 영적인 힘으로 세상과 승부하며 이겨왔던 것이다. 교회생활이 분명하면 신앙의 방황도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당신의 자녀와 이웃을 향해서도 뜨거운 은혜가운데 복음을 전했다. 전도도 그들에게는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단지 ‘얘야 교회 가자, 교회 다녀왔니? 같이 교회 갈래?’ 이렇게 간절한 그 마음을 전함으로, 뭇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불신 결혼한 딸에게 친정엄마가 그렇게 소원하며 교회 다니라고 권했는데, 듣지를 않다가 엄마가 섬기던 교회에서 드려진 장례식 설교에 은혜를 받고, 어머니가 자신을 의탁했던 그 교회에 몸을 붙였다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 때 참한 여학생을 만나려고 교회를 갔다가 교회조직에 완전히 몸을 담그게 되어 목회자가 된 이들도 있다. 군대서 초코파이 때문에 교회 갔다가 주님 만나고 인생을 바꾼 경우도 많다. 

이처럼 교회로 나아오는 이들에게 주님은 항상 모든 일에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 베푸실 하늘의 은혜가 넉넉한 저장고가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부족함이 없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은 늘 예비하고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교회에 더 가까이 자신을 붙들어 매는 것이 곧 신앙이고 축복이다.

 

회복과 승리의 요새 

 

스무 해 전 미국에 처음 올 때에 담임목사님이 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제주도 여행도 한번 가보지 않은 나에게 미국 유학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때, 샌안토니오에 있는 따님 가정을 몇 번 방문하신 경험이 있던 담임목사님이 말씀으로 엄청난 힘을 주셨다. ‘걱정하지 마라. 미국에 가면 한인교회가 있다. 교회가 힘이 될 것이다. 도와줄 것이다. 거기도 같은 아버지 집이다. 그리고 한 가지 목사가 되어 가면 별로 환영(?)받지 못하니까, 안수를 조금 미루고 강도사로 가면 교회 섬길 곳도 있을 것이고 공부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시카고, 컬럼버스 오하이오, 리틀락 등 어디를 가나 교회가 있었고,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성경공부하면서 전혀 낯선 곳이 아닌 동일한 아버지 집의 평강을 맛보며 안정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디서나 예배드리면서 찬송가 가사 하나 하나에 감격하며 영혼과 삶에 평안을 맛보게 됨으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나타날 일들도 주님의 함께하심을 기대하며 소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담임목사의 위치에서 그 간증과 고백을 전달하게 된다. 자녀들이나 성도들 가운데 어느 누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회를 떠나 이주하게 될 때 항상 기도하며 당부를 한다. ‘교회가 힘이 될 것이다. 교회가 네 영혼을 지켜줄 것이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주일은 네 날이 아니다. 세상천지가 없어져도 주일은 꼭 교회를 가야된다. 예배 드려야 한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은 너의 평생에 없다. 네가 교회를 가고 주일을 지키는 것 같아도, 주님의 교회가 너의 영혼과 삶을 지켜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좋은 교회 만나고 좋은 목사님을 만나도록 권면한다. 교회생활의 승리가 삶의 승리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교회생활에 실패하면 당장은 온전한 듯 하여도 끝이 좋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최고의 기도와 유언 

 

그렇기 때문에 항상 최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날 때 마지막 기도와 당부는 늘 교회에 대한 것이다. 내 방 책장에는 대략 3천권 정도의 책이 빼곡히 꽂혀있다. 그곳 어딘가에 나의 유언장이 얼마의 용돈과 함께 들어있다. 비행기 타고 다닐 일이 많았던 때에 친구 중에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지 못한 슬픈 일을 지난 후 혹여 모를 일에 대비하여 준비한 것이다. 가끔씩 업데이트를 하는데 굉장히 마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그 내용의 가장 주된 것이 무엇인가? 숨겨둔 재산이나 돈이 될 것은 전혀 없다. 보물 찾는 재미를 느끼도록 얼마의 용돈을 두었을 따름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용서를 구하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가족들 특히 자녀들에게 주는 당부의 내용이다. 그 내용은 앞서 언급한 내용의 연결이다. 그러나 한가지 성도들에게 전하기에 부담되는 것도 가감 없이 포함시킨 것이다.

‘얘들아,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는 꼭 가야된다. 교회중심으로 살아라. 처음 교회에 가게 되면 먼저 교회의 세워진 리더십에 순종하며 지내고, 나중에 교회가 헌신을 원하면 꼭 순종하면서 참 좋은 교회를 만들어가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를 시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교회를 섬기는 너의 자세가 곧 하나님을 향한 자세와 같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섬기는 것이다. 교회에 충성꾼이 되어라.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담임 목사님에게는 아빠에게 하듯이 그렇게 정성을 다해 섬겨라. 설날과 추석, 추수감사절, 성탄절, 목사님과 사모님 생신에는 크던 작던 꼭 선물과 식사로 섬기도록 하여라(이 부분은 사적인 유언이지만 혹여 하면서 옮겨본다). 혹여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너의 신앙 양심을 해칠 만한 일이 생기면 조용히 변론 없이 침묵하며 교회를 떠나도록 하여라. 교회를 떠난 이후에도 네가 섬기던 교회와 목회자를 향해서는 하나님이 싫어할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하고, 네가 새롭게 섬기는 교회에 최선을 다해라. 너의 엄마에게는... 등등’ 

현실 교회의 목사이기에 성도들에게 말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가르침으로 인해 나타날 열매와 부작용사이에 한계가 있음을 잘 알기에 위와 같이 그대로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먼 훗날 그렇게 하나님주신 은혜대로 그대로 전하여도 오해가 없을 만큼 하나님께서 내게 영권을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로컬처치중심의 신앙

 

이토록 강조하고 당부하는 교회는 철저히 눈에 보이는 Local Church를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 참 성도들의 모임의 멤버십은 주님만 아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말씀하는 참된 교회와 충성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교회, 지역교회를 향한 섬김과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섬기는 것이 자신의 신앙의 본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 안나가’라고 말하는 가나안 성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참 신앙인이 아닐 수 있다. 무교회주의를 주창하는 이들은 구원의 반열에서 현재적으로 제외될 가능성이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예배자들의 경우는 제한적으로 달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예배자는 분명히 그 멤버십을 Local church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에 30% 정도의 기존 성도가 다시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염려한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참된 성도이고, 믿음의 기본을 알고, 주님의 교회가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이들은 총칼을 가지고 막는다하여도 주의 전을 향해 나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세상을 이길 힘의 원천지에 터져 나오는 은혜의 강수(江水)를 쏟아 부어주실 것이다. 

davidnjeon@yahoo.com

02.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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