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장례식을 가보면 고인에 대한 인연에 따라 남다른 마음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슬픔이 있어도 한편 지나는 생각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다행스런 마음이다. 저렇게 슬퍼하는 유족들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고 또 돌아가는 것이 마땅히 정상적일 것이다. 고인을 추억하는 자리에 참석한 유족외의 사람들도 결국은 잊으며 살게 될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며칠 전에 한국의 대통령이 최초로 탄핵되고 파면되는 일이 발생했다. 탄핵 후의 이런 저런 많은 소리들이 들려와도 일단은 하나의 매듭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몇 달 동안 서로를 물어뜯을 듯이 파국의 비정을 느끼게 할 만큼 소용돌이쳤던 한국의 정치적 상황도, 이제는 신속하게 다음 단계를 향해 새롭게 전개되는 것을 본다. 불과 10여일이 지났음에도, 염려했던 큰 일없이 생존의 목적을 위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달음박질에 바쁜 발걸음들만을 보게 된다. 참으로 비통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음이 결코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죽고 못사는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죽은 후에는 묻어두고 산을 내려와야지, 영원히 그 옆에 초막 짓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을까? 아마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주변에 가족들 가운데에도 찬반으로 나뉘어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을 향해 자비를 들여 집회에 열심냈던 이들도 탄식과 환호를 교차하며 침착하게 삶에 현실에 대응해 나가는 것을 본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애써 다시 뭔가를 새롭게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달 밤낮 새벽마다 조국을 위해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묵상했던 일들의 소회를 나누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판단에 자유로울 수 있는 현실의 문제이기에, 네 가지 화두로 제한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
첫 번째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1987년 국민적인 열망과 기대를 모았던 대통령선거에서 양 김씨의 분열로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열혈학생이던 필자에게 하신 담임목사님의 말씀 한마디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되어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세월이 더 지나는 즈음에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정확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표방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 시대의 흐름을 예측한다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가? 그러나 무지한 인생에게도 하나님은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 보여주시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명백히 되어진 일에 대해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다. 탄핵의 찬반양론에 대한 판단주체의 잘잘못을 떠나 되어진 일은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판단의 옳고 그름의 진실도 그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충분히 해석이 되리라 본다. 예를 들어, 공동체가 세운 판관들이 언론의 일방적인 의도 속에 미성숙한 판단을 했다면 그로 인한 해악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반대의 경우를 통해 성숙함을 드러낸 일이었다면 그로 인한 복의 누림도 역시 공동체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인 것 같아도, 그 승리의 진실에 대한 참과 거짓이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세운 판관들의 옳음에 의한 참되고 진실한 국민의 승리였는가? 그렇다면 그 복은 온 국민이 취하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만일에 그러한 결정에 오류가 있었고, 사사로운 술수들의 승리였는가? 그렇다면 그 해악조차도 승리라고 주장했던 그들도 피할 수 없는 모두의 해로움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판단은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 앞에서 그 결론의 열매를 맛보면서 성숙을 향해 가게 될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이가봇’하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할 따름이다. 일의 결과에 대해 누구도 그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다. 공동체로 묶여진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 은혜가 저들에게서 떠나가지 않도록 바라고 기도하며 소망할 따름이다.
