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3. 영화 감상에 대한 반대의견 제시의 논증과 교정 1) 폭력성 폭력적인 장면과 욕설들은 감상하는 자들로 하여금 폭력적인 영향을 받아 그런 장면을 모방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폭력적인 장면들이 동일한 폭력을 양산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을 위해 이런 폭력적인 영화를 제한하고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적인 장면을 자주 시청함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띤다는 것을 일반화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속의 폭력들은 연출되어진 것일 뿐입니다. 정상적인 사회나 도덕 사회에서 이런 폭력들은 비판의 대상이며 또한 처벌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폭력이라도 우리가 접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산속이나 사람들이 없는 외딴 곳에 있든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문화를 접촉해서 알고 이해하고 변화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창세기의 가인이야기, 모세의 애굽 사람에 대한 폭력행사, 사사기의 잔인한 전쟁이야기들 등,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복음서가 묘사하는 예수님의 수난은 폭력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적절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딤후3:16-17). 폭력을 통해서 타락한 악인의 결과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폭력을 묘사하는 영화들의 내용이 우리를 교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폭력적인 장면들은 때때로 폭력의 실상을 자각하고 경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의 폭력적인 장면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폭력 모방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2) 성적 욕망 영화 속의 장면들은 음란한 마음과 성적인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관람을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영화 속의 성적인 장면들이 그런 마음을 계속 일으키게 한다면 관람하지 않아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적인 장면을 영화로 만들 때 그것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지며 배우들이 실제로 생식기의 접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속의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죄악된 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배우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배우들이 성적인 장면을 촬영할 때, 자신의 직업 윤리의식을 가지고 영화촬영에 임하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죄악된 행위를 보는 것이 죄악된 행위를 일으키게 한다는 논리는 유약한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해당될 수 있지만,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적용될 수 없습니다. 성적인 욕망을 일으키기 위해 이런 영화를 관람한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피해야 마땅하지만, 성숙한 기독교인들은 이런 영화의 흐름을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필자의 의도는 이런 영화를 관람할 필요성을 주장하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분량에 따르는 분별력과 선택의 기준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세속적인 인생철학의 오염 세속적인 철학내용을 가진 영화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화를 관람하지 않아야 할 가장 위험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폭력성과 성적인 욕망을 일으키는 장면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세계관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이 현대 영화에 주종을 이루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영화계가 분류한 R등급(17세 미만은 성인 보호자 동반) 영화나 X 등급(18세 미만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뿐 아니라, G 등급(모든 관객 관람) 영화도 똑같이 주의해야 합니다. 모든 관객이 관람할 수 있는 건전한 영화가 오히려 훨씬 더 신앙을 오염시키고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영화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이나 칸트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이 진리인 것처럼 소개하는 영화가 기독교 신앙에 더 치명적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Disney) 영화 라이온 킹(Lion King), 포카혼타스(Pocahontas)와 같은 영화들은 힌두교 사상이나 뉴에이지(New Age) 사상을 어린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입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낙태, 전쟁 부추기기, 동성연애, 사형제도 폐지, 유물주의 허용 등과 같은 영화를 감동적으로 제작하여 상영할 때 그 피해는 폭력과 선정적인 성적 내용의 영화보다 훨씬 악한 영향을 미성숙한 기독교인들에게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인생철학에 무지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사상을 안고 있는 마귀의 계략에 무지해서는 안되며 그 계략을 잘 알고 분별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후2:11).
