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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세상

-자기생각, 개성, 영적실패

신약성경 사복음서에 보면 부자 청년이라고도 하고 관원이라고도 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오는 사건을 보게 된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예수님께 묻는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대답하신다. “계명을 지켜라” 그러자 청년은 대답한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청년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버리고 나를 따르는 것이 곧 영생의 길이라고 말씀하시자, 이에 반응하는 청년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물론 이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가게 된 이유는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라고 성경은 더 분명한 이유를 말한다.

자기생각 자기마음 자기의 길 이 청년의 사건을 묵상하면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한 단어를 첨가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생각”이다. 이 단어를 첨가해서 말씀을 완성하면, “그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생각과 맞지 않아 근심하며 돌아가니라.” 이렇게 설명가능해질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이 청년의 질문은 누가 보아도 그가 신실한 신앙인임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예수님이 영생에 관한 정답을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예수님의 말씀을 버리고 돌아가 버렸다는 말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자기만족 속에서 영생의 길로 가고자 하는 “자기 생각”이 이 청년의 마음속에 가득하였던 것이다. 주님은 그런 청년의 마음을 보시고 영생은 너의 선한 행실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나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네 마음이 온통 빼앗겨 있는 재물을 부인하고 네 마음도 몸도 “나를 따르는 것”이 영생으로 가는 길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자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이 있어 보이고 신실해 보이던 이 청년은 생명도, 진리도 버리고 자기 생각 자기마음 자기 길로 돌아서 버렸던 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의 마음속에 주님의 뜻이 아닌, 자기 신뢰, 자기 믿음이 인생의 행동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생각에 빠진 교회와 예배자들 오늘날 교회들, 특히 이민교회에서 이런 청년과 같은 모습들은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생에 대해서, 천국에 관해서, 구원에 관해서, 하나님의 사명에 관해서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생각”에 빠져 있음을 본다. 결국, 이러한 자기생각에 대한 믿음들이 마침내 그들의 행위가운데 복되지 못한 열매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자기는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재물과 세상의 영광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행실이 드러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행위의 선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생각을 주의 말씀으로 채울 수 있는 예배와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전해도 귀로는 듣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가롯유다의 자기생각 예수님의 제자가운데 가룟유다의 실패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단어가 “자기 생각‘이다.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과 천국에 대한 믿음을 증거 하는 제자로 삼으시기 위하여 가룟유다를 제자로 부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데리고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게다가 재정을 맡는 중대한 일도 가룟유다에게 맡기셨다. 그런데 그는 제자로 부름 받고,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기는 했지만 결국은 돈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기게 된다. 그렇다면 가룟유다는 어째서 이런 큰 죄를 짓게 된 것일까? 예수님과 가까이 함이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가까이 있어도 다른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가룟유다와 같은 시험에 빠지게 되고 무너지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자기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면 가룟유다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내 안에 담지 못하면 가룟유다가 된다. 우리가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가룟유다같이 될 것이며, 믿음도 영생도 다 잃어버리는 비참한 인생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렇게 “자기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가룟유다에게 예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자신을 구원할 메시야로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도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제자가 되고 만다. 예수님을 찾아온 재물 많은 청년도 예수님께서 영생에 길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지만 예수님이라는 존재는 자기 생각과 맞지 않았다. 그러니 예수님이 자기를 영생으로 인도할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며, 그 결과로 그는 주님 앞을 떠나가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자기생각”을 강조하는 시대. 16세기말에서 18세기말까지 일어났던 계몽주의는 무지하게 살아가던 많은 대중들에게 “자기생각”의 중요성을 일깨운 큰 사건이었다. 또한 18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났던 산업혁명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지주와 농민으로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세습적 부를 누리며, 세습적인 가난을 인정했던 생활의 방식을 힘쓰고 노력하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재물을 얻는 사회로 삶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과학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곧 현실이 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생각하며 사고하는 힘의 중요성을 더욱 더 강조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은 이런 “자기생각”을 개성이라는 멋있는 단어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자기 개성이 중요시 되는 사회, 그래서 부모들이나 학교가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며 교육하고 양육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생각, 자기 개성만이 너무나 두드러지다 보니까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자기생각, 자기개성이 중요하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성공의 요인이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내 생각”, “자기생각”만 가지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마침내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생각”을 버리지 못하므로 부자 청년과 가룟유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는 기형적인 신앙의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보셔도 사람이 보아도 추한 모습이 된다.

나의 생각은 내려놓고 주님으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로 나아가 예배함에 있어 내 생각, “자기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채우며 따라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생명의 기적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 영적존재로 새로워질 것이다. 봉사의 열정도 중요하고, 자신을 헌신하는 섬김도 필요하지만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예수님을 예수님답게 하는 성도는 바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생각으로 충만하게 변화된 존재라는 것이다. 세상적인 욕심, 물질에 대한 집착, 탐욕과 자기체면과 위선 같은 “자기생각”을 버릴 때에 우리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듯 참된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나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죽은 개와 같은 나를 부르셔서 죄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는 그 예수님의 복된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들음으로 회복은 시작된다. 들음으로 믿음이, 들음으로 능력이, 들음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의 성도로 변화하게 된다. 그렇게 잘 들음으로 자라난 믿음이 세상적인 자기 생각들을 밀어내고 주님의 생각으로 그 영혼을 복되게 채워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생각”에 가득차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회개도, 감사도 없이 교회를 떠도는 사람들이 아니라, 늘 주님을 가까이하며, 교회를 가까이하며, 예배를 사랑하며,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으로 영혼과 삶을 채우며 주를 따르는 복된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davidnje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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