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3. 종교적 입장 힌두교 불교 브라만교(Jainism)에서도 동물권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는 물론 윤회설에 근거하여 모든 살상을 반대합니다. 힌두와 불교 사회는 동물 제사를 금지시켰고 BC 3세기에 채식주의를 채택했습니다. 그때부터 인도를 비롯한 불교국가에서는 동물 사냥과 살육금지, 짐승들에 대한 비폭력을 교리들로 명하고 가르쳤습니다. 그 교리들은 어떤 살아있는 생물에도 해를 주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작은 생물까지라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무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동물권 옹호는 이런 종교적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슬람은 이슬람법(Sharia)에 의해 이미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쿠란(Qur'an)과 하디스(Hadith)에 기초한 것으로 모든 동물들이 영혼이 있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신과 커뮤니케이션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모든 동물들이 각각 자신의 방법으로 신에게 예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하멧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동물의 권리를 존경하도록 명했고 동물에게 어떠한 해를 가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런 사상에 근거하여 모든 동물이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법입니다.
4. 잘못된 환경보호운동 한국의 목회자 한분이 환경주의 운동의 개식사 설교에서 “물은 만물의 기원이며 생명이다”라고 한 부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물을 보호하자는 운동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비성경적인 언급일 뿐만 아니라, 타종교의 교리와 사상으로 변질되는 환경보호운동이 됩니다. 환경운동가들 일부는 땅을 우리의 어머니(mother nature)나 아버지처럼 취급합니다. 그들은 땅을 우리가 나온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으로 인식합니다. 동시에 식물이나 동물과 더불어 인간의 생명이 동등함을 가르칩니다. 이는 힌두교나 혹은 뉴에이즈적인 사상의 결과이며 무분별한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환경주의 운동이 꼭 힌두교와 결부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를 보호하기 위해 살육을 금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 중에는 힌두교적인 정신과 사상을 포함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동물 보호운동을 벌이는 나체 여자 모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동물 고기를 먹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인 것인가를 주지시키며 마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암시를 주며 채식주의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부 환경 보호 운동가들의 사상은 범신론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특히 땅과의 신비적인 연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동물 보호를 위하여 식용을 금지하는 환경보호운동도 있습니다. 또한 생태계의 위기(ecologic crisis)를 걱정하며 모든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운동과 단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주의나 환경보호운동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속적인 환경 보호주의가 아니라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환경보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5. 성경에 나타난 환경 보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1) 동식물을 먹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산염소가 정해진 만삭의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몸을 구부리며 새끼는 낳고 난 다음 그 새끼가 강하여져서 빈들에서 자라다가 성장하여서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한다는 말씀을 욥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들나귀, 타조, 말, 매, 하마 등의 모든 동물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돌보시고 계심을 설명하십니다(39, 40장). 지금도 들짐승을 마시게 하시고 공중의 새들도 보호하시되 나무들을 심어서 그것들을 보호하시며, 뿐만 아니라 가축을 위해서는 풀이 자라게 하시고, 사람을 위해서는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시고, 높은 산에서 산양을 치시고 너구리를 바위에 피난처로 두실 정도로, 모든 동식물을 때를 따라 먹이시고 계십니다(시104:11-30). 예수님께서도 공중의 새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마6:26-30).
2) 동물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땅의 모든 짐승이나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 곧 모든 산 동물을 채소처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에 사람은 이런 동물을 얼마든지 식량으로 취할 수 있습니다(창9:2-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동물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그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리고, 미워하는 사람 집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서 일으켜 줌으로서 동물에게 친절을 베풀 것을 동시에 말씀하십니다(신22:4). 곡식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심으로 동물을 잘 먹일 것까지 말씀하시며(신25:4), 하나님께서는 가축까지도 아끼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욘4:11). 지혜자는 악인과 의인을 구분할 때,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지만 악인은 잔인하며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잠12:10). 이런 성경적 의미에서 우리는 일정한 한계와 균형을 가지고 동물 보호운동을 찬성하고 지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적 목적을 위해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행위는 분명 옳지 못한 행위이며, 지혜자의 말씀에서 유추한다면, 동물의 생명을 무조건 빼앗거나 무시하는 것에 대해 익숙한 사람이라면 인간의 생명의 손실에 대해서도 같은 경향을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식물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성읍을 포위하여 점령하려 할 때 적의 땅일지라도 그 땅의 과실나무를 보존하고, 보통 나무들은 기구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실 것을 명령하십니다(신20:19). 예수께서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시며 들풀까지도 입히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식물도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의 대상입니다. 창조과학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식물들에게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아미노산과 단백질의 합성을 이용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의 놀라운 능력을 알게 되면 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식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경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 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시기 위해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경작은 아담이 땅을 맡은 종이 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섬기는 개념을 말씀합니다. 에덴동산을 지키는 것은 침입에 대해서 지키는 것이며 방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칠년마다 땅에 안식을 줄 것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출23:10-11). 안식년과 희년은 땅마저도 안식을 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안식년은 땅을 놀리도록 하는 규정이므로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땅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신15:1-11). 심지어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대하36:20-21).