2. 사필귀정 탄핵의 과정을 보면서 사필귀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르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과응보라는 말이 갖는 가혹함 때문에 조금은 달리 사용하고자 한다. 즉, 바르게 인도하시고 복되게 만사를 주장하심에 전혀 오류가 없으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로, 모든 엉키고설킨 문제는 반드시 정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편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한국의 언론을 ‘쓰레기’라고 표현하기는 과할지라도 바름에 대한 언론의 자세는 꽤나 비난을 듣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가설과 가정에 의한 것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는, 이후에 확인된 사실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가타부타가 없다. 함께 더불어 동조하며 입방아를 함께 했던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그 책임에 대해 회개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입니다...’ 하고서는 사실처럼 보도를 해버렸다. 그러면 다수 대중은 작게 보이는 앞의 전제(前提)를 생략한 채 뒷부분을 가지고서 흥분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전과 다른 언론의 호황 탓에 대통령은 다른 전직(前職)들의 잘못에 비해 과하게 취급된 면이 많이 있었음을 본다. 사생활과 같은 내용들, 막말과 협박으로 인격의 민낯을 드러내는 국회의원들, 자신의 유익을 따라 배신과 배반을 밥먹듯 하는 잡배들 등등을 보면서 당사자로서 느끼는 답답함도 많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리더라고 하면, 신적존재는 아닐지라도 이 모든 것조차 그의 리더십에 포함되는 내용이어야 했던 것이다. 리더에게는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진다. 그중에 우선은 권한이다. 리더는 그 권한의 온전한 사용으로 국민과 더불어 영화를 누리기도 하지만 혹은 그것이 잘못되거나 미리 보완점검 확인하지 못함으로 나타난 해악의 문제들도 고스란히 리더 자신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답답해할 이유가 없다. 사필귀정이다. 국민이 답답할 따름이다.
3. 후회
세 번째로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사람들, 이제는 집권여당도 나뉘어졌지만 그 중심에서 권세를 누렸던 사람들, 특히 대통령 자신의 마음에는 아마도 후회의 피눈물이 흘렀을 것이라 여겨진다. 세월을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이 아마도 생명을 포기하고픈 유혹으로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쩜 살아있는 것의 고통이 죽음보다 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후회일 따름이다. 그 자체가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회를 이기는 길도 있다. 그것은 후회하는 만큼 현실에 대해 후회에 합당한 책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이기는 길이다. 그것이 세월을 이기게 된다. 후회는 영혼을 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후회의 마음만큼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당당할 수 있다면, 잃어버린 공적위치의 유무를 떠나 개인 스스로가 자강(自强)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회복이 일어난다. 후회 속에서 삶을 마음대로 기투(旣投)하지 않아도 될 넉넉한 강단(剛斷)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리더로서 감당치 못한 일들에 대해 피눈물이 흐를 만큼 후회의 아픔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더라도 후회 속에 머물거나 자신을 내어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외려 더욱 자신의 후회만큼 책임을 받아들임으로 마지막까지 핑계 원망 한숨과 탄식이 아닌, 잠시 동안이라도 백성들이 사랑했던 지도자였음을 기억하게 함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정말 억울하신가? 그렇다면 더욱 담담히 받아들이고 시간을 인내해야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때를 따라 밝히 드러날 날이, 드러내실 날이 오기 때문이다.
4. 교만
마지막으로 교만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시간차이는 있을지라도, 성경의 진리는 반드시 현실에 실현되는 힘과 능력으로 작용한다. 불과 한해 전만 하여도 집요하게 편가르기를 하고 정적들을 고사시켜가는 과정을 보면서, 보수는 왜 이렇게 합리적이지 못할까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유는 이미 가진 권력에 대한 자신감과 교만 때문이 아니었던가? 결국 선거의 실패와 그 구원(舊怨)이 표면화되어 배신의 정치가 나타나고 어느 누구하나 붙들어주지 못하는 극단적인 실패의 길로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무서운 생각이 든다. 성경말씀 그대로이다. 안타깝지만 진리이다. 교만하면 망한다. 철저하게 버림받는 것이다.
모든 것을 좋게 하시는 하나님
지난주 조국 대한민국의 되어진 일에 대해 네가 화두를 가지고 제한적인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모든 것은 사필귀정이다. 후회는 늘 뼈저린 고통에 다름 아니다. 고집스런 교만이 패망의 지름길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궁극의 소망은 역시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기대하는 것이다. 새벽을 깨우는 일천만 그리스도인들과 세계 각지의 흩어진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의 무릎을 꿇기에,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모든 것을 다 좋게 선히 인도해 가시리라! 아멘. davidnjeon@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