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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회복하심이 하나님의 뜻

-상실과 회복-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모든 사물에는 존재의 목적이 있다. 사물 자체에 존재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있는 사용자에게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계는 자신을 위해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계의 사용자에게 시간을 가리켜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그를 만드신 자가 원하시는 존재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실된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이 회복을 이루지 못하게 될 때, 그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직분과 직함이 올라갈수록 더욱 많은 폐해를 가져옴을 보게 될 것이다. 최근 일련의 한국의 일들이 이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존재목적 1. 성공

세상 사람들이 줄기차게 원하고 요구하는 그들의 존재 목적은 성공이다. 여러 갈래의 정의가 있겠지만, Vadpersher는 “성공이란 그가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 돈을 모아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 직업을 구하려는 실직자, 어린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하는 사람,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 혹은 유명한 스포츠맨이 되겠다는 사람 등등,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러한 다양한 소원들 가운데, 자신이 구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것, 그것을 자신의 품에 안는 것을 성공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성공의 기준에서의 정의일 따름이다. 돈을 바라던 사람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히 성공이다. 세상의 높은 권세를 꿈꾸던 사람이 이를 이루는 것은 분명히 성공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기준 혹은 세상적인 성공의 개념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 자신이 바라던 대로 무엇을 이루어낸 것을 뜻한다.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얼마나 큰 권세나 능력을 가졌느냐, 소유했느냐, 취득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과 관점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성경적인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추었느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느냐 하는 것이므로 다른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운명, 현실안주주의, 형식주의를 반드시 버려야 하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불신앙, 불순종, 자기 아집을 반드시 버려야 된다. 세상을 향해서는 미련한 자-바보가 되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철저히 순종하라는 것이니, 일단 성공하고 보자는 세상의 요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존재목적 2. 자유와 사랑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인다면 좀 더 고상한 생각을 찾아보자.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인간의 존재목적을 자유와 사랑에서 찾는 이들도 많이 있다. 실제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찾고자 하는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많은 자들이 인간의 본질을 자유로 해석한다. 헤겔도 역사의 발전 그 정점에 자유를 둔다. 그러나 그 자유를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발견하는 헤겔의 의식 속에 있는 자유, 과연 그는 진정 자유를 알았는가? 에 의문을 던진다. 당신은 자유로운가? 아니, 자유를 아는가? 자유를 정말 원하는가? 또 사람들은 자유만큼 사랑을 인생의 존재이유요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도 자유만큼이나 복잡다변한 정의를 가지고 있기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자유를 갈구했지만, 요즘 같은 물질문명 시대에는 신앙을 포기하는 자유로운 자유를 요구하는 것을 본다. ‘더불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존재하고 있는가? 진리 안에서 영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인생은 언제나 자유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종이 되고 매이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불행의 씨앗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적인 성공에 비해 상당히 본질에 접근한 듯 보여지는 자유와 사랑마저도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본다. 본질적인 이유는 인간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병들고 참된 진리와 자유와 사랑을 알만한 능력이 그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유 할 수 있는 본질을 잊어버렸기에 그 자유를 얻으려고 투쟁해 보지만, 영원한 자유는 얻고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도 성공도 마찬가지다.

존재목적의 상실

인간은 성공자체만으로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일정부분 자유와 사랑을 획득한다 할지라도 결국 제한된 만족을 줄 따름임을 알게 된다. 왜 그런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물 자체에 존재의 목적이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있는 사용자가 상실과 매임 속에 살고 있기에 현상적인 조건들을 변모시켜본 들 여전히 자유와 사랑에서 거리가 먼, 참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매이게 되는 것이다. 온전한 회복의 자리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주 식상한 말이지만, 결국 사람이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이 상실의 본질을 인지하고 회복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

