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참 신앙 좋은 부부였는데, 남편이 직장시험 준비로 짧지 않은 거리에 주말에만 집을 다녀갔었는데, 최근 부인에게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양성판단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남편이 그 내용을 따라가 보니 아내가 남편 몰래 그만 3년간 신천지교회를 출입하고 있었더라는 것이다. 충격에 남편집사님은 아내와 같이 살아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토로하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위로를 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혹여 지금이라도 바이러스로 인해 신천지의 악한 궤계가 드러났음에 감사하라고 했다. 만일에 이런 일이 없이, 앞으로 10년 20년 더 깊이 빠져들었다면 그때는 정말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하라고 했다. 더불어 가장 먼저 전화번호부터 바꾸라고 조언을 하면서 긴 통화가 진행되었다. 성경의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악한 모사의 궤를 꾀하는 저들의 거짓전술에 대해 설명하면서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다. 밤새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온갖 기분 우울한 이야기만 나누다보니 많이 힘이 들었다.
이성과 지식, 분별력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의아스러웠던 것은 사람의 이성이 어디까지 작동하는가에 대한 회의였다. 배운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나름 신앙생활에 열심을 가지시던 분이었는데 참으로 황망한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결국 사람이 아무리 탁월한 이성의 능력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종교인이 아니어도 추하고 더러움이 무엇인가를 일정부분 분별하도록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영적인 영역에서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면 결국 허망해질 수밖에 없음을 통감하게 된 것이다. 고시공부 하던 남편을 착하게 내조하던 그분이 어떻게, 조금만 신앙의 기본 도구를 사용해 보면 금방 드러날 악한 비진리였는데, 어떻게 속아 넘어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마음이 든다. 사단의 악함이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한국에서 이단에 정통하신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도 신천지가 제일 골치 아픈 이단이라는 것이다. 신천지라고 하는 사람들을 구별하기 어려운 유가, 모략이라는 거짓을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인데, 거짓의 아비인 사단마귀의 특징에 가장 흡사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참과 거짓이라는 본질적인 도덕률마저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전략의 하위전술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이단이라고 평가한다.
악한 궤계-사회적 독기
일반교회들도 사후 법적인 일처리를 위해 신천지 출입의 통제를 말할 뿐 분별해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 더 소개하면 이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와서 5년, 3년, 길게는 7년, 교회에서 잠잠히 그렇게 있다가 어느 날 세력화가 되면 들고 일어나 목사님을 교회에서 나가라고 한다든지 교회의 여러 가지 잡음들을 들고 일어나서 그것을 가지고 공격을 한다든지 해서, 교회를 깨고 그 교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신천지에서 세워진 목사라고 하는 사람을 집어넣어서 교회를 장악하게 한다는 것이다. 익히 아는 내용이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는 중에 신천지 사람들이 순차적인 위장전입 정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들을 포섭하는 단계에 들어가는 방법들이다. 모든 신상정보를 찾아내어 마치 정보기관이 작전을 펴듯이 그 포섭대상자의 가정과 출가자녀의 생년월일까지 파악해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악한 궤계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포섭대상자 가운데는 한 교회의 중직자인 장로와 권사라는 사람들마저도 쉽게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에 무차별적인 포섭대상에 사용된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 한편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신 어느 목사님은 “교회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반갑지 않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겁이 난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한다. 성경에 보면 거짓선지자들은 아주 은밀하게 들어와서 교회를 장악한다는 그런 말씀이 서신서에 보면 나와 있는데, 그런 현상이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의 한국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안타까움으로 대화를 나누고, 한국의 교회 목사님들은 대체 뭘 하시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속이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을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생각해보라. 속이려고 마음을 작정하고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을까? 영적 분별력이 있다 할지라도 그런 사람을 감당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성도님들은 “아 우리 목사님은 왜 저런 거짓선지자를 분별해내지 못했을까?”라고 할지 모르지만 속이고자 할 때에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그래서 이단인 것이다.