4) 불신앙적 산업 육성 비도덕적이고 비신앙적인 산업에 우리의 돈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논증입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의 경건한 산업과 기관을 찾아서 그것만 지원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로마시대에 세금은 황제 숭배를 지지하는데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고린도 시장의 음식들은 거의 모든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데, 바울 사도는 그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일일이 알아보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시장에서 음식을 살 때 그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산업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큰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한다면 이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도덕적으로 잘못되거나 사상적으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산업에 우리의 돈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분량에 합당한 적절한 만큼의 영화 시청을 즐기는 것을 죄악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알고 세상을 분석하고 대처하려는 자세로 문화의 변혁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4. 영화에 대한 사상 평가
영화는 그 시대의 사고방식과 철학, 가치와 삶의 방식을 의미 있게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작된 영화들은 대개 그 영화가 속한 시대의 문화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서구문화는 근대부터 시작하여 기독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반기독교적인 세속 문화의 지배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적인 도덕성과 가르침이 존경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나타난 대부분의 사상은 세속적 자유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속적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생각은 ‘평등’이란 용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평등이란 단어는 기독교나 자유주의 모두가 중요시 여기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평등은 결코 성경적인 형태의 평등이 아닙니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동일한 역할, 가난한 계층과 부유한 계층의 차이 없애기,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인 제재 없애기 등 도덕적인 상대주의로 치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유주의가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남성과 여성의 분명한 차이와 역할을 말하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의 경제적 격차를 없애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동성애의 비도덕성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상이든지 성경의 인격적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보편주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곧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거나 모든 사람이 버림을 받는 평등주의를 말하게 됩니다. 자유주의는 도덕적인 상대주의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혼동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편성을 쉽게 받아들이면 그 보편성이 절대자가 되어 결국 우상숭배라고 부르는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자율적인 도덕의 판단이기 때문에 자유주의는 늘 독단주의의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의 독단주의가 실패하면,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든지 임시적인 상대주의로 바꾸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상대주의적인 윤리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절망과 비관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상대주의가 아니라면 독단적인 자유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독단주의는 거짓된 희망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는 바로 영화의 내용에서 도덕적 상대주의와 독단주의가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적인 가치를 지지하는 않는 영화 속에서도 기독교적인 주제와 함축된 의미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비기독교적인 영화 제작자들도 기독교의 계시에 담긴 극적이고 지적이고 도덕적인 힘을 압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제작자들은 그런 진리들이 어떤 시점에서 작용하도록 놓아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은 평등과 상대주의, 독단적인 우상숭배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5. 그리스도인들이 영화를 대할 때 해야 할 질문들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신학교의 전 존 프래임(John Frame) 교수와 필자의 스승인 포이츄레스(Vern Poythress) 교수는 그들의 영화평론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중에 적어도 몇 가지 질문과 분석을 필요로 합니다(Theology at the Movies) 1) 이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는 누구이며 누가 각본을 썼는가? 그들의 삶의 철학은 무엇인가? 2) 이 영화는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3) 이 영화가 취하는 입장은 사실인가? 정직한 영화는 어떤 관점을 지니든지 요점을 잃어버린 영화에 비해서 문화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4) 이 영화는 어떤 종류의 영화인가? 판타지, 전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혹은 코미디인가? 영화의 목적이나 장르에 따라서 우리는 그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코미디에서 역사적 정확성을 찾으려 한다면 코미디가 되는 것입니다.
5) 이 영화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기독교적인가 비기독교적인가? 비기독교적이라면 그 주요 주장은 상대주의적인가 독단주의적인가?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갈 자리가 있는가? 비관적인가? 낙관적인가? 배우들의 연기는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인간의 선택만을 중요한 역할로 간주하는가? 6) 주요 줄거리는 무엇인가? 등장인물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는가?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인류가 아담 안에서 타락했다는 사실과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는가? 이 영화는 타락을 부인하는가? 긍정하는가? 7) 그 문제들은 해결 가능한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만일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은 무엇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가? 8) 이 영화에 있어서 가족, 성관계, 인간의 삶, 재물, 진리, 마음의 태도 등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만일 도덕적 기준이 있다면 그 원천은 무엇인가? 정의가 잘 지켜지는가?
9) 코미디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가? 농담의 대상은 무엇인가? 기독교인이나 전통적 가치, 악인, 의인, 하나님, 사단인가? 농담은 무질서한가? 합리성이 일그러져 나타나는가? 농담은 격렬한가, 아니면 적당한가? 누구를 풍자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인가?
10) 영화 제작자들이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 작품, 다른 영화, 유명한 사람, 성경 등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성경적 가치관을 수용하고 있는가? 영화에서 어떤 성경적인 암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성경적 가치관을 수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11) 이 영화의 주요 이미지는 무엇인가? 카메라의 앵글, 조명, 음향, 특정 주제를 암시하는 타이밍에 어떤 흥미로운 점이 있는가? 어떤 중요한 상징들이 등장하는가?
12) 이 영화에는 어떤 명시적인 종교적 주제가 담겨 있는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가? 그 기독교 성직자, 교회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드러내는가? 그 영화는 기독교를 왜곡하거나 최악의 모습으로 그리는가? 그 영화는 어떤 통찰이나 연민을 나타내는가? 그 영화는 사람들의 삶에서 어떤 개인적인 경건의 요소를 인정하는가? 사탄이나 악령,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서는 어떤가? 그 영화는 그들의 활동을 어떻게든 인정하는가? 마귀를 진지하게 취급하는가? 그 마귀가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이메일: younsukl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