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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어? 거의 동시대에 살았네! 선교사 닥터 홀'의 가족과, 합수브르크가' 의 왕가들이..."

닥터 홀 선교사의, <조선 회상>이란 책을 읽고, 한 생애를 나 역시 선교사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많을 때였습니다. 느닷없이 비엔나 근방의 황실 사냥 별장이 있었던 "마이엘링(Mayeling)"이란 곳을 갔습니다.

그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이었던 합수브르크 왕가의 엘리자베스(씨씨공주)사이에 태어난, 외아들 루돌프 황태자가 벨기에 스테파니 공주와 정략결혼을 했지만, 결국 30살의 나이로 17살 된 연인과 죽음을 선택했던 슬픈 인생과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아! 화려한 영광을 누리는 것 같았으나, 비운으로 끊임없이 점철된 삶을 살다 간 왕족, 인생의 멜랑즈여! 멜랑즈(Melange)는 혼합물, 뒤범벅, 섞여 있는, 그런 뜻입니다.

사실, <조선회상>을 읽으면서 그 선교사들에 대한 오마주와 함께 좀 주눅이 들어있었습니다. 마치 이름 없이 쓰러져가는 한 무명용사가 멀리 링컨 대통령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기에, 미국의 남북전쟁이 승리할 수 있었지 않나?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그 후, 헝가리 전국 집시 교회 연합 예배가 있어서 우리 부부가 참석했습니다. 예배당 입구에서 깔끔히 정장한 안내자들이 사람들을 맞이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안내자는 바로 전에 우리 '거리의 교회' 의 노숙자였습니다. "줄러(Gyula)!" "빨(Pal)!"

헝가리에서 저의 이름으로, 바울입니다. 우리는 반가 워서 이름을 부르며 서로 뿌시뿌시(포옹)를 하는데,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하든지! 줄러는 선교 단체의 어엿한 스텝으로 새로운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부다페스트 남부역, 노숙자 무리 중에서 있던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주님! 제가 닥터 홀과 같은 그런 탁월한 선교사는 되지 못한다 해도, 저희 내외를 통해 복음을 들은 거리의 형제가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와 섬기니, 이 땅에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의미가 분명히 있는 것이 맞죠?"

그렇게 벅찬 감동으로 본당으로 들어가니, 거기엔 우리가 이전에 단기선교 팀을 데리고 공연 사역을 했던 코즈마 교도소와 바츠 교도소에서 만났던 교정 목사님들, 또 헝가리 개혁교회 총회장을 하신 '서보다니 엘' 목사님도 와 계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

100년 후, ‘한국인 선교사’가 간 곳

 

여러 목사님이 교도소의 모범수들, 또 집시 교회의 청년들을 인솔해 오셨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그곳에 참석한 젊은이들이 나와서 간증과 찬양을 했습니다. 집시로서 차별받고 피해의식 속에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인생 스토리들...

닥터 '셔어드 홀'의 책 <조선 회상>의 원제목은 <아시아: 한국에서 청진기로> 입니다. 물론 의사 선교사니까 당연히 그런 제목을 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쟁(세계 2차 대전)이 나자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몰래 라디오에 청진기를 대고 뉴스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

저자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의사 선교사는 1891년 31살에 조선 선교사로 와서, 청일전쟁으로 부상당한 자들을 돌보다가 4년 만에 발진티푸스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저자의 어머니 '로제타' 의사 선교사는 유복녀로 낳은 딸마저 전염병으로 천국에 보내야 했습니다.

장성한 아들 '셔우드 홀' 의사 선교사는 아내 '매리언' 의사 선교사와 함께, 조선에서 폐결핵 퇴치를 위한 의료 사역, 요양원 설립,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습니다. 그러다가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군에 의해 1940년에 재판을 받고, 조선에서 추방되어 인도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리고 70살에 은퇴한 그는, <조선 회상>과 <인도 회상>이란 기록을 남기고, 98세인 1991년에 소천했습니다. 닥터 홀 가족의 삼대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혀있습니다. 주님 오실 그날에 하늘의 별처럼 빛날 조선의 선교사들…

그러고 보니 처음 아버지 '닥터 홀'이 조선 선교사로 한국에 간지 딱 100년 후인 1991년에, 한 한국인 선교사 가족이 헝가리 선교사로 부다페스트에 들어온 셈입니다. 바로 우리 가족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아! 이제 나는, 우리 부부는 헝가리 선교사로서 뭘 남기고 갈 수 있을까? 많은 묵상과 기도, 회개, 비전을 갖는 가운데, 다시 한번 미션을 깨닫습니다.

'닥터 홀 선교사 가족이 한국의 결핵을 퇴치했다면, 우린 헝가리의 집시들을 깨우는 일이다!" 관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슬럼가의 집시들을… 주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인생! 비록 기쁨과 슬픔, 고통의 멜랑즈라 하더라도, 우리 부부는 일심동체(Oneness),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로, 한국인 선교사입니다. 

김홍근&서명희 헝가리 선교사 mylovehungary@hanmail.net

 

02.2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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