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까? 아니면 성경에 말씀한 대로 이자를 받고 이익을 얻는 것은 부당한 일이기 때문에 멀리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한계를 가지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자문제는 현대 경제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실제적인 삶입니다. 성경은 이런 윤리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과 역사 그리고 개혁주의자인 칼빈의 시각을 통해서 이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필자가 이 글을 기술함에 있어 여러 가지 인용들과 책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기록하지 못함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이자에 대한 성경의 분명한 제시 성경에서 이자는 분명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께 언약의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자에 대한 분명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다”(출22;25). 그 외에도 신명기 23:19-20, 레위기 25:35-38장에도 동일하게 이자 금지에 대해서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구제 대부’와 ‘무역하는 비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상업 대부’ 사이를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이자를 받지 않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자를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구제 대부에는, 단지 먹기 위한 식량을 빌려주는 소비성 대부만 아니라 파종을 위한 종자를 빌려주는 사업성 대부도 포함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에게 이자 없이 빌려주는 것은 영영히 요동치 않을 의인의 삶으로 찬양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시15:1,5). 더 나아가,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자를 받지 않는 자에 대한 구원이 대조되며 선포됩니다. “변리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찐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겔18:13,17). 가난한 자에게 이자 없이 빌려주는 것은 포로 귀환 후 느헤미야의 개혁의 중요한 정책이었습니다(느5:1-13). 만약 가난한 자에게서 이자와 토지와 주택과 자녀를 취한 귀인과 민장을 꾸짖으며 당장 빈자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한 느헤미야의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부자와 빈자로 나뉘어 사회 통합은 와해되었을 것이고, 침략 기회를 노리는 적대 세력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이자 없이 빌려주는 이 법은 희년의 토지·주택·자유 회복법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사회 통합과 영적 갱신을 위해 매우 중요한 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약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윤리적 요구 중의 하나인, 이자 받는 대부에 대해서 철저하게 거부하는 것은 그 당시의 배경과 환경에 대해 전혀 새롭고 충격적인 법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모든 알려진 법전들이 이자 받는 것을 수용하고 그것을 법제화하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수메르-바벨론 세계에서는 빌린 것에 대한 이자의 지급이 정상적이고 존중받을만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율법과 계약에 전제되었던 것입니다.
2. 중세 교회의 이자관 그러면 역사적으로 중세시대는 어떠했을까요? 중세 교회는 물론 이자를 금지했습니다. 첫째로 성경에서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22:25, 레25:31, 신23:18-20, 잠28:8, 시15:5, 렘10:10, 겔18:8, 눅6:35).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돈에 대한 견해, 곧 돈은 무익한 것으로 돈은 돈을 낳지 못한다는 견해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은 소비물에 해당하여 한번 쓰면 돌려받을 수 없는, 소비권만 행사할 수 있는 그러한 물질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AD775년 니케아회의에서 통과되었고 수차에 걸쳐 교회 회의와 교황에 의해 새로이 규정된 바 있는 이자를 붙여 돈을 대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역사를 통해 교회에 의해 강력하게 시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규칙에는 많은 예외가 있었습니다. 이자를 붙인 대부는 위험과 변상의 책임을 동반하는 합자회사의 제도 아래서 허용되어왔습니다. 대금업자는 심지어 빌려 준 돈이 잘못되어 자기에게 손해를 입히면, 이자라는 명목으로 돈을 빌려간 사람에게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손실이 정확히 계산될 수 있는 경우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벌금이라는 명목 하에 배상해야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대금업자는 그 잃어버린 이익에 상당하는 금액을 다른 물품으로도 징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조건들은 합법적으로 이자를 요구할 수 있도록 대출금에 덧붙여진 명목들이었으며 군주들과 교회들이 장소와 환경에 따라 다소간의 융통성을 가지고 이 명목들을 허용했습니다. 교회는 이자를 받고 대부하는 것이 교회법상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시행하여 일반화되었습니다. 중세 교회는 이자 받는 행위를 공식적으로는 금지했지만 교황과 주교는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달리 행동했습니다.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엄청난 규모의 대금업자들이었습니다.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을 때, 채무자들을 정신적 형벌로 위협해서 이자를 거두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교황 자신이었습니다. 당시는 교회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국가는 고리대금에 대해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에 이자 사업이 급속도록 증가되면서 이것은 당연시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과 영국 같은 유럽 국가들에서는 이자사업이 법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스페인 군주 찰스 5세와 필립 2세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면서도 12%를 넘지 않는 범위 하에서의 이자는 합법적이라는 것을 최초로 인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영국의 헨리 8세도 1545년에 이자율을 10%로 정했습니다.
3. 칼빈 시대의 경제적 환경과 이자 윤리 1) 경제적 환경 신대륙의 발견 이후에 유럽에서는 수많은 산업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상업적 교류가 계속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거의 상업 구조와 체제로서는 이 엄청나게 증가한 활동들을 어찌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무절제한 자본주의가 생겨나고 이러한 자본주의가 도시 생산 중심지 외곽에서 급속도로 발달했습니다. 이 자본주의의 발달로 생계비는 수직적으로 오르게 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급작스럽게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도시와 농촌 양쪽에 급격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자본의 축적과 증가가 이루어지고 많은 물품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대량 생산 되었습니다. 진보와 빈곤이 함께 따르는 상황에서 칼빈주의자들은 농민과 신비주의자의 눈으로 경제생활을 본 루터와는 달랐습니다. 칼빈주의자는 대체로 도시중심적 운동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메일: younsukl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