회복 없는 성공은 또 다른 재앙

영혼자체의 회복이 없는 세상적인 성공은 또 다른 재앙을 가져온다. 관리능력이 되지 않는 데, 좋은 것을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인 상실로 부터의 회복이 부재한 성공은 마치 소금물을 욕심내어 마시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하고, 몸의 병이 낫고, 사업이 대박을 내고 하는 것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모두가 상대적이고 제한적이며 비교우위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좋은 일이 있어서 술을 한잔해서 기쁨이 충만했는데, 나중에는 좋은 일이 없어도 그 때 그 기쁨을 지키려고 계속 한잔씩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명목으로 기뻐서 먹는 술이 아니라, 먹음으로 기쁘게 되는 종속, 매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매일 술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중독에 드는 것이다. 최근의 한국의 정치 청문회에 등장하는 이들을 보라. 얼마나 명예, 돈, 권력, 모든 것을 다 가졌는가? 그런데 그것이 이유가 되어 청문회에 나와서 수모를 당하고, 심지어는 감옥에도 가는 것을 본다. 대통령이라 함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임에도 그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실이라는 인간의 본질이 회복을 이루지 못하게 될 때 가진 권력이 강대할수록 더욱 많은 폐해를 가져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절대 기준에 매인 복된 인생

세상의 모든 일들은 상대적이다. 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하여도 바로 옆집아이가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기쁨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돈이 많아지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돈만 많아지고, 나머지 형제간의 우애나 부모자녀간의 공경과 효는 사라졌음을 본다. 돈이 없었을 때는 가족이 똘똘 뭉쳐 살면서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서로를 생각하였는데, 요즘에는 돈 있는 부부는 방이 많으니 각자 따로 자고 고급범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본다. 자녀들도 각자 핸드폰 들고 방에 들어가서 불행한 대화의 단절을 보게 된다. 돈이 있으면 다 되는 줄 아는 돈을 복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교회생활도 과거의 교회생활 할 때와는 달라졌음을 본다. 예전에는 주일날도 저녁예배 드리고 마치면 성가대 연습하고 고3이어도 다음날 학교 상관없이 봉사했는데, 이제는 모든 면에서 물질적인 부를 이루며 살고 있지만, 결코 수치상의 액수의 증가가 진짜 인생의 기쁨과 만족은 보장할 수 없음을 보게 한다. 사람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 - 상실과 회복

성경의 첫 부분은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머지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인간이 어떻게 회복되는가에 대한 회복의 길을 말한다. 아니, 회복의 길로 오라고 외치고 있다. 외칠 뿐만 아니라 마침내 회복자가 오셨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의 길로 거의 강압(?)적으로 초청하신다. 그만큼 성경은 회복의 책이고, 회복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성경의 끝은 회복된 자들의 삶을 보여 준다. 영원한 삶의 약속이다. 천국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회복자이신 주님을 통해 참된 회복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회복은 상실을 전제로 하기에, 회복을 소망하며 상실의 과정을 넘어설 때, 그 인생에게 비로소 참된 성공과 자유와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든 무엇을 하든지, 의미있는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회복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인생을 불러 쓰실 때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사람을 골라서 쓰시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성경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연약하고 부족함에도,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을 찾아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죄의 못된 그 쓴뿌리로 인해 항상 실패한다. 영적으로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실패하고, 사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실패와 넘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 실패를 크게 여기지 않으신다. 주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너무 늦어지기 전에 일어나 다시 쓰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죄로 인한 상실로 실패한 인생을 위해 낮은 종의 모습으로 찾아와 위로하고 세우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죄로 인해 실패한 나를 일으켜 세우고자, 인간의 몸을 입고 말구유로 찾아오신 분이 회복케 하는 자 예수님이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2016년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인생은 후회하는 사람과 감사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짐을 본다. 주님의 제자는 감사하는 사람이다. 보통은 연말시즌이 되면 후회하는 마음의 고통을 많이 호소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해 후회하고 이루어 놓고도 의미를 찾지 못해 후회하는 것을 본다. 여전히 상실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물의 회복자인 그리스도의 사람들, 내면의 영적질서가 상실을 넘어서 회복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은 철저히 모든 것에 감사함을 본다. 지나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그 영혼의 울림이 상실의 상처를 몰아내고 감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현재 실패에도 당당하다. 회복을 맛보았기에, 하나님의 뜻은 나를 버려두지 않고 회복시키는 것임을 믿음으로 확정하고 있기에 그는 선하신 주의 뜻 안에서 다시 시작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과거에 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삶의 변화를 도모하는 회복자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 복이 특별히 조국 대한민국의 우울한 현실 앞에 가슴 답답해하는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되기를 기도한다. davidnje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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