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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학교 교육에 대한 찬반 이해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들어가는 말 교육학을 전공한 필자는 이민 후 여느 부모처럼 자녀교육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공립학교의 폐해를 익히 들어온 터라, 기독교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중,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시간을 통해 교육내용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들의 숫자개념의 확립을 위해 공립학교 프리스쿨(Preschool)에서는 보통 공룡이나 짐승과 사물들을 숫자의 도구로 사용하지만, 기독교 학교 프리스쿨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날 수나 창세기의 창조물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학교 교육의 전제와 출발점이 창조와 진화로 양분된다는 것을 표출해주는 간단한 실례가 됩니다. 기독교 학교에서는 가장 어린 유치원 교육부터 세속주의 사상인 진화론과 우연을 배제한 성경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음을 즉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필자가 신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사를 가르치면서 공립학교에 대해 연구한 일부분을 인용해서 간단히 기술하고자 합니다.

1.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의 의무 성경에서 가족과 국가는 근본적으로 구분되지 않지만, 국가는 확장되어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큰 가족인 국가는 아이들이 경건한 의무를 수행해 나가도록 하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돕는 방식으로 그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가 위임한 공립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전인적인 교육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의무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는 국가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기능에 대해 효율적이며 올바르게 감당하고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 본문에 공립학교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없지만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에는 많은 제한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을 통해서 공립학교 교육에 대한 찬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다음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국가운영의 공립학교가 과연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국가는 법과 질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하게 하려 할 때, 집단적인 강요라는 수단을 사용하지만, 교육은 법과 질서 유지의 성격과 달리 그런 강요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국가가 이끄는 공립학교 교육이 매우 중요한 교육이지만, 사립학교의 교육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국가가 아이들을 전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국가가 주관하는 공립학교에서 이상적인 성경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국가가 죄로 타락한 아담의 가족의 연장이며, 그 큰 가족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공직자들에게 둘러싸여서 교육을 하거나 받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공립학교는 성경적 교훈과 상반된 최악의 경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공립학교 교육은 신명기의 쉐마(6:6-9)와 같은 교육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딤후3:14-15)라고 말씀하는데, 과연 공립학교 교육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는 교육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상태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3) 공립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장려할 수 있겠습니까? 이 대답도 동일합니다. 법정에서는 이구동성으로 항상 국가와 종교 간의 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한 종교를 지지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하는 기독교 교육이 공립학교에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과거 케네디 대통령 전에는 청교도 정신의 기독교 문화가 다소 경건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가능케 했지만, 점진적으로 공립학교가 기독교적 관점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면서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성경 수업과 기도로 시작했던 학교 교육, 교실에 부착되었던 십계명이 다 포기된 세속화의 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속적인 인본주의라는 사상 자체가 하나의 종교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이 기독교 신앙과 반대되는 이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결코 절대적 성경의 진리가 없으며, 오히려 세속적인 것 자체가 절대적 진리의 자리를 석권하고 말았습니다. 4) 그러면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공립학교 교육에 어떤 영향을 끼치겠습니까? 만일에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상대주의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면, 학생들은 그곳에서 배움을 위해 노력할 근거를 상실하게 됩니다. 의와 불의, 선과 악에 대한 분별과 그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사회의 불의와 사회의 악에 대해 무슨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비록 그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을 학습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입장을 매우 자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공립학교의 교육은 자연주의적인 진화가 사실이며 성경의 기준은 낡고 진부하며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 역사에서 기독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공립학교에서는 현재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똑같이 좋은 것이며,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초등학교에서마저 낙태는 여성의 권리이며, 성적인 질병을 막는 방법은 안전한 성관계(성교육, 피임교육)라는 것이 공공연한 교육의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세속적 사회는 동성애가 정상이며 이성애보다 오히려 더욱 보호받아야 할 인권인양 여론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공립학교의 교과서의 교육내용까지도 그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공립학교의 교육의 현장은 시대의 흐름을 따른 세속적 인본주의를 세뇌시키는 현장이 되고 있습니다.