5) 종말의 하나님 나라에 포함될 동식물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동물과 식물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묘사할 때, 서로 해를 가하는 존재인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어린 사자, 암소와 곰, 독사와 어린 아이가 함께 어울리며, 해를 끼치지도 않고 서로 상함이 없는 상태라고 말씀(11:6-8)합니다. 신약에서는 성도들이 영원히 살게 될 새 예루살렘은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고 말씀합니다(계22:2).
6. 동물에 대한 윤리
피터 싱어는 동물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수 없다는 동물 해방론(animal liberation, 1975년)을 말하며, 더 나아가 톰 레건(Tom Regan)은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해야한다는 동물권(animal rights, 1975년)주장까지 나아갔습니다. 이에 더하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사유하는 인간은 그 자신의 생명을 외경(reverence)하는 것과 동일하게 모든 살고자 하는 의지를 소유한 존재도 동일하게 외경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을 촉진시키며, 성장 발전이 가능한 생명을 최고의 가치에 올려놓는 것을 선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생명을 파괴하고 손상을 입히며 발전 가능한 생명을 억압하는 것을 악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것을 절대적이며 근본적인 도덕 원리라고 주장함으로 슈바이처는 인간 생명체만이 아니라, 그 보호의 대상을 우주의 모든 생명체로 확장합니다. 그는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고자 애를 쓴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고귀하게 평가할 수 있는 본래적인 가치, 즉 생명 안에 스스로 품고 있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동물 해방론과 생명 중심주의적인 윤리는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모든 생명체들은 생존을 위해 동물이든 식물이든 우리가 존중해야 하지만, 이런 생명 외경의 사상을 어떤 행위를 위한 규칙으로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슈바이처는 생명 외경의 사상을 규칙(rule)으로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로서 제안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사슴과 같은 동물의 권리(animal rights)에 대한 규칙을 만들어 시행한다면, 생태계에 있는 먹이 사슬이나 먹이 피라미드 혹은 생태학적 공동체라고 하는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깨뜨림으로 생태학적 공동체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7. 성경적 환경주의
필자는 환경주의에 대한 내용을 동물에 제한하여 언급했지만, 이런 우리의 관점도 분명하게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환경 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중, 예를 들면 땅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성경에서 유추되어야 합니다. 결코 땅은 우리의 어머니나 마음의 고향이거나 인간의 근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지만 또한 전체 창조계 곧 모든 형태의 생명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피조계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이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창조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세계의 자원을 사용해야 하지만,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고갈시켜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원이 고갈되면 자연적인 결과는 인간 자신이 고통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면 땅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땅의 자원을 파괴한다면 땅을 채우고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땅의 자원을 개발하고 늘려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인간 자신의 복지(welfare)와 땅의 복지는 함께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동물에 대하여 우리가 친절하게 대해야 할 것을 말씀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동물 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음식물(동식물)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딤전4:3-5)고 말씀하십니다. 세속주의들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동물과 인간이 동일한 생존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동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섬기는 리더십을 가진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은 우리 인간의 행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땅에 대해서와 동식물에 대해서 균형 잡힌 사용을 계획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하고 죄악된 인간은 타인과 환경을 희생해서 자신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려는 이기적 욕망과 탐욕을 발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죄악된 사상에 기초한 환경 정책은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운동 단체들이 기초한 사상과 원리에 대해서 성경적인 분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동물권에 대한 많은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 그보다 더욱 높아지려는 모든 생각과 주장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고후10:4-5). 그러므로 환경보호 운동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이메일: younsuklee@hotmail.com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