예전에 어떤 찬양 사역자가 뉴욕에 와서 찬양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내용인즉 처음부터 찬송가가 아닌 랩으로 된 찬양을 하면 사람들이 거부반응이 나타나니까. 처음에는 찬송가를 한두 곡 부르다가 나중에 어느 정도 무르익을 것 같으면 랩으로 된 찬양을 바꾸어서 부르면 된다는 그런 강의를 했다. 그 자리에 계시던 목사님 한분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고 한다.
‘이것은 이단 흉내를 내라는 것이다. 이단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처음은 다 똑같은데,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꼬리가 다르다는 것 아니겠는가? 머리는 분명히 사자의 얼굴이었는데, 꼬리를 보니까 뱀의 꼬리더라. 이것이 이단이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누구를 속이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옳은 방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지적이다. 신천지의 끝을 보라, 가정파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위장교회, 위장복음, 진리파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악행들, 거짓말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부정적인 결과의 끝을 볼 때 속히 없어져야 될 사회적 독기가 되는 집단임을 부인할 수 없다.
끝이 좋은 사람
어떤 집단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그 생의 끝자락이 아름답고 좋아야 한다. 사람은 그 끝을 보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마지막을 보면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평소에 온유하고 인자한 모습을 가진 사람도 화가 나고 굉장히 속상한 때에는 전혀 의외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본다. 그때 그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가 진실로 좋은 사람이었는가를 분별하게 된다.
왜 그런가? 끝자락 꼬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기에 그러하다. 꼬리를 보기 전에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우리가 서로 잘 지냈는데, 어떤 이권이 개입이 되고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 그 사람이 행한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지 않은가?
예수님의 마지막 끝은 어땠는가? 예수님의 끝은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다. 그때 그 고통 중에도 그의 고백이 무엇이었는가? “이 쓴잔을 내게서 피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소서” 십자가 도상에서도 “주여 왜 나를 이렇게 하십니까? 그러나 주님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면서 거기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에게 “주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예수님의 일생이 한결같았음을 본다. 예수님은 시작할 때와 끝날 때가 너무나 똑같았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성질이 나쁘기 때문에 성깔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깔을 부린다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화목하고 화해하여야 한다. 이것이 되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과 같은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용서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도 자기 양 아들로 받아들여서 끝까지 자기 자식처럼 하셨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종교적인 사람이나 종교적인 사람이 아닌 진정한 크리스천인 사람의 차이가 뭐냐?” 그렇게 묻는다면 “끝을 보면 안다.” 이것이 정답이다. 끝을 의심하고 사람들을 사귀는 것은 아니다. 처음의 모습을 보고 사람을 사귀어가다가 어느 순간 끝을 보게 될 때에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끝이 어떨까?” 이것을 자주 질문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된다. 어떤 분들은 사람이 죽을 때 보면 이 사람이 천국 갔는지 아니면 지옥에 갔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임종예배를 드려보면 당연히 알 수 있다. 성경으로 점검하지 않아도 너무 뻔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그 마무리를 어떻게 짓느냐? 가 훨씬 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중요한 내용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불안과 위험 앞에서, 삶과 죽음의 길 앞에서, 생명 있는 시간동안에 더욱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끝이 좋은 인생으로 살아가야 함을 다짐해야 한다. 먼 훗날 주님이 우리를 보시며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정말 좋은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한다. 조금 고통스럽다하더라도 주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 그런 삶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러할진대 굳이 남을 속이는 거짓 신천지 이단집단에 감염되어, 사는 것도 괴롭고, 죽음의 끝자락은 더 괴로울 일을 행하며 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굳이 남을 미워하고 속이며,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 주며 살아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굳이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 교회와 주의 종을 대적하며 마음을 악하고 강하게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끝이 좋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은 이곳이 끝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davidnjeon@yahoo.com
04.11.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