5) 공립학교는 교육과정의 내용만큼 친구관계도 중요한데, 그 가운데 무엇을 배울까요? 경건한 성격을 갖추도록 훈련되어지고 교육되어지는 것이 학교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지만 공립학교의 인본주의는 결코 이것에 도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악한 가치와 행동들, 마약이나 불법적인 성행위나 집단 폭력 등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친구들의 말, 신념, 그리고 가치들을 더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립학교가 아이들에게 한없이 자율권을 부추길 때, 부모와 교사의 권위는 사라지고 자율권을 가진 아이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모든 권위를 독차지함으로 시간이 더할수록 교육의 내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6) 공립학교의 교사들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공립학교는 부모나 교회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예를 들어 공립학교가 콘돔을 나눠주거나 낙태의 방법을 알려주어서 교사들 자신이 부모 위에 서고, 부모와 아이들을 갈라놓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립학교는 기독교에 반대하는 자들이나 세속적인 인본주의에 동의하는 자들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기독교나 홈 스쿨을 반대하거나 무시합니다. 더 나아가 홈스쿨의 폐해를 지적하고 기독교 사립학교를 비판함으로 아이들을 국가 제도의 영향권 아래에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공립학교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위의 질문과 대답들을 고려한다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을 심각하게 숙고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공립학교 교육을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공립학교 교육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지상명령: 예수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지상대명령(마28:19-20)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유혹에 대해서 늘 경성하고 있어야 하지만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이 세상과 격리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안에 머물러 그분의 영향력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요17:11,15-16). 이 말씀을 아이들의 교육원리에 적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와 격리되어 공립학교에 보내기보다는, 마귀와 그들이 일으키는 세속화에 대해 아이들이 혼자서 판단하고 전투에서 이길 만큼 준비된 후에 세상에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변화: 중요한 것은 부모나 양육자들이 우리들의 아이들로 하여금 마귀의 간계에 무지하게 방치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성장하는 아이들이 비 기독교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로 굳게 서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교육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변화를 위한 현장으로 공립학교 교육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대안: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세속적인 인본주의에 노출되어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적어도 중학교 정도까지는 공립학교 교육보다 기독교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에는 기독교인 부모들이 그룹을 이루는 홈스쿨링을 통하여 부모가 교사가 되어 영적, 정신적, 신제적인 면까지 신앙적으로 잘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은 장학금 제도와 함께 좋은 시스템을 가진 기독교 사립학교를 지향할 수 있습니다. 또 공적인 자금을 받아서 교사, 부모, 지역단체 등이 설립한 학교인 차터스쿨(Charter School) 등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낼 시기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자녀들이 세속성을 잘 분별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를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죄와 의, 진리와 거짓을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신앙적인 나이가 된다면 세속적 인본주의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주도할 아이들로 세상에 내보낼 수 있습니다. 4. 결어: 우리는 공립학교 교육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원리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기독교인 부모로서 국가의 불순종을 돕는 일입니까? ▪권리: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불경건한 국가의 권위 아래 아이들을 맡겨두는 것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공립학교 시스템을 세웠다고 그것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그 혜택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공립학교에 아이들의 모든 것을 맡겨놓고 공립학교의 세속적 인본주의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죄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금의 의무를 감당해온 기독교인들이 국가나 공립학교의 시설을 사용하는 것은 자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이며, 또한 공립학교가 유익을 줄 수도 있습니다. 2)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우리 사회를 비 신앙이 주도하도록 만드는 것입니까? ● 개혁: 일반적인 학문의 내용에 대해 비기독교 교과서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반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이나 편협적 도덕 교육이나 편견을 가진 사상들이 교과서에 들어올 때 이것들에 대해 우리는 비판적인 거부와 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경건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책임: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물러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사회발전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자신들의 아이들이 경건한 자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자로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인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무엇을 거부하며 선택할지를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겠지만, 획일적으로 모든 세상의 문화를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기 전에 세속적 인본주의를 극복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부모들이 가능한 환경이라면 홈스쿨링이나 사립 기독교 학교 혹은 경건한 경향을 가진 차터스쿨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되고 그 말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메일: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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